어미의 무게, 아비의 무게

[37주] 우리 집엔 백수와 반백수가 산다

by 제이선

주변 선배들 말에 따르면 산모들이 출산 전에 엄청 예민하고 불안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웬일인지 그런 내색이 크게 없었다. (물론 배가 고플 때는 예외였다. 내가 봤을 때 임산부에게 배고픔이란 흡사 나라를 잃은 것과 같다.) 나는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을 때부터 기본적인 불안과 공포를 9개월 넘게 안고 살고 있다. 반면 아내는 생각보다 무던한 모습을 보이길래 역시 엄마가 되면 다 위대해지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 그녀가 며칠 전 뜬금없이 내게 말했다.

"오빠, 나 좀 무서워."


이제 한 달 안쪽으로 출산일이 임박하니 덜컥 무서워진 모양이었다.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자궁이 없어서 미안하다던 어느 남편 말이 불현듯 공감이 됐다. 직접적으로 신체적 변화가 없는 나도 무서운데 몸무게가 10kg가량 날마다 늘고, 걷기조차 숨이 가쁜 아내는 오죽할까. 게다가 출산 교실과 순산 요가 수업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출산 과정을 듣고 나니 공포감이 더 커진 것 같다. 그런 그녀에게 딱히 남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나에게 무력감을 가져다준다. 기껏해야 가끔 억지로라도 아내 손을 붙잡고 밤마실을 나간다던가, 산부인과까지 차로 출동 연습을 해본다거나, 6초 들이마시고 8초 내뱉는 호흡법을 따라 해 주는 것 정도 밖에는 남편의 역할이 지금은 뚜렷하지 않다. 산부인과 검진에 따라 들어가도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초음파 속 내 새끼 어떻게 생겼나 들여다보는 정도이다. 보호자로서 주치의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지만 의사나 나나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어서 제가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라는 의사의 말이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고 되새길수록 고마운 말이다.

아무 탈 없이 37주 차를 잘 커가고 있는 아이와 달리 나는 요즘 영 통잠을 자지 못한다. 아내야 2.9kg의 아들 녀석이 밤마다 꼼지락거리고 방광을 눌러대는 통에 몇 번씩 깬다 쳐도 나도 덩달아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하루에 4~5개씩 꿈을 꾼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가장로서 앞날이 걱정되긴 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는 이제 백수와 반백수가 산다. 아내는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출산 및 육아 휴직에 들어갔고, 나는 한 달의 반은 일하고 반은 노는 무급휴직자다. 안 그래도 무거운 가장의 무게에 코로나가 벽돌 몇 개를 더 얹은 형국이다.


반면에 좋게 보자면, 출산 전후로 아들이 자라는 과정을 더 자주 곁에서 볼 수 있어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 아버지를 포함한 대한민국 대다수의 아버지가 밥벌이의 무서움 때문에 놓친 그 중요한 순간들을 나는 아내, 그리고 아이와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버지 생신을 맞아 생신 선물을 주문했더니 엽서가 딸려와서 빈칸을 채워 넣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어버이가 아니라 아버지께 쓰는 편지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어떤 말을 쓸까 고민하다 보니, 30여 년 전 나의 아버지도 이런 중력 속에 살았겠구나 싶었다. 어릴 때 그토록 무뚝뚝하고 엄했던 아버지가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퇴직 후 텃밭을 일구며 웃음이 많아진 모습을 보니 과연 나는 내 새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게 될지, 또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아비가 되고서야 아비의 무게를 실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