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의 정치 체제 특성 비교
로망(Roman), 로맨스(Romans)라는 말은 '로마의', '로마적인 것'이라는 뜻으로부터 출발했다. 전기적이고 통속적인 애정담, 무용담을 담은 소설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가 현대에 와서는 '극상의 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보면, 서양인들이 얼마나 로마를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류를 로마에서 찾기에 거리낌이 없다. 프랑스의 옛 왕국인 프랑크제국은 자신들이 로마제국의 부활이라고 믿었고, 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족들마저 자신들을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렀다. 그들이 로마에 대한 애정을 갖는 이유는 그들이 전 세계를 호령하며 가장 번성했었고, 현재까지도 경제적, 정치적으로 번성하게 만든 근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 제국이 오랫동안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연대 시스템이 적절히 가동되어 순기능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권력에 대한 견제로 민주주의를 유지했고 국가 위기 시에는 일사분란한 연대를 통해 국가 체제를 유지했다. 이것은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철칙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을 들여다 보면 세 나라가 각자 민주주의 체제의 개성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을 보면 서구 민주주의의 시초였던 로마의 국가 전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첫째, 강한 국방력의 확보를 통한 '팍스 로마나'와 같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표방한다는 점.
둘째, 철저한 삼권 분립의 유지.
셋째, 자유에 대한 가치 추구를 표방한다는 점이다.
특히, 자유 시민제는 누구나 원한다면 시민으로 받아들여 주고, 자유 무역을 통해 어느 국가와도 무역을 한다는 점은 고대 로마를 쏙 빼닮았다. 이러한 전략을 토대로 로마는 무려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시작하여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을 마지막으로 1453년까지 존속했다. 활과 창을 들고 싸우던 고대 로마시절부터 사용하던 이러한 국가 전략을 인공위성이 날아다니는 현대 미국이 철저히 추종함으로써 글로벌 초 강대국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평상시에는 권력에 대한 견제로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국가 위기 시에는 연대를 통해 국가 체제를 유지한다는 점 또한 미국이 철저히 따르는 철칙이자 불문율이다.
여기서 잠깐 로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가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전설은 실은 창녀의 손에서 자란 비천한 신분을 뜻한다고 한다. 당시 매음굴은 속칭 늑대굴(라틴어: lupanare) 로 통했기 때문이다.1 로마의 도시국가 건설은 강한 사람들이 모여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도시국가에 끼지 못하는 로물루스, 레무스와 같은 이러한 비천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척박한 땅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미 자리 잡은 비옥한 다른 도시국가를 침략해서 수탈해야 했고, 그들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따르면 시민권을 주고 저항하면 철저히 도륙하고 노예로 삼았다.
로마를 세운 사람들이 핍박받던 하층세력이었기에 그들의 의식세계에는 절대적, 세습적 왕정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이것은 삼권 분립이라는 합리적인 공화제의 탄생을 가져왔다. 미천한 출신들이었기에, 그리스처럼 미학과 철학에 대한 열망보다 오로지 강력한 국가 권력의 확장을 통해 잘 사는 것에 집착했다. 그래서 저급한 향락 문화가 팽배했다. 심지어 이성간의 성행위가 너무나 흔해져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미소년과의 동성애 풍습에 빠지게 되었다.
로마의 몰락은 그러한 향락주의와 시민권의 남발, 삼권분립의 와해, 그리고 높은 장벽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새 강한 로마를 만든 로마군대에 정작 로마인은 없었고, 이민족들로 채워져 있었다. 로마인들은 누군가는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외면했고 이민족 하층민들이 그 일을 차지하게 되면서 애국심은 사라져 오로지 급여 수준에 따라 전투에 참여하거나 파업하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급여를 올려 주지 않은 것에 불만이 가득찬 군인들이 황제를 암살하기까지 했다. 황제들 조차도 군대만 신경쓰면 된다고 할 정도였다.
정권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갖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향락을 유도했고, 향락에 빠진 국가를 유지하고 막대한 군비를 채우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세금이 필요했다. 시민권의 남발이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단, 재력을 가진 자만 해당됐다.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세원으로만 본 것이다. 이들은 결국 기존 로마 시민들과 차별을 깨닫고 불만 세력이 되었고 재력이 부족하여 시민이 되지 못한 자들은 로마의 적대 세력이 되었다. 그래도 국가 재원을 충당하지 못하자 화폐에 농간을 부리기까지 했다. 금화, 은화에 잡금속을 섞어 화폐 가치가 폭락했다.
로마는 갈수록 타 국가를 무시하고 거만해졌다. 그러자 적대 세력은 더 많아졌고 외부 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한 거대한 장벽을 쌓았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로마제국은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 중 몇가지는 현재 트럼프의 미국이 저지르는 일과 흡사하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
암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일본의 정치 체제를 살펴 보면, 평상시나 국가 위기 시에나 모두 연대를 통해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평화적인 안정 기간에도 권력에 대한 연대를 위주로 국가가 운영된다면 민주주의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모험을 각오하고 연대를 떨치고 나와 권력에 대한 견제를 시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주류에서 배제 당하는 지름길이 되고 만다. 따라서 개인이든 조직이든 연대를 거부할 수 없는 풍토가 자리잡게 된다. 결국 사회가 보수화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언제든 내부의 문제가 팽창하거나 강력한 독재 정권이 집권하게 되면 외부로 눈을 돌리는 군국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은 항상 불안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견제만 살아있다. 평상시 권력에 대한 견제로 민주주의를 유지, 발전시키고 있지만, 국가 위기 시에도 서로 견제하느라 국가 체제에 불안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정치 풍토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분단이 된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내부의 싸움을 멈추고 연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위기 상황에서조차 네탓에 여념이 없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웠던 상황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불안 요인을 상쇄하고 국가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시민세력이었다. 국가의 전란 시에는 백성들이 나서 의병을 조직했고, 위정자와 관군이 도망치는 와중에 의병들과 아낙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IMF 금융위기 때는 전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했고, 수백만 국민들이 남녀노소 촛불을 들고 나서고, 일본 극우정권이 일으킨 경제 전쟁에도 우리 정치권은 네탓을 하며 분열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스마트한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다.
견제만 살아있는 정치 체제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정치에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언제 위태로워질지 모르니 국민들이 정치를 잘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들 마저도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주]
1. 이 이야기는 의외로 역사 깊어서 기원전 1세기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가 처음 제기한 가설이다. 늑대를 지칭하는 라틴어 단어는 'lupa' 인데 이는 매춘의 관용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단어 'lupanare'은 아에 매음굴을 가리키는 표준적 용어이기도 하다. 이 가설에 따르면 초기 기록에서 쌍둥이를 발견한 것은 늑대가 아니라 그 지역의 매춘부였고 이를 옮겨 적다보니 쌍둥이의 보모가 늑대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로마 신화를 역사의 영역으로 내리는 과정에서 생긴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출처-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메리 비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