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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Mar 28. 2017

국수와 메추라기와 박카스 (Part 1)

- 어느 눈 내리던 밤 -

나만의 특별한 감정의 영역이겠지만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마음은 어지럽고, 몸은 무기력한......

흔히들 ‘슬럼프’라고 하는 것을 나는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감기처럼 겪는다.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껌처럼 떼어내려 하면 할수록 내 머릿속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들러붙는 과거의 괴로운 기억들.

분노를 넘어 목과 가슴에 답답증까지 느끼게 하는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격한 감정들.

그리고 누우면 지면 속으로 몸이 가라앉는 것 같은 무기력감.


이런 독감 같은 감정의 회오리에 휩쓸릴 때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얼마나 치가 떨리는지......

그리고 그럴 때면 인간에 대한 경멸과 나의 예민한 후각이 상호 상승 작용해 사람 각자 마다에게서 풍기는 체취는 역겹기 그지 없어진다.

몸에 향수를 들이붓듯 뿌린 사람들이 고마워질 정도로......


인간,

그저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급급한 탐욕이란 괴물들.

몸 안엔 냄새나고 구역질 나는 똥덩어리를 지니고 살면서 겉모습이란 껍데기에만 온갖 화학품을 동원해 꾸미는 역겨운 존재들.

그리고 그런 존재들 속에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끼고 절망하는 내 자신......


이런 생각들이 더 이어졌다간 내 자신이 견디기 힘들 것 같아 한밤중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점퍼에 달린 후드를 눈썹께 까지 덮어쓰고 무작정 밤길을 걸었다.


낮 동안 내린 비로 물기 머금은 아스팔트 위엔 네온사인 조명들이 뿜어낸 의미 없는 빛들이 어지럽게 빛나고 있었고, 별빛을 닮고 싶어 하는 가로등 불빛은 차가운 대기 사이로 안타깝게 흩어지고 있었다.


얼마만큼이나 갔을까.

딱히 갈 곳도 없던 터라 어느 가로등 밑에 하릴없이 서있었다.


적절히 습기 품은 찬 밤공기.

들숨 때마다  콧속 비강이 상쾌해지는 것 같아 한껏 들이마셨다.

“후......”

그리고 길게 뿜어지는 날숨의 입김은 토해내지 못한 가슴속 깊은 곳의 말들의 말풍선이 되어 모락모락 일어나 사라져 갔다.


외롭고 쓸쓸한 가로등 불빛.

그 빛은 도로변 물웅덩이에 내 그림자를 만들었고, 성난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달려가는 차들은 무심히 내 형상을 밟고 지나갔다.


차들이 지나칠 때마다 물웅덩이에 비친 검은 내 모습이 흩어지고 모아짐을 반복하던 그 밤.

나는 달빛과 별빛이 그리웠다.


‘비가 또 오나......?’


혹시 달이 떴나 싶은 생각에 올려다본 하늘에서 차가운 몇 방울이 떨어졌다.

후드를 젖히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눈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빛들을 온몸으로 맞으며 새하얗게 떨어지던 눈들은 겨울의 마지막을 알리기라도 하듯 하늘로부터 담뿍 내리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어릴 적 그날의 밤에도 이렇게 눈이 많이 내렸던 걸로 기억한다.

.

.

.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을 마쳤던 그 해 겨울밤.


“아들아... 아들아...”

아버지가 조심히 나를 흔들어 깨우셨다.

“으... 음... 왜 아빠???”

한참 곤히 잠들어있던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잠투정이라곤 없었다.

언제 어느 때건 아버지가 나를 불러주시면 좋았다. 나는 그만큼 아버지를 좋아했다.


“아따, 뭐 할라고 곤히 잠든 아를 깨우고 난리요!”

어머니의 약간 날이 선 목소리는 뒤로 한 체, 아버지는 “어여 옷 입어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아버지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으므로 뭘 먹으러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머리맡에 개켜있던 옷들을 급하게 챙겨 입으며 아버지께 물었다.

“아빠. 동생은?”

동생은 입을 반쯤 벌린 체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동생은 자게 놔두고 우리끼리 얼른 다녀오자”


그때 동생을 왜 안 데려갔는지는 모르지만, 아빠와 엄마의 특별한(?) 외출에 나만이 함께한다는 특별한 소속감(?)과 동생보다는 내가 더 사랑받고 있을 거란 뿌듯함에 기분은 이미 저 밖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행복한 밤이었다.


그렇게 옷을 챙겨 입고 아빠와 엄마와 나는 눈이 발목 넘게까지 쌓인 밤거리를 걸었다.

남도에서는 보기 힘든 많은 눈이었다.


밤 조명을 받아 반짝이던 눈길은 밤사이 마수걸이를 못했는지 누구 하나 지나간 흔적 없는 하얀 평원을 만들고 있었고, 그런 순백의 아름다움은 칙칙한 시골 읍내의 회색 벽들조차 한 폭의 유화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뽀득, 뽀드득......’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에게 거의 반쯤 기댄 체, 발바닥부터 올라오는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 가족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 위치한 포장마차 앞에 다다랐다.


경쾌하지만 천박해 보이지 않는 밝은 주황색 포장 뒤로 몇몇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짐(아주머니의 전라도 방언), 우리 왔소!”

비닐 포장을 젖히며 건넨 아버지의 인사에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메 오셨소. 춥소, 얼릉 앉으쇼.”


‘곰 양복점’을 운영하시던 남편 분 때문에 ‘곰네’라 불렸던 주인아주머니는 어머니와도 친분이 있으셨는지 따로 인사를 나누셨고, 나에게도 살뜰히 인사를 건네주셨다.


“여기 국수 3그릇 허고, 메추리 2마리 꿔(구워) 주쇼. 아! 쏘주도 한 병 주시고......”


아버지께서 주문을 하셨고 우리는 ‘한 일(一)’자 형으로 만들어진 조잡한 나무 벤치에 일렬로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알전구가 발산하는 주황빛 조명이 주황색 비닐 천막에 반사되며 몽환적인 빛으로 바뀌고 있었고, 또다시 그 빛들은 실내의 담배 연기와 만나 약간은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 포장마차 안엔 우리 말고도 젊은 남녀 한 쌍과 아저씨 세 분이 함께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이켠에선 들리지도 않게 입술만 오물거리는 정도로 조용히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사회의 보수적 기준이 지금보다 높았던 때라 그랬을까?

서로 데면데면하게 앉아있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서로의 접시 쪽으로 수줍게 안주를 밀어 챙겨주는 젓가락질 속에서 ‘이성 간의 사랑’이란 것을 알지 못했던 어린 내가 보기에도 따스함과 친숙한 정다움이 느껴졌었다.


아저씨 세 분은 그때의 내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정치 이야기를 안주 삼고 계셨다.

약주 한잔 걸치신 것 치고는 점잖게 조용 조용히 이야기하시던 그분들은 가끔 언성을 높이시기도 하셨지만 욕은 안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어린 내가 있었음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사랑과 삶과 배려가 넘치는 밤이었다.


('Part 2'에서 계속)



*사진 : 구글 이미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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