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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Nov 09. 2020

- 머나먼 예술 -

- 멀어지는 대중들 -

 나는 예술하는 분들을 동경한다.

그림을 그리는 분이든 음악을 하는 분이든 글을 쓰시는 분이든......

그 분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든 그렇지 못하든 상관없이 그들의 예술활동을 동경하고 존경한다.

그래서일까?

운 좋게도 몇 안되는 페친 분 중에 예술 하시는 분들이 몇 계신다.

감사한 일이다.


 헌데 전부터 미디어를 통해 예술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늘 안타깝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다.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큰 캔버스에 붓칠 몇 번한 그림을 인간의 오욕칠정을 나타낸 작품이라고 하고, 땅바닥에 꽂은 말뚝에 천조가리 훌렁 걸어놓고 인간 심연의 슬픔을 나타냈다고도 한다.

게다가 글 쓰는 분들조차 몇 번씩 문장을 되짚어 봐야 이해할 수 있게끔 어렵게 글을 쓰시는가 하면, 몇 번이고 네이버 사전을 들춰야하는 수고로움을 겪게 할 만큼 어려운 단어를 조합해서 쓰시는 분들도 있다.

심지어 그 난해한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나 비평가들조차 전문용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아(예를들어 미장센이 어떻고... 페르소나가 어떻고... 등) 어려운 작품을 이해해 보려는 사람들의 의지조차 싹을 잘라버리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더 안타까운 점은 저렇게 난해한 작품에 어려운 해답을 내놓으면서 대중들이 자신의 작품을 눈여겨보지 않으면 대중들의 문화적 소양을 탓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기엔 ‘급’이 달린다고 말이다.


 나는 예술이란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도 글도 음악도... 모든 예술이 대중들과 함께 할 때, 그럴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작품이 그 생명력을 얻는다고 믿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달을 표현코자 하는데 달의 분화구까지 정밀하게 그려서 대중들에게 ‘달’이란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란 말이 아니다.

누군가는 술잔에 비친 달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야참으로 끓인 동그란 라면 냄비에서 ‘달’을 볼 수도 있는 법이니까.

단 우리가 그것을 봤을 때 눈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아닌 가슴으로 ‘달’이라 느껴진다면 그 작품은 성공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대중들의 가슴에 ‘달’이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작가의 역량일 것이고......


 덧붙여 작품을 보는 눈과 듣는 귀를 함양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과 훈련이 필요하다고도 할 것이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작품을 해설하는 것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줄 수도 있지 않은가.

대중들과 공감할 수 없는 작품, 그것은 마치 벽을 상대로 대화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예전에 ‘머나먼 정글’이란 TV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그 드라마에선 헬기에 몸을 실은 미군들이 밀림 한가운데에 떨궈지고 위험한 작전을 펼치는 내용이 그려졌었다.


 대중들을 예술이란 낯선 정글에 남겨두지 마시라.

막막한 밀림 속에서 현명한 길잡이가 되어주시길, 조금만 대중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해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들은 예술이란 정글로 가려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복귀할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관념화에 치우친다면 대중들은 점점 더 멀어져갈 것이므로......




+ 한 명의 문화 소비자로써 개인적인 의견을 쓴 글일 뿐 예술가 분들을 비난하는 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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