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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준호 Jul 30. 2018

22화. 나설 용기

스피치의 첫 시작, 용기!

2013년 7월 23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워 당시 에어컨이 없던 나는 그 더위를 나기가 무척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더욱이 아나운서가 아닌 타 부서 생활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멍하니 시간만 보내다 여섯 시가 되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던 시기였다. "준호야, 오늘 약속 있니?" 아버지가 일을 나가시고 나면 홀로 남으신 어머니는 특별한 취미도 없으셔서 늘 집에 계시곤 했는데, 그 때문인지 일 없는 아들이 가끔 가서 말동무해드리는 것이 그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는 길, 차 안에서 전화를 받고 어머니 댁으로 방향을 돌렸다.


'딩동 딩동' "어디를 가셨나? 아님 샤워를 하시나?"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댁에 도착한 것은 불과 20여 분 뒤였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디를 가실리도 없고, 분명 간다라고 말씀을 드렸던 터라 집 안에 계실 것 같았는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벨을 누르다 전화기를 집어 든 순간 집 문이 열렸다. 왠지 샤워를 막 하고 나오신 듯 얼굴과 머리카락 입고 계신 옷마저 물기가 묻어 보였다. "어머니, 샤워하셨어요? 한 참 벨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으셔서" 조금 창백해진 얼굴에 어머니가 식탁 의자에 앉으며 "내가 좀 체했는지 어지러워져서 쓰러졌지 뭐냐, 너 온다는데 문도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바늘 찾아서 열 손가락 사혈하고 겨우 정신 차렸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배우는 것을 좋아하셔서 수지침에 대한 자격증 같은 것을 가지고 계셨기에 그런 조치가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니 뭘 드셨기에 체하셨어요? 약이라도 사다 드릴까요?" 평소 당뇨로 이런저런 음식을 가려 드시는지라 체하셨다는 것이 조금 걱정되었다. "내가 칼국수를 좀 해서 먹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가 보다. 그나저나 너희 장인어른 병원비에 이것 좀 보태라" 어머니가 흰 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어머니 쓰실 돈도 없으실 텐데, 이런 걸 왜요?" "그래도 그냥 넣어 둬라" 당시 장인어른은 폐암으로 투병 중이셨고, 마음 쓰여 내미시는 봉투를 마다하기가 어려웠다. "그럼 잘 전해드릴게요"하고는 잠시 몸을 돌려 가방 안에 봉투를 넣는데 어머니가 테이블에 몸을 엎드리시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 괜찮으세요?"  순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는데 어머니 입술이 보라빛으로 변하며 ‘컥컥’ 소리와 함께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뭘 해야지?' 어머니께선 평소 지병으로 대학병원 맞은편에 살고 계셨기에 119를 부르는 것이 빠른지 어머니를 업고 뛰는 것이 빠른지 판단이 들지 않았다. 더욱이 경황없는 그 상황에서는 어머니의 집주소 마저 생각나지 않았다. 급히 어머니를 바닥에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해 봤지만, 뭔가 방법이 잘 못 된 것 같았고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결국 소파에 어머니를 겨우 앉히고 둘러업은 채 병원을 향해 빗속을 뛰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뛰고 싶었으나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엄마 저한테 왜 이러세요?"

누구나 한번은 엄마와 이별한다 中

어린 나이부터 어머니와 오랜 기간 떨어져 살기도 했고, 우리 나이로 20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어머니와는 일찌감치 '엄마' 보다는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렀고, 늘 존칭을 사용했었다. 어려서부터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 내 등에서 숨져가시는 어머니에게 이제야 용기내 '엄마'라고 부르다니.


비 오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 급한 와중에도 그럴 용기가 생기질 않았고, 등에 누군가를 업고 빗길을 헤매는 나를 길 가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쳐다보는 것 같았다. 길을 건너 응급실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야 겨우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저희 어머니 좀 살려주세요"


2018년 7월 23일 새벽 1시 반에 눈이 떠졌다. 밤사이 꿈에 어머니가 오랜만에 찾아오셨고, 그냥 그 사실이 마냥 반가웠다. 이제 어머니와 내 나이차이는 15살로 좁혀졌다. 환갑을 맞던 해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흔 다섯살이 된 큰아들은 하루하루 어머니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금 우울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날 이후 무엇인가든 잘 미루지 않는다. 내가 그때 빨리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더라면, 쓰러지셨을 때 소리를 쳐서 주변의 도움을 좀 받았더라면이라는 후회는 그저 후회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체면보다 실리를 더 추구하게 되는 것도 같다.


2004년 7월, 속초에서 일주일 간 열렸던 '제1회 대한민국 음악축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속초 곳곳에서 열렸고, 나는 영랑호라는 곳에서 록 페스티벌을 진행하게 되었다. 데뷔 무대였다. 수천 명의 관중들이 객석을 채우기 시작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대개의 공연은 방송 시작 전 청중들과 교감을 해 놓지 못하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정보나 경험이 전무했고, 방송 시작 전 마이크가 내 손에 쥐어졌다. 대본을 달달 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첫 무대라 너무 떨렸다. 그래도 무대 시작 전 청중들과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MBC 아나운서 한준호입니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MBC 신입 아나운서 한준호입니다. 제가 지금 너무 떨려요" 이 한마디에 청중들이 마치 '우쭈쭈' 해주는 느낌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내줬다. "여러분은 저 한 사람의 시선을 느끼시면 되지만, 저는 오늘 여기 오신 수 천분께서 보고 계셔서 많이 긴장되는데요. 제가 좀 실수가 있더라도 격려 박수 많이 부탁드립니다." 내가 내민 작은 용기의 손을 관객들은 져버리지 않았고, 그 날 공연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2011년 개봉했던 영화 Soul Surfer(소울 서퍼)는 상어에게 공격을 당해 한 팔을 잃은 여성 서퍼 베서니 해밀턴이 다시 서퍼로 일어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2004년 자신의 자서전 'Soul Surfer'를 영화화한 감동 실화다.

바닷가에서 자라며 서핑을 즐기던 그녀가 13살에 상어에 물려 한 팔을 잃게 된다. 몸이 아물어가며 다시 서핑에 도전하지만 늘 장애라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던 중 태국 '쓰나미'현장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그녀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살피며 얻은 깨달음으로 남들의 이목이나 신체적 한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껌 씹던 소녀 '애나 소피아 로브'가 베서니 역을 맡으며, 높은 싱크로율에 더욱 몰입감이 좋았던 영화다. 베서니는 이런 경험을 담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포기하려던 삶을 극복하며 얻은 '용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Courage doesn't mean you don't get afraid.

Courage means you don't let fear stop you.

용기가 있다는 것은 겁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당신을 막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 Bethany Hamilton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과 있을 때, 내 생각을 전달하는 데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을 고백할 때도, 싸운 친구와 화해를 할 때도, 수업 중 손을 들고 발표를 할 때도,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볼 때도 우리에겐 용기라는 것이 필요하다. 용기(勇氣)란 한자 그대로 '겁내지 않는 기개'이며, 베서니가 이야기 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이다. 스피치 수업을 하며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도 바로 '나설 용기'였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용기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사회라는 환경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재독(在獨)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라는 책에서는 타인으로 인해 자아가 지워지는 현상에 대해 잘 설명해 놓았다. 내 삶 속에서 타인의 비중이 점점 커져 내 존재가 오히려 그 속에 들어갈 틈이 없어져 버리는 '피로사회'. 그로 인해 사회에서 설정한 '~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갇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을 오롯이 그 당위성에 맞춰 살아버리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드러내는 데 용기가 필요하게 된 것이 아닐까.

때문에 남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것은 여러 기술보다는 내 생각도 옳을 수 있다는 용기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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