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빠가 됐다

출산, 그 참을 수 없는 두려움

by 제이선

복도 끝에서 공기를 찢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새로 꾸민 병원이라 마치 호텔 로비 같은 느낌을 주는 분만 센터였지만, 웬일인지 전등 하나가 깜박거려 스산한 느낌마저 주었다. 아내가 가진통으로 고생하는 동안 덩달아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그 소리에 퍼뜩 잠이 깼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저 놈이 내가 기다리던 그 놈이라는 걸 직감했다. 이 순간을 오래전부터 상상했지만 상상과 달리 나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아이의 울음이 TV에서 듣던 귀엽고 명랑한 아기 울음 대신 최전방에서나 듣던 고라니 울음에 가까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10개월을 기다린 내 새끼를 드디어 본다는 게 뜨겁게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이젠 정말 아빠로서의 삶을 피할 수 없다는 차가운 두려움이 뒤엉켰다. 점멸하는 불빛 아래에서 나는 9개월 전 그날처럼 다시 한번 냉정과 열정을 오갔다.

복도 끝에서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 무급휴직의 마지막 날이자 아직 정기예금 금리가 2%대였던 그날 아내는 두 줄이 선명한 임신 테스트기 사진을 보내왔다. 아내에겐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설거지를 하다 말고 세 번을 앉아 쉬었다. 나도 나의 아버지처럼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는구나 싶어 숨이 가빠질 정도로 설렜다. 그러나 이윽고 이성이 감성을 밀어냈다. 이제 정기예금 따위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회사는 힘들고, 전세 만료일은 다가오고, 부모님은 다 지방에 계시는데 애는 누가 키우나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떤 아빠들은 임신 소식을 듣고서 환희에 차 울기도 한다는데, 나는 두려움 때문에 울고 싶었다. 나는 아직 아빠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말로만 듣던 가장의 무게가 갑자기 덮쳐왔다. 그리고 그 무게는 시간이 갈수록 더 무거워졌다. 일회성으로 생각한 무급휴직은 코로나를 만나 일상이 되었고, 월급은 줄어 가는데 전세가는 하루하루 신고가를 경신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마스크까지 써가며 출퇴근하는 아내에게 혹여나 마음의 짐을 나누게 될까 밝은 척, 덤덤한 척 10개월을 보냈다.

한 줄이면 좋고 두 줄이면 더 좋다.

시간이 흘러 예정일을 며칠 앞둔 저녁, 여느 때처럼 아내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가진통이 시작됐다. 10분 간격으로 진통이 반복되자 모바일 앱에서 병원 갈 준비를 하라는 알람이 떴다. 부랴부랴 옷을 입고 출산 가방을 다시금 점검한 뒤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진통은 강도만 심해질 뿐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애타는 마음도 모르고 진통은 5분을 계속 넘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병원에서 촉진제를 맞았다. 진통은 배에서 허리로 이어졌고, 아내는 이틀간 꾹꾹 눌렀던 눈물을 터뜨렸다. 꽉 잡은 손에서 땀이 묻어났다. 벽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랍시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고통에 끝이 없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43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억울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결국 수술을 결정했다. 의사는 추가금액을 하나하나 설명했지만 머릿속에서 도통 셈이 되지 않았다. 보호자 신분으로 서류에 서명을 하고 아내를 수술방으로 들여보내고 나자 내가 잘한 일인가 싶어 후회가 몰려왔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던 분만 대기실


한 시간 뒤, 아내가 뉴스에서만 보던 회장님 휠체어 위에 이불을 덮고 간호사들 손에 이끌려 입원실로 들어왔다. 아내의 모습을 보자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제야 모든 것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내는 마취가 덜 풀려 날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표정이 무척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뒤이어 아들 녀석이 속싸개에 싸여 들어왔다. 녀석도 나름 고생한 모양인지 머리가 골반에 끼였다 나와 아직 길쭉했다.

우리 세 식구 모두 힘든 하루였구나.

얼굴은 말 그대로 주먹만 해서 어떻게 이 작은 얼굴에 눈, 코, 입이 다 들어있는 건지 신기했다. 힘주면 부서질까 싶어 바들바들 떨며 처음으로 아이를 안았다. 손난로처럼 따뜻한 아이의 몸에서 심장 박동이 꿈틀꿈틀 느껴졌다. 쌕쌕하고 숨을 내쉬는 아이를 보는데 새삼스럽게 아빠가 되어 다행이다 싶다. 아이가 한바탕 울음을 터뜨려서 잠깐 당황했다가 처음으로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켰다. 아이가 내 어깨에서 쌔근쌔근 잠들자 마음이 놓이며 심장이 간질간질해졌다.

내가 아빠 노릇을 했다!
제비초리까지 나와 닮은 아이를 보는 기분이란


한참을 지그시 아이를 바라보는데 문득 30여 년 전 나의 아버지도 어린 나를 이런 눈빛으로 보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달랐다. 어릴 때 그토록 무뚝뚝하고 엄했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퇴직 후 텃밭을 일구며 웃음이 많아지셨다. 다섯 식구 챙기느라 그땐 자신이 여유가 없었노라 하셨다. 그도 아마 나와 비슷한 중력 속에 살았을 게다. 나는 과연 내 새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게 될지, 또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고민해 본다. 꼴을 보아하니 이번 생엔 그다지 많은 돈을 벌어주지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성격상 자상하고 친절한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세상 모든 아빠가 이재용, 백종원이 될 수는 없을 텐데 그럼 나머지 아빠들은 모두 어디에 쓰려고 있는 것일까? 그들을 차치하고 나는 과연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 걸까? 하필 가장 초라할 때 아빠가 되긴 했지만, 적어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여유 없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돈 없고, 집 없이 살더라도 언제든 아들과 장난칠 수 있는 여유 있는 아빠가 되어야겠다. 비록 여유 있는 아빠로 사는 삶이 쉽지 않겠지만, 너라는 희망이 있으니 아빠는 기꺼이 쉽지 않은 그 길을 걸어보련다.


'두려움은 희망이 없이는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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