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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의 수명, 독수리의 재탄생 이야기에 대하여

우리는 이 허구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by 장재준


u8897899682_httpss.mj.runIwr1H-vQtWw_A_majestic_dark_brown_ea_72f73468-ed7d-.png?type=w773 [이미지] 검은독수리(글쓴이가 생성형AI로 만든 이미지)



1. 검은독수리의 재탄생 이야기


검은독수리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검은독수리는 40세가 되면 부리가 길고 굽어 먹이를 잡기 어렵고, 발톱은 약해지고, 깃털은 무거워져 더 이상 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독수리는 외딴 바위산에 올라가 부리를 쪼아 깨뜨리고, 새 부리가 자라면 그것으로 발톱을 뽑고, 다시 새 발톱이 돋으면 낡은 깃털을 모두 뽑아낸다고 한다. 그렇게 150일간의 고통을 거쳐 독수리는 다시 살아난다. 새로운 몸을 얻은 독수리는 또다시 새로운 30년, 또는 40년을 더 산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검은독수리는 40년의 삶을 마감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야기는 강렬하다. 고통을 감내하고, 낡은 자신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 그 메시지에 많은 이가 감동하고, 용기를 얻는다. 이 이야기는, 2007년 무렵 미국에서 등장하여 이후 현재까지 성공학, 자기계발서와 강연, SNS에서 '변화를 위한 자기 자신의 희생'에 대한 비유적 이야기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 지금도 유명 포털 사이트에 '독수리 수명', 또는 'Rebirth of the Eagle' 으로 검색해 보면 이 이야기에 대한 수많은 검색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살아가는 동물이 있을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맥 빠지는 일이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허구다. 그런 식으로 부리와 발톱을 뽑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새는 없다. 독수리는 그렇게 다시 태어나지 않으며, 그 어떤 새도 그런 갱생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실제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노화되어 간다. 새들은 부리가 손상되면 다시 자라지도 않을 뿐더러 독수리의 경우 신진대사가 왕성하기 때문에 150일은 커녕 단 몇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또한 자연상태에서 독수리의 수명은 20~30년 남짓이고 야생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독수리는 32년을 살았을 뿐이라고 한다.(주.1, 2, 3)


야생 조류 재활 전문가이자 야생조류에 관한 소설 'Unflappable' 저자인 수지 길버트(Suzie Gilbert)는 말한다. 그 어떤 독수리도 스스로 부리를 깨고, 발톱을 뽑고, 6개월을 견디며 다시 태어날 수 없고 80세까지 사는 독수리도, 그런 갱생 과정을 거치는 독수리도 없다고.(주.3)


이 감동적인 서사는, 결국 인간이 만든 허구의 우화다. (지금도 이 허구 이야기를 믿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검색해 보면 철썩같이 믿는 분들도 있는듯 하고 어떤 글에서는 때로는 '검은독수리'였다가 '콘돌'이 되기도 하고 40년 산다고 했다가 30년 산다고 하기도 하는 것처럼 조금씩 각색된 이야기들도 넘쳐나는 걸 보면 허구임을 짐작하고 살을 붙이는 사람들도 있는듯하다. 심지어 네이버에서 최근 도입한 AI브리핑에서는 아예 기정사실로 알려주고 있다.(주.4)


사실, 이런 류의 성공학에 등장하는 이야기 들 중 유독 허구가 많다.


예전에 내가 '[성공 법칙 이야기] 3% 성공의 법칙은 허구였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의 하버드대학교, 예일대학교의 3% 법칙 이야기도 조사해 보니, 허구였음을 밝힌 바 있다. (참고: https://blog.naver.com/junie883/221216311075) (주.5)


그런데 허구라고 해서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야기의 진위는 때때로 2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가 허구든 사실이든,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통찰을 이끌어내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은독수리의 갱생 신화가 사실이 아니라 해도, 그 비유는 누군가의 마음에 결단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이 이야기는, 만들어 낸 사람이 원하는 목적을 다한 셈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질문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도 있다. 이야기가 작동하는 방식이 설득력과 감동을 넘어, 진실에 기반할 때 더 오래 살아남고, 더 깊이 신뢰받기 때문이다. 진실을 근거로 한 이야기야말로 시대와 공동체의 인식 속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다. 또한 허구라도 의미가 있다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 의도가 좋다면 거짓말로 현혹해도 된다는 사고는 진실을 위협하는 위험한 방식이 아닌가. 이야기의 힘은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지만, 그 힘이 정직한 기반 위에 서 있는가는 언제나 물어야 할 질문이다.




2. 바닷가재 이야기



검은독수리의 이야기가 허구라면, 실제로 과거의 낡은 껍질을 벗으며 진정한 변화를 겪는 실제 사례는 없을까?


조금 덜 극적일 수는 있지만, 검은독수리와 거의 같은 서사를 지닌 진짜 동물이 존재한다. 바로 바닷가재다. 바닷가재는 검은독수리 이야기를 완벽하게 치환할 수 있는 훌륭한 생물학적 은유다.



u8897899682_A_large_lobster_molting_underwater_shedding_its_o_8db3b67a-95eb-.png?type=w773 [이미지] 바닷가재 (글쓴이가 생성형AI로 만든 이미지)



바닷가재는 불로장생의 생물로 알려져 있다(실제 바닷가재는 노화로 죽지 않는다). 대부분의 동물이 일정한 수명 한계를 지닌 것과 달리, 바닷가재는 유난히 긴 수명을 자랑한다. 이는 텔로미어(Telomere)(주.6)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물은 세포 분열을 거듭할수록 텔로미어가 점차 짧아지고, 결국 세포 활동이 멈추며 노화와 죽음에 이르지만, 바닷가재는 텔로미어를 재생하는 효소인 텔로머레이스(Telomerase)(주.7) 가 활발하게 작용해 세포 노화가 현저히 늦춰진다. 이론적으로는 영생도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그래서 이 독특한 생물은 나이를 먹을수록 계속 성장하며 생식 능력도 향상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노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지고 단단해진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 연장을 위해 바닷가재 텔로머레이스 연구가 활발하다)


그런데 바닷가재는 외골격을 가진 생물이다. 몸을 보호하던 껍질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성장의 방해물이 된다. 나이를 먹으면 더 이상 단단한 껍질 속에서 성장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탈피를 해야 한다. 그러나 외골격이 강해진만큼 탈피는 더욱 어렵고 위험한 과정이 된다. 생애 동안 수십 차례 탈피를 반복해야 하는데, 단 한번의 탈피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매년 전체 개체의 10~15%가 탈피 도중 체력 고갈로 사망한다. 탈피에 성공하더라도 갓 벗은 껍질 아래의 부드러운 몸은 외부 위협에 매우 취약하다. 다른 포식자는 물론, 같은 종에게도 쉽게 잡아먹힐 수 있다. 그래서 낡은 외피를 벗기 위해서는 은밀한 바위틈에 숨어들어 외부의 위협을 피해 조용히 탈피를 시작한다. 그동안 바닷가재는 무방비 상태가 되며, 외부의 위협 앞에 쉽게 노출된다. 실로 생명을 건 혹독한 선택이다. 그러나 껍질을 벗지 않으면 새로운 삶이나 성장은 없다.


결국 바닷가재의 죽음은 두 가지 이유로 찾아온다. 하나는 인간에게 잡히는 경우, 다른 하나는 탈피의 실패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성장과 생존을 위해 반드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견뎌야 한다. 이 과정이 없다면 낡은 껍질에 갇혀 생물학적 한계에 직면하거나 세포 변이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바닷가재에게 탈피 과정이 반복될수록 고통은 더 깊어지고, 위험은 더 커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 ‘더 큰 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익숙한 틀과 안정감, 반복되는 타성을 벗어나야 한다. 그 과정은 언제나 위협적이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과정을 피하면 진정한 변화도 없다. 창의적인 사고와 새로운 도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나를 벗어던지지 않으면, 새로운 나는 탄생할 수 없다.


바닷가재의 탈피는 성장과 변화의 생물학적 은유다. 인간은 내면의 껍질, 즉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오래된 습관,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진 자아를 벗어야만 더 자유롭고 확장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껍질 안에서의 안락함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변화는 멈춘다.




3. 넬슨 만델라 이야기 — 고통의 감옥에서 세계의 지도자로



바닷가재가 실제 껍질을 벗으며 성장하듯, 인간의 삶에서도 극단적인 고통의 시간이 어떤 존재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끌기도 한다. 넬슨 만델라는 그런 사례다.


mandela-1024x551.jpg?type=w773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싸우다 27년간 감옥에 갇힌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시간을 증오와 복수심으로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만델라는 달랐다. 그는 감옥이라는 철창 안에서 껍질을 벗었다. 젊은 시절 급진적이었던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익혔다.


그 긴 침묵과 고통의 시간이 그를 세계적 지도자로 만들었다. 만델라는 자유를 얻은 뒤에도 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서는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진정한 통합의 길을 택했다.


"나는 젊을 때 매우 급진적이고 모든 사람과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출옥 후에는) 더 이상 대중을 선동하는 연설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만델라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감옥에서 벗어나 세계 앞에 다시 등장했을 때,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그런 비인간적인 감옥 생활을 하고 난 후 (백인에 대해) 복수심이 아닌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만델라의 대답은 결국 하나였다. "내가 만약 감옥에 있지 않았다면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과제, 즉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옥에 앉아서 생각할 기회는 바깥세상에서 가질 수 없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자신을 깨뜨리고,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주.8)



검은독수리의 이야기는 허구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상징과 은유는 여전히 유효하다. 바닷가재와 같은 실제 생물은 그 은유를 사실 위에 얹어 살아내고 있고, 넬슨 만델라는 그 진실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증명했다.


디자이너의 삶도 그렇다. 디자인은 문제의 본질을 찾아 해결하는 일이자 타인을 위한 일이며, 그것은 결국 변화에 응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종종 낡은 껍질을 깨야만 할 때가 온다. 내 안의 익숙함을 버리고, 고통스럽더라도 나 자신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순간. 그 순간을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진짜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껍질을 벗는 고통은 새 삶을 얻는 축복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낡은 것들을 버리지 못한 채 그것들을 껴안고 살아간다.

과거의 낡은 지식, 오류에 가까운 신념, 쓸모를 다한 관계, 더는 나를 채워주지 못하는 습관들, 이미 기능을 잃은 자존심조차.

우리는 그것들을 안고, 또 안고, 끝내는 그것에 매몰되기도 한다.


가재가 허물을 벗을 때, 그는 가장 연약한 생물이 된다.

그 고통스런 탈피의 시간 동안, 가재는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숨고 기다린다. 그리고 과거의 껍질을 벗어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죽음의 모험을 견뎌낸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허물을 벗고 나면 새로운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상처가 있고, 주름이 있고, 약해 보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진 어떤 ‘자신’이 거기에 있다.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보낸 27년은 다른 사람에게는 증오와 원망의 시간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기를 부수고 다시 조립하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증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해체했고, 끝내 용서라는 이름으로 자기 세계를 다시 세웠다.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알 속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껍질을 깨뜨려야만 한다. 때로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의식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의 이별일 수도 있고, 익숙한 역할에서의 퇴장일 수도 있다. 그 모든 아픔은 새로운 자신을 향한 전주곡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그 검은독수리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지 몰라도, 바닷가재와 넬슨만델라와 같이 같은 교훈을 주는 실제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 시기에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이 거기 있다고,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주]


1. The Rebirth of the Eagle(독수리의 재탄생. 2007). (https://www.snopes.com/fact-check/rebirth-of-the-eagle/?utm_source=chatgpt.com)


2. The Rebirth of the Eagle Story(독수리 이야기의 재탄생 — 미네소타 바운드. 2012). (https://mnbound.com/eagle-blog/2012/5/16/the-rebirth-of-the-eagle-story.html?utm_source=chatgpt.com)


3. Suzie Gilbert.(2015). The Eagle’s Rebirth. Yep. Seriously. (https://www.10000birds.com/the-eagles-rebirth-yep-seriously.htm)


3. 네이버 '독수리 수명' 검색 결과, AI브리핑 모습(2025.07.29) 이미지

%EB%8F%85%EC%88%98%EB%A6%AC_%EC%88%98%EB%AA%85.jpg?type=w773 [그림] 네이버에서 '독수리 수명' 이야기를 사실로 적시하고 있는 AI브리핑



5. [성공 법칙 이야기] 3% 성공의 법칙은 허구였다.(https://blog.naver.com/junie883/22121631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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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텔로미어(Telomere)는 염색체 말단에 위치한 반복 염기서열로, 세포 분열 시 DNA 손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질수록 세포 노화가 가속화되며, 이는 노화, 암, 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질병 위험 증가와 연관된다.


7. 텔로머레이스 (Telomerase)는 염색체의 끝부분에 있는 세포의 수명을 결정하는 서열인 텔로미어를 신장시키는 효소이다.


8. [만델라 서거] 27년 옥살이 후에도 용서 외친 만델라 "가장 위대한 무기는 平和" 이성훈. 2013.12.07.(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07/20131207002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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