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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비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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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Apr 02. 2021

육아의, 육아를 위한, 육아에 의한 휴직을 시작하며

[269일] 첫봄, 첫니, 그리고 다시 첫 육아

 아이와 함께하는 네 번째 계절이자 첫봄이 왔다.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아이는 고개를 들고, 몸을 뒤집고, 스스로 앉더니, 이젠 온 집안을 휩쓸고 기어 다닌다.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이 늦어 걱정한 시간이 무색할 만큼. 역시 더디게 오더라도 계절은 반드시 오고야 마는가 보다. 오히려 너무 잘 커서 걱정해야 할 정도다. 마치 AAA 건전지가 네 개 정도 들어간 장난감처럼 아이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스스로 방전될 때까지는.

봄, 사랑, 벚꽃말고 요맘때 무엇이 남을까?


  오니 아이는 들판의 풀처럼 더 새 파랗게 자란다. 내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사랑니를 빼던 날, 아이의 잇몸에서 하얀 반점 같은 게 언뜻 비쳤다. 아빠와 아들은 각자의 잇몸이 아프고 간지러워 며칠을 앓았다. 며칠 뒤에 보니 아이 잇몸을 뚫고 새싹 같은 이가 두 개나 피어났다. 성장과 노화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몸도 다른 생명과 똑같이 싹이 돋아나는 계절이 있으면, 잎이 떨어지는 계절 또한 오기 마련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치아보험을 들어줘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빠


 봄이 되고 바뀐 게 하나 더 있다. 아내가 다시 출근한다. 9개월 만에 비로소 맞는 바지가 없음을 깨달은 그녀는 사뭇 초조해 보인다. 그녀를 보는 나 역시 초조하긴 마찬가지다. 그녀를 대신에 이제 내가 독박 육아 체제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육아가 그냥 커피라면 이제는 TOP 아니,  찐 육아의 시작이다. 육아 휴직을 내자 회사에선 이직 준비하냐는 반응이다. 과장 진급을 목전에 둔 한창 몸값 높은 남자 대리가 갑자기 육아 휴직이라니. 팀장은 못 미더운지 팀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인지 여러 번 고쳐 묻는다. 독박 육아를 하면서 이직까지 준비하는 독한 남편은 분명 존재할 게다. 그게 내가 아니라 서글플 뿐이다.

그래요, 이직합니다. 아빠라는 직책에 아들이라는 상사를 둔 집이라는 회사로


 휴직을 앞두니 괜스레 사람이 자비로워지는 것 같다. 출퇴근할 때 깜빡이 없이 내 앞을 끼어드는 차를 보고도,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만큼 답답한 옆 팀 직원을 보고도 웃어넘길 여유가 생겼다. 휴직이 이럴진대 퇴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자비로울지 생각하니 샘도 난다.


 그러나 막상 혼자 하루 종일 아이를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아내처럼 아이와 잘 놀아줄 수 있을지, 아내처럼 잘 참아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무리 남편의 육아 관여도가 높다 해도 결국 메인은 엄마고, 아빠는 서브일 뿐인데 이제는 그 판을 바꿔야 할 상황이다. 그래도 육아 휴직에서 돌아온 여직원들의 충고가 도움이 된다. 지나고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갔고,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남는다는 말.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단 아까워하며 맞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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