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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해야 즐거운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쥐도 숨바꼭질 놀이 즐긴다

by 장재준


우리는 어떻게 해야 즐거운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직업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최근 재미있는 연구를 접했다. 제목은 'Behavioral and neural correlates of hide-and-seek in rats(쥐의 숨바꼭질 행태와 신경의 상관관계)'라는 논문으로, 저명한 과학 학술지인 사이언스지 2019 년 9 월 13 일 등재된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 생물학과(교신저자: 미하엘 브레히트 교수, 주저자: 아니카 스테파니 레인볼트) 연구다.주1


내용은 이렇다. 쥐 6마리에게 숨바꼭질을 가르쳤더니 6마리 모두가 놀이를 이해하고 인간과 숨바꼭질 놀이를 즐겼으며, 6마리 중, 5마리는 인간과 술래 역할을 바꿔 즐기는 응용력도 발휘했다는 것이다.


숨바꼭질 놀이는 인간의 유소년기에 즐기는 놀이로서 사실 꽤 고도의 전략적 역량이 요구되는 놀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상대방이 찾기 어려운 곳을 골라 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놀이를 쥐들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쥐는 감정에 따라 고주파 소리를 내는데,이 쥐들은 숨바꼭질 놀이를 매우 즐거워해 기쁠때 내는 초음파 소리를 기뻐 날뛰듯 연신 질러댔다고 한다.


a7.jpg 미하엘 브레히트 독일 훔볼트대 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쥐도 숨바꼭질을 학습할 수 있으며 인간과 게임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3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쥐들에게 먹이와 같은 보상을 주지 않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놀이를 익히도록 했다. 쥐들이 술래가 되어 사람을 찾는 것에 성공하거나 사람을 피해 성공적으로 숨었을 때는 보상으로 간지럽히거나 쓰다듬었다. 마치 아들과 아버지가 레슬링을 하듯이 거친 놀이를 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쥐들이 놀이를 반복할수록 숨바꼭질 전략에 능숙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쥐들은 술래 역할을 맡을 경우 사람이 숨은 위치를 체계적으로 찾아내고 시각적 단서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사람이 과거에 숨었던 장소를 집중적으로 탐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쥐들은 숨는 역할을 할 때는 소리를 내지 않고 사람이 있는 위치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었고 투명한 박스보다 불투명한 어두운 박스에 숨기를 선호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람이 다가올 때는 위치를 슬쩍 바꿔 숨기도 했다. 또 연구팀은 쥐들이 맡은 역할에 따라 쥐 뇌의 전액골 피질(Prefrontl cortex)에서 강한 신경활동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의 경우 이 부위는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인 ‘조망 수용’과 '사회적 인지능력'과 관련이 있다.


특이한 점으로는 “먹이를 보상으로 제공하는 실험에서 쥐들은 기뻐 날뛰는 소리를 내지 않으며, 몇백 번이고 주어진 행동을 하고 먹이를 담담히 받아먹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 연구는 하등한 동물들은 본능에만 의지해 살아간다는 인간의 오만한 믿음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신경학적 연구를 통해 쥐와 같은 동물들도 보상이 따르지 않는 놀이를 즐기고 전략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00502741_20190911 (1).jpg 연구 방법: 위는 찾기(술래) 놀이이고 아래는 숨기 놀이 방법이다. 원격으로 개폐 가능한 박스에 쥐를 넣어 술래잡기를 하고 결과에 따라 보상으로 장난 걸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쥐 조차도 보상 없는 놀이는 그토록 즐거워 하는데, 왜 보상이 따르는 놀이는 즐거워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점은 인간도 그렇다. 우리는 사람마다 특정한 '그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워 전공을 선택하고 공부를 한다. 그러나 '그 일'이 댓가를 받는 직업이 되는 순간, 우리에게 즐거움은 사라지고 고단한 '생업'이 된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직업을 수행하다 보면 다양한 스트레스 요소가 나타난다. 잘 해야 한다는 강박과 책임의식, 그리고 협업자들과의 갈등 관계 등으로 발생한다. 그러한 스트레스 요소들 때문일까? 그렇다면 쥐들에게 놀이의 댓가로 먹이를 주었을 때 즐거워하지 않는 것과 이러한 스트레스 요인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쥐들도 이러한 유형의 스트레스로 즐겁지 않다는 말인가? 혹시 복잡한 원인을 유추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이러한 원인 탓을 하는 것은 아닐까?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그동안 사람이 수행하던 일들을 기계에게 빼앗기고 있다. 사람이 하던 삽질은 포크레인에게 빼앗긴지 오래고, 은행 창구 직원 역할은 ATM에게 빼앗기고,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수행하는 영상 판독 일을 AI에게 빼앗기는 식이다. 모두 인간보다 몇십배 이상 효율을 내는 기계들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다양한 직업들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권도 매년 10~15% 가량의 감원을 하고 있고, 다양한 직업들이 점점 줄어들어 그 자리를 자동화 된 시스템이 대신하고 있다. 이제 육체 노동과 단순 반복 작업이 기계의 역할이 되는 것은 기정 사실화 되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의 중추를 이루던 지식노동자들도 알고리즘 기술에 의해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점점 더 가속도가 붙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 되면 많은 운전직 종사자들의 직업적 몰락도 예견되고 있다. 이것을 돌이키거나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직업 10개중 하나로 꼽힌 직업이 바로 택시 기사다.2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는 자신이 환경을 통제할 수 없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으며, 노동량에 비해 수입이 적고, 사회적 인식도 낮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서비스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스트레스를 주는 직업을 인간이 즐겁지 않은 상태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러한 '즐겁지 않은 일'을 AI와 자율주행 시스템이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다면 기계가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직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즐겁지 않은 일이 사라지는 것이다. 즉, 기술의 발달로 즐겁지 않은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다.

다만, 즐거운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실, 기술은 인간이 스트레스 받는 즐겁지 않은 일들을 더 쉽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던 '즐겁지 않은 일'들에서 이제야 기술의 발달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 일들은 원래 인간이 하기에 적합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일들을 하기엔 인간은 너무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신의 일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즐거운 놀이같은 일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러한 세상에 도움이 되는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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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논문 원문 정보:

Annika Stefanie Reinhold et al, Behavioral and neural correlates of hide-and-seek in rats, Science, 13 September 2019, Vol 365 Issue 6458,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5/6458/1180/tab-article-info


2.미국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직업과 가장 스트레스 적은 직업 https://www.cnbc.com/2019/03/07/the-most-stressful-jobs-in-americ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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