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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과 AI시대 노동의 미래

노란봉투법과 AI시대의 고용 패러다임 변화에 대하여

by 장재준


노란봉투법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은 10여년 동안의 숙원이던 노란봉투법을 강행하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까지 하다가 결국 표결에 보이콧했다. 재계는 불만을 터뜨리고 노동계는 환영한다. TV에선 연일 뉴스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이란 무엇인가?


노란봉투법이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 개정안」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간접고용·하청노동자들에게도 교섭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파업 이후 기업으로부터 많게는 수십억의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곤 했다. 이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만들어 사실상 파업할 권리를 무력화시켰다. 노란봉투법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등장했다.


이 법의 본질은 노동자들이 파업이나 단체 행동을 했을 때 기업이 과도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 법이 ‘노란봉투법’이라 불리게 된 배경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따른 쌍용차의 영업 손실로 거액의 손해배상 위기에 몰렸을 때,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후원금을 담아 보내며 연대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상징이 지금까지 이어져, 법안의 별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u8897899682_Koreas_massive_labor_dispute_many_people_holding__853160b4-cfc0-.png?type=w773 [그림]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만든 파업 이미지 ⓒ장재준

이 법의 본질은 노동자들이 파업이나 단체 행동을 했을 때 기업이 과도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강화하는 데 있지만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노란봉투법의 주요 쟁점은 무엇인가?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기업의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제한이다. 불법 파업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골자다. 찬성하는 측은 이를 통해 노동자가 빚의 압박 없이 정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하는 쪽에서는 불법 파업에 대한 책임을 약화시키면 기업이 큰 피해를 떠안을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둘째, 사용자 범위 확대다. 예를 들어, 대기업 본사 같은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의 근무 조건을 사실상 결정한다면, 교섭 당사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찬성하는 측은 원청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 측은 원청에까지 책임을 부과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거 사례에서 배울 점 – 강사법의 교훈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권익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과거 재계와 반노조, 기업 친화 정부에 의해 많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지 못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진보한 시대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세계는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보호’를 내세운 제도가 역설적으로 해당 집단의 기회를 축소하거나 권리를 약화시키는 사례가 역사 속에 반복되어 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비슷한 사례는 존재한다. 바로 ‘강사법’이다. 강사법은 대학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위해 고용 보장과 4대 보험을 도입한 제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학들은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해 시간강사 채용 자체를 축소했고, 그 자리는 기존 교수들의 과중한 업무로 이어졌으며 4대보험과 고용 보장이 필요 없는 겸임교수로 대체되었다. 그 결과, 젊은 연구자들은 강의 기회를 얻기 어려워졌고, 강의 경력을 요구하는 전임 교수 채용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 또한 학문적 연구보다는 기업 경영이나 본업이 있는 겸임교수들이 강의를 대거 맡으면서 대학 강의와 연구의 질마저 떨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즉, 권익 보호를 위한 법이 오히려 해당 집단의 기회를 축소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은 것이다. 노란봉투법 역시 이러한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법의 취지는 좋지만, 기업은 법적 리스크와 파업을 피하기 위해 신규 고용을 줄이고 해외로 사업을 옮길 수 있으며 외국계 기업도 사법 리스크를 안고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한다. 결과적으로 제조업, 조선업, 자동차산업 등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산업은 해외 탈출 엑소더스가 일어나 산업 구조가 붕괴되고, 건설업 등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를 오히려 선호하게 되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 정작 보호받아야 할 우리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더 큰 도전


여기에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노란봉투법을 과거의 시각으로 노사간의 문제만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현실은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확산으로 고용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노란봉투법과 같은 노조의 권리를 강화하는 법의 등장은 근미래 고용 구조를 더 빠르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10여 년간 기업들은 이미 컴퓨팅 기술과 로봇 공학의 발달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신입 사원 채용을 크게 줄여왔다. 현재 대기업의 채용 상황 중, 디자이너 직군 대졸 신입사원만을 놓고 보면 실질 채용이 거의 '0'인 상태다. 연간 3만 명 가량의 디자인 전공자가 배출되는 상황에서 그 많은 디자이너들은 다 무얼, 어떻게 먹고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제조업의 감소 및 해외 이전과 디자인 업무 외주화에 원인이 크지만, 컴퓨팅 기술의 발전으로 디자인 업무의 효율 극대화(효율 극대화는 결국 인원 감축으로 이어진다) 라는 원인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인공지능이 고도화 되면서 기존 지식 노동자의 역할마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반복적이거나 분석적인 업무는 AI가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고, 제조·물류 현장에서도 인공지능기술이 적용된 로봇이 사람의 자리를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블루컬러 노동자들도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우리가 겪어왔던 점진적인 산업 재편이 아니라, 급격히 전 사회적 고용 위기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고용은 더 줄고, 신규 고용도 막혀있고, 기존 고용자들도 고용 자체가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과거의 산업 패러다임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과 기업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며,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u8897899682_httpss.mj.run86TpwaGHLcA_a_dreamy_geometric_image_9ba90f9c-5fe2-.png?type=w773 [그림]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만든 인공지능의 개념을 형상화한 이미지 ⓒ장재준



그러나 현재 온 나라와 기업들은 온통 AI에 빠져있다. 정부는 AI 산업 육성을 위해 100조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대규모 투자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29년까지 1조 245억 원을 투입해 전 국민 대상 AI 서비스 구축하고, 이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여 2030년까지 600개 AI관련 R&D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AI 기반 연구 설계 솔루션을 개발한다고 한다. 교육과 제조, 디자인, 국가 경영에 이르기까지 온통 AI 도입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와 기업 경쟁력은 앞으로 AI에 달려있다고 할 정도로 산업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온통 AI를 도입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아쉬운 점은 정작 AI 이후의 고용과 산업 질서는 누구도 거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부문에 AI가 도입되면 고용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2017년 무렵부터 대두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고용과 직업의 감소다. 필자도 4차산업혁명, 나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2017)》에서 이를 논한 바 있는데, 이미 컴퓨팅 기술과 자동화 기술로 훨씬 오래 전 부터 고용은 줄어들고 있었고, 인간의 지적 능력마저 대체 가능한 AI의 전 분야 도입은 고용을 얼어붙게 만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파업할 권리를 더 강화한다면 기업은 고용을 더 기피할 수밖에 없다. 이미 중국은 자동차 생산에서 도장 품질 검사 등 인간만이 수행하던 미묘한 감각이 동원되는 업무를 휴머노이드 로봇이 투입되어 수행하고 있다. 오히려 고온의 작업환경에서도 업무 수행이 가능하고 충전 배터리만 교환하면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중단 없이 일할 수 있으니 기업은 무척 만족한다고 한다. 대당 가격도 2천만원 선까지 내려가 노동자에게 연봉을 주는것 보다 더 비용 효율이 뛰어나다고 할 정도다.


우리는 아직 AI 이후의 미래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을 고용하여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더 비용이 많이 들고, 법적인 리스크가 더 크고, 관리상의 애로가 더 많이 발생한다면 누가 인간을 채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너무나 자명하다.



인공지능 시대의 고용 패러다임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흐르는 강물은 손으로 막을 수 없다. 이제라도 전 세계가 인공지능 개발과 서비스를 멈추고 인간만을 고용하도록 하는 범세계적 법률을 가동한다면 모를까, 역사적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도입하는데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이후의 세계를 연구하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대한 방안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지금 더 필요한 것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고용 보호’라는 패러다임 보다 오히려 고용의 탄력성을 높이고,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창업이 용이하도록 각종 지원책과 세금 감면 등 창업 여건을 확대하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실질적 대안이 절실한 상황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개인이 전통적인 고용과 자영업 외에도 경제 활동을 할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역량과 기술, 아이디어와 같은 창의성을 자본화 할 수 있는 플랫폼과 같은 것이 마련되어야 한다. 기업에 대해서도 규제만 들이대지 말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획기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고용을 늘리고 이익을 직원들에게 나누는 기업은 늘어난 고용과 임금에 따른 세수 이상으로 세제 혜택을 주어야 하며 그러한 기업들은 정부 사업에서도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출산 뿐만 아니라, 고용이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라는 인식을 갖게 할 필요도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려는 선의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할 것이냐의 문제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 강사법에서 보았듯이, 법은 언제든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인공지능이 몰고 올 거대한 고용 재편의 시대를 고려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노동시장을 규제로 묶는 것 못지 않게, 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역동적 고용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일일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과거의 패러다임에 매달릴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대비하는 새로운 고용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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