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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Jul 12. 2022

쓸모가 없는 나무는 자기 수명을 다한다

희비가 엇갈리는 고용지표를 보면서

요즘 주변 친구들의 이직이 잦다. 유연한 고용시장에 더해 공급보다 높아진 노동 수요 때문이다. 특히 컨설팅과 금융분야에서는 긴 근무시간과 높은 업무 강도를 떠나는 젊은 세대를 붙잡기 위해 과감한 연봉 인상을 제안했다. 게다가 몇 개 주에서는 연봉 액수를 지원자들에게 의무 공개하라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이제는 고용시장이 더 투명해지고 피고용인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너도나도 앞다퉈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에, 조용히 준비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옮기고 있다. 안타깝게도 극심한 불경기 속 호황은 그동안 수혜를 봤거나 이제야 특수를 누리는 기업들에 국한되어있는데, 십 년을 넘게 해온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 좀 더 높은 액수를 부르는 산업으로 옮기는 이들도 적지 않게 보인다.


금전적 보상은 그만큼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이다. 자아실현, 복지와 근무시간에 비해 내 통장에 들어올 수 있는 금액은 훨씬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화로써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비단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회사 내에서 인정받는 가치, 큰 범주의 사회 안에서의 입지를 나타낸다. 가끔 맡은 업무보다도 몇 자릿수의 연봉과 직급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외식, 문화생활의 빈도수와 깊이도 지갑의 두께와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피하려 해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나오는 내 집 마련과 결혼에 대한 대화에서 꼬리를 물고 나오는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2021년 미국인들이 직장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연봉이었다. 출처: Fox Business

돈은 피상적 가치 너머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GDP가 전반적인 국력을 나타내지만 생활수준과 삶의 질을 생략하는 것처럼, 금전적인 가치 또한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뛰어난 애널리스트가 평가를 내린다 하더라도, 수익성 모델 안에는 많은 가정과 예상치가 포함되어 있어 실제 기업의 가능성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애초에 화폐 자체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회계라는 약속 안에서 창출된 이익 그리고 그 이익에 대한 의견은 인위적이고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예로 미국에서는 토마토가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이나 일반적으로 요리에 이용되기 때문에 채소 관세를 물어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다 (Nix vs Hedden). 토마토의 성질은 그대로였으나, 그에 대한 금전적인 책임만 바뀌었을 뿐이다. 과일보다 채소로써 "쓸모"가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회사의 입장으로서 쓸모를 판단하는 것은 분기나 연도의 이익에 관련된 경우가 많다. 멀리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당장의 주주회의도 중요하고 이끌어가야 할 조직원에게 할당할 단기간의 목표도 중요하다. 이득이 될지 안될지에 대한 판단은 현재에 맞더라도 미래에 거센 비판을 받기 쉽다. 신으로 일어난 회사들이 기존 사업을 접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지 못해 저물어가는 것 또한 같은 이치일 수 있겠다. Woolworth를 누르고 일어난 Sears과 K Mart가 Walmart에게 지고, 이를 견제하며 올라온 Amazon이 좋은 예다. 유통의 혁신을 외치며 우뚝 선 거인들이 새로운 흐름에 무너진 것은 어리석어도 아니고 게을러서도 아니다. 미래에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할지, 어떤 사업이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Woolworth는 세계 최초 손님이 도움없이 직접 둘러보고 살 수 있는 저가 매장이었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다. 출처: Boston Public Library

쓸모는 각자의 잣대와 시간대로 판단한다. 대의 큰 흐름 속에서 각자 자신만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평가를 내리는데, 이 판단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언제 돌아보느냐에 따라 달려있기도 하다. 얼마 전 고등학교 시절 같이 방을 썼던 친한 친구와 연락을 했다. 철학 박사를 곧 마치고, 인공지능 관련 연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앞으로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생길 도덕적인 문제와 근본적인 생각의 틀을 다지는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했다. 5년 전 철학 연구를 한다는 친구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주변 친구들은 우려를 표했다. "쓸모"가 있는 학문인가? 학계 연구가 아니라면 수입원이 있는가?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는 로봇과 컴퓨터에 의존하게 된 우리가 그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을 묻게 될지도 모른다.


취업 준비로 정신없던 대학교 4학년, 금융계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많은 학생들이 파생상품 관련 부서들에 몰려들었다. 열띤 분위기의 주식시장과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이 분야를 마다하고 선배는 관심 있는 직종을 선택했는데, 당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는 금융공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급감했고, 평생 성공가도를 달릴 것만 같았던 다른 선배들이 해고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경기회복 후에 다시 금융공학의 인기가 늘어나고, 그동안 급성장을 이뤘던 테크 회사들이 대규모로 해고하는 것을 보면 그때의 "쓸모"와 지금의 "쓸모"는 다른 듯하다.

2008년 금융위기는 많은 경제/경영 전문가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출처: The Guardian

지금의 쓸모없음이 결국 쓰이게 되는 밑바탕이 된다. 이는 역설이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그 쓰임을 헤아리지 못한 나의 얕은 지식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좋은 재목이 못될 큰 도토리나무를 하찮게 여긴 목수와 같은 사람들을 의 목소리를 빌어 꾸짖는다. 과일나무처럼 과일이 따이고, 다른 재목처럼 크고 작은 가지가 꺾였다면 이처럼 큰 고목이 되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고목의 장점은 수많은 고비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 우직함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요즘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는 순간의 가치에 연연하지 않는 고목 같은 정신이 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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