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의 스토리텔링, Rhetoric(레토릭)!
가끔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과 일종의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복잡한 인간사회 속에 제법 질서 정연하게 뒤엉켜 있어 그 실타래를 풀며 서로 조금씩 잡아당기다 어느 순간 내 앞에 다가오는 신기한 경험, 나는 가끔 그러한 순간들을 맞이하곤 한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 그것도 스타트업 중에서 가장 고되다는 하드웨어 기반의 엑셀러레이터인 N15이란 회사를 창업한 류선종 대표의 이야기다. 류선종 대표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기, 과외교사와 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류 대표는 지금이야 대중 앞에서 연설도 잘하고, 사업가로서 협상도 잘하지만, 당시에는 말수가 적고 비쩍 마른 얌전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식적이진 못하지만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이제는 같이 나이 들어가며 세상 이야기를 하는 형 동생 사이가 되기까지, 지난 추억을 기억하고 찾아와 준 그를 보면 또 하나의 인연의 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의 끈과 나의 끈은 또 다른 인연의 끈을 함께 당기는 것은 아닌지...
얼마 전 그와 함께 내 고향인 전주에 위치한 한 기업을 찾아 강연을 듣게 되었다. "여러분은 다음에 나오는 세 나라의 스펠링(Spelling)을 소문자로 바꾸었을 때 의미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강연자로 나선 정책연구원께서 제시한 단어는 'China vs china , Japan vs japan, Korea vs korea'였다. "여기 나온 단어를 보면 대문자 China는 중국을 소문자 china는 본차이나를 의미합니다. 또한 대문자 Japan은 일본을 소문자 japan은 나전칠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대문자 Korea는 대한민국을 소문자 korea는 그냥 한국입니다." 물론 이 말은 소재부품 분야에 있어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나온 말이었지만, 나는 서울로 올라오는 KTX 안에서 개인의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되었다. 특히 대중연설이나 발표에 있어서 이러한 것을 레토릭(Rhetoric)이라 할 수 있는데, 스피치의 본질인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자신만의 레토릭을 구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어쩌면 이 이야기의 최종 종착점으로 잡아도 될지 모르겠다. 류선종 대표를 비롯해 스타트업 창업자 및 VC(Venture Capital) 심사역들과 오랜 만남을 하며, 창업자들이 투자를 받기 위해 진행하는 회사 소개 프레젠테이션인 IR시 어떤 부분들이 보충되어야 하는지 자문을 해오며 느낀 점들을 레토릭이라는 주제로 소개를 할까 한다.
을지로 3가 명동성당 바로 맞은편 대신증권 건물에는 미국계 공유 사무공간인 위워크 을지로가 있다. 스타트업 기업들이 주로 입주해 있는 이 건물은 커피를 비롯한 음료를 비롯해 회의실 등 회사가 사용하는 부대시설 및 제반시설을 공유하며 어려운 스타트업들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한 공간으로, 국내에는 삼성동과 을지로 두 군데에 큰 규모로 입점해 있다. 한 번은 이 곳에서 IR 관련 자문 요청으로 다섯 개의 기업을 만나 컨설팅을 진행했었는데, 연이어 3시간 조금 넘게 진행된 미팅에서 나 역시 많은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 첫 번째 기업은 온라인 유통에 다년간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대학창업지원센터를 통해 창업을 한 사람이었다. "혹시 Gym에서 운동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회사 소개를 시작하며 그의 첫 질문이었다. "네 물론이죠. 한때는 푹 빠져 살았었습니다." 그가 다음으로 보여준 그림은 물에 100% 용해되는 단백질제였다. "저희는 미국에 있는 회사로부터 맛도 좋고 100% 용해되는 단백질제 원료를 수입해 한국에서 2차 가공을 통해 소비자들이 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할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만 듣고 있자니 기존에 판매되고 있는 단백질제와의 차별성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설명을 80%쯤 들었을 때 내 질문은 주로 어떻게 차별성을 줄 것인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자신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은 온라인 유통을 통해 A라는 제품을 히트(Hit)시켜보았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앞에 있는 젊은 대표이사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ㄱ 대표님! 현재 회사는 온라인 유통에 강점을 가진 회사이고, 그 주력 제품이자 첫 제품으로 000 단백질제를 출시하시겠다는 것이죠?" "네!" "그럼 두 번째 질문입니다. 투자금을 받으시면 어디에 쓰시려는 것인가요? 정확하게 유통회사로서의 역량 강화에 쓰시는 것입니까? 제품 생산비에 쓰시는 것입니까?" 이미 제조회사에 대한 컨설팅 경험이 있었기에 단순히 제품 생산비에 소요되는 자금을 투자받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젊은 대표에게서 유통회사로서의 역량에 투자금을 활용하겠다는 대답이 나오기를 내심 기대했다. (사진 : 을지로 위워크,Wework)
"사실은 그 부분에 대한 자문도 구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직 의욕은 있지만, 회사 전반에 대한 스토리 텔링이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짧은 시간이지만 IR 자료를 대폭 수정하기 시작했다. "자~ 대표님 이제 대략 정리가 되었는데요. 회사를 설명할 수 있는 짧은 타이틀을 하나 달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령 우리 회사는 Video Commerce를 활용한 유통 전문회사와 같이 직관적인 내용도 좋습니다. 투자자들이 들었을 때 '아~! 이 회사는 이런 회사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 준 뒤, 유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는 것이 다른 회사와의 차별성임을 강조하며 제품을 설명한다면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투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IR에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하지 마시고, 한 페이지에 이야기 하나씩을 담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날 만난 기업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기업은 앞의선 상담이 길어지면서 가장 짧게 만났던 마지막 기업이었는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관계자들의 말에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질문으로 바로 들어갔다. "저희는 *엔젤투자를 마쳤고, 시리즈 A 투자를 진행하려 합니다. 그래서 좀 큰 규모의 IR을 진행하려 하는데, 저는 사람들 앞에만 서면 떨리고, 설명을 하려고 하면 두서가 없어져서 힘듭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이 기업은 모바일로 의사와 헬스케어 기업을 연결하는 회사로 앱의 사용자들은 의사들이었다. 이런 사업을 플랫폼 사업(Platform Business)이라고 하는데,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의사 집단이 한쪽에는 제약회사와 헬스케어 회사들이 존재하고 이 회사는 앱을 개발/운영하며 플랫폼을 확장해 나가며 회사를 키워가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려는 회사의 IR은 무척 단순하다. 플랫폼을 중심으로 유저(User)들이 어떤 필요를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고, 그 시장성만 입증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 우리는 회사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 그 스토리텔링의 중심에는 '왜?'라는 질문이 있었다. '왜 이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는지'에서 모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 다섯 업체를 만나며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작지만 얼마나 가치 있는 회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또한 너무 본론부터 이야기에 들어가 정작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를 알지도 못한 채 마지막 장을 보며 유추하거나 질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날 내가 주로 했던 작업은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는 것과 이를 일반인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쉽게, 때론 사례를 들어 설명하도록 유도했다. 다행히도 모두들 본인들이 안고왔던 궁금증과 어려움을 풀고 갔다고 하니 한편으로 감사하게 느껴진 하루였다.
금융권과 개인적 취향으로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을 만나면서 한 번은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이나 대중연설과 같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가장 대중성 있는 오바마식 레토릭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오바마식 레토릭은 세 단계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는 재현(Re-Enactment), 두 번째는 상징(Symbolism), 세 번째는 반복(Repetition)으로 나눠볼 수 있다. 앞 글에서도 강조했듯 스피치의 근본적인 목적은 '전달'에 있으며, 스피치 영역에서 전달은 영어로 'Delivery'로 해석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즉 상대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을 하며 이야기해야 하고, 상대에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전달 방식으로서 레토릭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어느 스피치 책에는 '초면에 애드리브를 하지 말아라'라는 말이 적혀있던데, 이 말은 스피치 강연을 다니며 나 스스로 많이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내가 신입 아나운서이던 시절 김성주 선배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그 책에 어떻게 그 말이 실리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처음부터 애드리브를 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연설에 있어서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해줘야 다음에 이야기하는 본론에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면에서 '재현'은 연설의 구성에서 맨 앞에 나와줘야 한다. 자신을 청중에 맞추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재현'이다. 그다음은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것을 세 가지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 청중들은 긴 시간의 연설 또는 프레젠테이션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청중의 뇌리에 남기고 싶은 내용을 두 세 가지로 압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징'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들을 본문에서 '반복'해야 한다.
오바마는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Democratic National Convention Keynote Address)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 밤 저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겠습니다. 진보의 미국과 보수의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미합중국만이 존재한다고 말이죠. (중략)" 그는 이러한 시작 문구로 대선에 나서는 자신이 백인이 아니며, 미국에서 자라오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누구든 미국에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한 연설 중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로 '희망'과 '화합'과 '변화'를 들어 연설문 내내 간접 인용과 직접 인용을 통해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연설을 듣고 난 청중들이 오바마라고 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의 연설을 통해 희망의 미국, 화합의 미국이 올 것이며, 미국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IR을 할 때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왜 나는 이러한 사업을 하려 했는지를 심플하게 보여주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지 말고, 기업의 장점을 중심으로 스토리텔링 하면 좋은 IR자료를 만들 수 있다.
* 엔젤투자(Angel Investment) : 개인들이 돈을 모아 창업하는 벤처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고 주식으로 그 대가를 받는 투자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