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on Han Sep 23. 2019

디지털 재산화와 블록체인

ifkakao 키노트 발표 내용 정리 (1/2)

지난달에 있었던 카카오의 개발자 컨퍼런스인 ifkakao에서 영광스럽게도 키노트를 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주제를 얘기했습니다. 1) 블록체인으로 인해 가능해지고 있는 디지털 재산화, 2) Klaytn의 특징과 비전, Klip(디지털 자산 관리 서비스)의 소개. 그중에 첫 번째 주제에 대해 제 발표 내용을 거의 그대로 글로 남겨 보려고 합니다. 영상을 직접 보고 싶은 분들은 ifkakao 프로그램 페이지에서 day2  keynote 영상을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두 번째 키노트라 제 발표는 중간(14분)부터 입니다.


디지털 봉건시대에 사는 우리는 디지털 농노

디지털 농노제(Digital Serfdom)라고 들어 보셨나요? Joshua A. T. Fairfield라는 미국의 법학자가 쓴 "Owned"라는 책에서 쓴 표현입니다. 중세 봉건시대에 자신의 땅이 없는 대다수의 평민들이 영주의 장원을 경작해 주고 식량 등을 지원받았는데 영주에 매우 종속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농민이면서 노예라는 의미로 농노라 불렸습니다. 지금 디지털 세상이 일종의 디지털 봉건시대에 가깝고, 우리들은 일종의 디지털 농노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를 소유하면서 그것을 열심히 사용하고 그 결과로 '경작'된 데이터는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들에게 바치는 것이죠. 그걸 거부하려고 하면 서비스나 기기 자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세상에 스마트폰이나 검색 없이 사실 수 있을까요? 어쩔 수 없이 그런 기업들에 종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디지털 농노제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건 스마트폰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가 나온다면? 스마트홈이 일반화된다면? 과연 우리가 이런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들의 온전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The devices and services that we use — iPhones, Fitbits, Roomba, digital door locks, Spotify, Uber, and many more — are constantly capturing data about behaviors. By using these products, consumers have no choice but to trade their personal data in order to access the full functionalities of these devices or services. This data is used by private corporations for targeted advertisement, among others. This system of digital serfdom binds consumers to private corporations who dictate the terms of use for their products or services.


이와 같이 데이터가 서비스 제공자에게 집중되면서 생기는 폐해는 여러 번 기사화되었습니다. 그중 최근 가장 크게 이슈 된 사건이 캐임브릿지 애널리티카라는 회사에서 사용자 동의 없이 수천만명의 페이스북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여 지난 미국 대선에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운동에 활용된 것이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The Great Hack은 캐임브릿지 애널리티카 사건을 심층 취재한 내용입니다. 이젠 데이터의 소유가 권력의 향방까지 결정하는 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데이터 소유와 통제 주권을 누구한테 줄 것인가?

이런 문제점들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유럽에서 먼저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EU 28개국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이라는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이 작년부터 발효되었습니다. 요지는 정보주체의 권리와 기업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EU 시민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모든 기업은 사용자가 원할 때 데이터를 삭제하고(삭제권), 활용을 제한하고(처리제한권), 다른 서비스로 이동(정보이동권)시켜 줘야 합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전체 매출의 최대 4%까지 벌금을 내야 합니다. 매우 강력한 조치입니다. 즉, 데이터의 소유권과 통제권을 기업에서 개인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국내 기업을 위해 GDPR을 잘 정리해 두었으니 참고하세요.


작년에 블록체인 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책입니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여러 아이디어 중에 "Data as Labor", 즉 노동으로서의 데이터 관점을 얘기합니다. 지금까지 서비스를 사용하며 데이터를 무료로 넘겨주었다면, 이제 데이터의 가치가 훨씬 높아진 상황에서 기업들은 사용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사용자의 행위가 정당한 노동행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디지털 재산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

최근 아시아계 미국 대선 후보 Andrew Yang의 연설 영상이 화재가 되고 있죠. 그의 공약을 보면 신선한 게 많은데, 그중에서도 "Data as a Property Right"는 혁신적입니다. 우리가 만든 데이터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를 우리도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현 방안이나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데이터를 재산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개인정보보호에서 수십 보는 더 나아간 것입니다. 

You can waive these rights and opt in to sharing your data if you wish for the companies’ benefit and your own convenience – but then you should receive a share of the economic value generated from your data.


서비스 제공자가 데이터를 활용하면서 유저에서 경제적 보상을 하는 것은 지금도 일부 실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유저에게 데이터 소유권이 있고, 재산으로서 인정받기 때문에 보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데이터, 좀 더 광범위하게 디지털 개체에 대해 재산권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디지털은 기본적으로 복제가 쉽기 때문입니다. 물질세계로 비유하자면, 다른 사람이 쉽게 집(House)을 복제할 수 있다면 그 집이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있을까요? 


디지털 세상에서의 재산권은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디지털 아이템이나 데이터를 재산으로 만들기 위해선 개별 디지털 개체의 유일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과 거래 가능해야 합니다. 디지털 개체는 기본적으로 복제가 쉬운데 어떻게 유일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개체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소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요? 또한 다른 사람에게 판 것을 다시 팔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까요?


여기서 바로 블록체인이 등장합니다. 디지털 재산화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최적의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블록체인의 특징인 불변성(Immutability), 투명성(Transparency), 추적가능성(Traceability)를 잘 활용하면 디지털 개체의 소유권을 보장하고 거래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미 블록체인 세상에서는 NFT(Non-Fungible Token)이라는 개념으로 디지털 아이템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블록체인의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된 거버넌스 구조를 활용하면 소유권을 특정 기업이 아닌 중립적인 거버넌스에 의해 관리될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기술적인 구현뿐 아니라 제도적인 논의와 합의, 개인과 기업의 인식의 변화 등 넘어야 할 산은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 생각합니다. 블록체인 세상에서는 이미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세상에서 시도되고 있는 디지털 재산화 실험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게임 아이템을 재산화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게임해서 모은 가상 아이템들이 다른 게이머들에게 거래할 수 있는 재산으로 역할하는 것이죠. 샌드박스는 사용자 참여형 마인크래프트인데, 게이머가 직접 아이템이나 아트웍을 만들어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즉, 수동적으로 게임 아이템을 모으는 게 아니고, 직접 게임 아이템을 창조하면서 재산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작년에 나온 블록체인 기반 MLB 카드 게임은 선수들의 디지털 카드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당연히 유료로 구매하는 거죠. 류현진 선수의 카드도 올라와 있습니다. 대략 3만원에서 10만원까지 하는 것도 있네요. 무한정 찍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수집의 의미가 없으니까요. 대부분 한정판 디지털 아이템입니다. 이것도 나의 재산이 되는 거죠. 나중에 다른 사람과 거래할 수도 있고요.


코닥에서 작년 내놓은 디지털 사진을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함으로써, 디지털 사진의 소유권을 증명하고 거래 내역을 증명해 줄 수 있습니다. 폰에 작품 수준의 사진이 있다면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하지 말고, 올려서 재산으로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개인 데이터를 재산화하고 사고팔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를 시도하는 회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Airbloc Protocol은 모바일앱 사용 이력을 유저가 원하면 광고주들에게 팔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물론 개인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는 아직 풀어야 할 이슈들이 많이 있지만, 앞으로는 나의 클릭 이력이나 라이크 데이터를 광고주들에게 팔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도 생각합니다.



다들 데이터를 21세기의 오일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오일이 어디서 나오고, 소유권은 어떻게 되며, 어떻게 거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깊이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21세기 데이터 유전지대는 어디일까요? 바로 개인입니다. 개인이 보유한 스마트폰, 컴퓨터, 가전기기, 자동차, 디지털 홈 등이 가장 많은 데이터를 쏟아냅니다. 하지만 그 방대한 데이터 유전지대의 채굴권을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마치 석유 개발의 역사에서 초기 채굴권을 미국 등의 선진국이 장악한 것처럼 말이죠. 이제 그 흐름이 바뀔 수 있는 시대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블록체인은 개인이 디지털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이 정보의 인터넷에서 가치의 인터넷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시대에 접어드는 것이죠.

작가의 이전글 Ground X Season 2를 시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