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근 Apr 27. 2016

< 치과 Elegy(悲歌)...... >

- 어느 노모(老母)와 아들의 이야기 -

어머니와 아들은 나란히 말없이 앉아있었다.


정성껏 털었겠으나, 옷 군데군데 켜켜이 찌들어있는 때와 군화 같은 작업화에 묻은 먼지를 보아, 아들은 일하는 중간 잠시 짬을 내 노모(老母)를 모시고 온 듯했다.

그리고 얇은 털모자와  철 지난듯한 두꺼운 점퍼에 몸빼바지를 입은 어머니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중년 아들의 눈가를 무심히 닦아주고 있었다.


둘 다 어두운 표정이었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조금 후,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뭐가 됐든 치료받읍시다. 사람이 이빨이 성해야 뭘 먹고 기운을 차리지. 그렇지 않아도 나이도 많이 드신 분이......”

그런 아들의 말에 노모는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이내 죄인 마냥 고개를 숙인 체 대답했다.

“아니다. 우리 아들 힘들게 번 돈을 곧 죽을 사람이 이빨 한답시고 써야 쓰겠냐.”

나이 탓에 기력이 쇠잔해져서 인지, 아니면 아들에게 미안해서 인지 모르겠으나 노모의 대답엔 힘이 없었다.


“엄마! 내가 엄마 없으면 무슨 힘으로 살라고 그런 말을 하세요. 나는 우리 O여사 없으면 하루도 못 살아~~~”

어머니의 그런 풀 죽은 모습에 아들은 밝게 웃으며 나이를 잊은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손을 어머니는 말없이 꼬옥 잡아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치과 접수 데스크의 아가씨가 아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임플란트로 하시기 부담스러우시면, 틀니는 보험적용이 되기 때문에 훨씬 저렴하시게 하실 수 있을 거예요. 틀니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 그렇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엄마! 우리 이번에 이빨 전체를 한번 손봐버릴까?”

아가씨의 말에 힘을 얻었는지 아들은 노모에게 애교를 부릴 때 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싸악 치료해서 이빨 튼튼해지면, 우리 갈비 먹으러 갑시다!”

“틀니는 좀 더 싸다고 하냐?”

아들의 밝은 농담에도 어머니는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 계속 염려가 되는 눈치였다.

“네. 보험 적용된다고 저 아가씨가 그러네요. 그러니 어머니는 걱정 마시고 치료만 받으세요.”     


그때, 아들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들의 부인에게서 온 전화 같았다.

울리는 전화를 가지고 아들은 병원 계단 쪽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틀니로 할까 봐. 보험 적용된다고 하니까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아.

... ... ... 그래. 나 어머니 모셔다 드리고 바로 일 나가야 되니까 저녁에 보게.”


통화하는 내내 심각한 표정이던 아들이 밝은 얼굴로 바꾸며 어머니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걱정 말라는 듯 몇 번 다독인 후, 틀니를 권했던 아가씨에게로 가 치료 예약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노모는 처량한 모습으로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이 쓰리고 져며왔다.

‘도대체 부모에게 자식은 무엇이기에 스스로 죄인이 돼야 하고,

자식에게 부모는 무엇 이관데 괜찮다는 웃음의 가면을 쓰고 부모를 위로하는 걸까.’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은 부모와, 부모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없는 자식의 안타까운 마음이, 서로를 위하는 말들 속에 담겨, 아프게 들려왔다.


암울하고 슬픈, 끝없는 감정의 추락을 느끼며 치료를 받은 후 병원 문을 나섰다.

봄의 이별을 알리는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카페에선 낯익은 슬픈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길가 웅덩이엔 내리는 비가 담기고 또 담기고 있었다.

   

‘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내 눈에도 비가 담겨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늘...... 독주(毒酒)에 영혼을 맡겨버리고 싶은 그런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 사랑이란......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