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의 토리든 인수 검토가 던지는 질문

by Jason Han

지난 1월, LG생활건강이 토리든 인수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회사는 즉시 공시를 냈다. "확정된 사항은 없다. 다만 검토는 하고 있다." 부인이 아니었다. 나는 이 딜이 단순한 M&A 이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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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주의 추락>

LG생활건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안다. 한때 이 회사의 주가는 180만원을 넘었다. 화장품 한 종목에서 그런 주가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설화수와 후(后)가 중국 면세점에서 황금기를 누리던 때의 이야기다.

2025년, 그 회사의 화장품 부문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냈다. 976억원의 영업손실. 전사 영업이익은 62.8% 급감했고, 당기순이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시장이 변한 게 아니다. 시장을 읽는 사람들이 바뀐 것이다."

중국 소비 부진이 원인이라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K뷰티의 무게중심이 이동했다는 데 있다. 성분과 가성비로 무장한 인디 브랜드들이 틱톡과 아마존을 통해 전 세계 소비자를 직접 공략하는 동안, 레거시 대기업들은 면세점과 백화점이라는 낡은 채널에 기대고 있었다.

APR, 그러니까 메디큐브를 운영하는 회사가 아모레퍼시픽을 제치고 화장품 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오른 날, 무언가가 공식적으로 선언된 것처럼 느껴졌다. 시대가 넘어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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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패턴>

LG생건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수천억원을 북미 M&A에 쏟아부었다. 다만 방향이 잘못됐다.

2019년, 회사는 에이본(The Avon Company)을 1,450억원에 인수했다. 130년 역사. 미국의 상징적인 뷰티 기업. 서류상으로는 매력적인 딜이었다. 하지만 에이본의 매출 80%는 방문판매에서 나왔다. 디지털이 모든 것을 바꾸던 시대에, 방문판매라는 사업 모델을 산 것이다. 결과는 4년 연속 적자, 완전 자본잠식이었다.

더크렘샵은 달랐다. K뷰티 감성에 BT21과 디즈니 캐릭터 콜라보를 더한 브랜드. 미국 MZ 세대를 겨냥한 기획이었고, 타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창업자와의 지분 분쟁이 터졌다. 가치 평가 방식을 두고 의견이 갈렸고, 결국 ICC 국제 중재까지 갔다. 그 싸움 속에서 브랜드의 활력은 조용히 꺼졌다. 2025년, 더크렘샵은 순손실 156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에이본은 '무엇을 샀는지'의 실패였다. 더크렘샵은 '어떻게 운영했는지'의 실패였다. LG생건은 두 종류의 실패를 모두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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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리가 없다>

K뷰티 인디 브랜드 M&A의 골든타임은 2021년에서 2024년 사이였다. 그 시기에 움직인 플레이어들이 지금의 판을 짰다.

구다이글로벌은 조선미녀, 티르티르, 스킨1004, 라운드랩을 차례로 거두어들였고, 아모레퍼시픽은 코스알엑스를 9,000억원 가까이 들여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다. 달바는 2025년 코스피에 직접 상장했다. 아누아를 운영하는 더파운더즈는 매각설을 부인하며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조선미녀를 품은 구다이글로벌은 이미 IPO 주관사를 선정하며 상장 준비에 들어갔다. 기업가치 10조원이 거론된다.

성장 중인 브랜드의 창업자들은 지금 팔 이유가 없다. 시간이 갈수록 기업가치는 오르고, IPO라는 더 유리한 출구가 기다리고 있다. LG생건이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매물은 토리든과, PEF가 재매각을 추진 중인 썸바이미 정도다. 좋은 브랜드일수록 이미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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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그렇다면 토리든을 인수해야 하는가. 나는 방향성 자체는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인수 후, LG생건은 토리든을 그냥 두고 볼 수 있는가."

아모레퍼시픽과 코스알엑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모레는 인수 후 창업자가 계속 경영하도록 했다. 브랜드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았다. 채널도, KPI도, 보고 체계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 코스알엑스는 지금 아모레 전체 실적을 지탱하는 엔진이 됐다.

LG생건이 토리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있다. 미국·일본·동남아 현지법인 네트워크, 세포라와 얼타 같은 대형 리테일러와의 기존 거래 관계, FDA와 유럽 EC 인증 역량, 그리고 자금력. 인디 브랜드 혼자 뚫으려면 수년이 걸리는 장벽들이다.

하지만 주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백화점·면세점 입점 압박, 그룹 기준의 KPI 강요, 브랜드 방향성 간섭. 틱톡 바이럴과 아마존 SEO 전략은 LG생건이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배워야 할 영역에 가깝다.

대기업이 인디 브랜드를 망가뜨리는 방식은 항상 비슷하다. 처음 1~2년은 독립성을 보장한다. 그다음, 리포팅 체계를 요구한다. 그다음, 그룹 전략과의 alignment를 요청한다. 그다음, 브랜드는 조용히 기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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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를 보는 딜>

M&A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날이 아니라, 그 이후의 5년이 진짜 승부다. 독립 경영의 보장, 창업자 리더십의 유지, 대기업 인프라의 선택적 제공. 이 세 가지를 진심으로 지킬 수 있다면, 토리든은 LG생건 화장품 사업의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

반대라면, 5,000억원짜리 또 다른 실패 사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브랜드를 올리브영 진열대에서 집어 들었던 소비자들은, 어느 날 조용히 다른 세럼을 고를 것이다.

LG생건의 선택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그 선택 이후의 운영 방식을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