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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프닝을 보며 느낀 생각

해프닝의 주인공은, 업체는, 사람들은 무엇을 얻은 걸까

최근 유튜브를 비롯해 자동차 관련 소셜 네트워크에서 모 SUV 전복사고가 큰 화제가 되었다. 지상파 방송 뉴스에서 다루면서 널리 퍼진 이 사고는 수많은 파생 콘텐츠를 만들며 또 하나의 '국민 스포츠'가 되어버렸다. 발단이 된 사고에 관한 글에서부터 시작해 일파만파 커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을 조금 다른 식으로 표현해 봤다.


'분명히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눌러 촬영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버튼을 누른 것이 녹화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는 것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확인을 해 보니 찍었다고 생각한 영상은 없고 엉뚱한 벽과 바닥만 찍혀 있었다.' 


중요한 행사였기에 제대로 녹화가 되지 않은 것에 무척 당황한 촬영자는 '이걸 어떻게 하지'라며 고민하다가 카메라 업체에 연락해 담당자와 통화를 했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고, 잔뜩 화가 난 채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카메라의 설계 결함을 의심하는 글과 함께 업체 담당자와 설계자를 해고해야 한다는 표현을 덧붙였다. 곧 그 글은 엄청난 조회수와 더불어 각종 SNS에 공유되는 것은 물론 입소문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라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들마다 '카메라의 올바른 조작방법'에서부터 '녹화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녹화 버튼을 잘못 누르더라도 영상을 건질 수 있는 방법' 등등 갖가지 관련 영상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유튜브 시청자들은 카메라 기종별 영상 녹화 버튼의 위치와 녹화 때 화면에 어떤 표시가 어떻게 나오는지, 녹화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음향 알림 소리가 기종과 브랜드마다 어떻게 다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카메라 작동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을 때에도 쓸만한 영상을 건질 수 있는 촬영 자세까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카메라를 잘못 조작할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어쨌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분명 상식 밖이다. 그러나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라는 게 분명히 있고, 많은 사람이 쓰는 물건이라면 예상을 벗어나는 용도나 방법으로 쓰일 가능성(이라기보다는 사례라는 편이 낫겠다)도 높아진다. 


1만 분의 1이라는 확률은 1만 번 시도했을 때 한 번은 나온다는 뜻이고, 같은 확률이라면 100만 번 시도하면 100번은 나온다는 뜻이다. 당첨확률이 그렇게 낮다는 로또 1등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드문 걸 보면 알 수 있다.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놀랄 만한 일인 것은 틀림없다.


많은 사람이 쓰는 물건이라면 설계 단계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사용 편의성이기도 하지만, 잘못 조작할 가능성과 더불어 결함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물론 많은 물건은 기획, 설계, 생산,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타협을 한다. 타협을 어느 선까지 할지 결정하는 요소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산, 시간, 인력, 시장, 경영진 취향에서 경쟁사 동향까지 수많은 요소가 개입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요소 가운데 위험성이 있는 것은 웬만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위험을 당하는 대상은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그 물건을 만드는 업체이기도 하다. 물건을 쓰다가 생긴 문제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지 않아야 책임질 일도 없기 때문이다.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최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적정 선에서 타협을 하지 않으면 물건은 나올 수 없다. 그래도 위험성은 줄여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상식 선에서 제품을 쓴다는 것을 전제로 비상식적인 상황도 어느 정도 고려해 제품에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다방면의 고려도 어디까지나 사람이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것까지 대비하는 건 신의 영역이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물건을 만드는 회사는 제품과 함께 제공하는 사용설명서나 보증서 같은 것에 꼭 면책조항(disclaimer 또는 disclaimer of liability)을 써넣는다. 물론 소비자들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쓰는 물건일수록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고, 읽는다고 해도 면책조항 따위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실상 소비자 자신의 권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내용인데도 말이다.


결국, 앞서 이야기한 카메라 관련 해프닝은 한껏 전개되어봐야 사용자 과실로 끝나고 말 것이다. 카메라 업체는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으려고 할 테고, 기껏해야 '저희 제품을 쓰시다 일어난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도의적 사과 말고는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대신 내부적으로는 부랴부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녹화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화면 상의 메시지와 음향 알림을 강화하고, 버튼 조작을 확실하게 할 수 있고 반드시 중간 단계에서 사용자가 잘못 조작하지 않을 수 있도록 카메라 설계를 변경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을 반영할 물건의 범위를 앞으로 내놓을 것으로 한정할지, 이미 생산한 것이나 판매한 것으로 확대할 지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수많은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다. 타협 과정에서 경영진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설계 담당자가 문책을 당할 수도, 차세대 제품의 출시 시기가 미뤄지거나 값이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으로 영상을 날린 그 사람은, 카메라 업체는, 그리고 카메라 사용자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유튜브의 수많은 관련 영상을 보며 가슴을 졸이기도 하고, 낄낄대고 웃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친한 사람들과 주고받는 농담의 소재로 쓰는 걸로 충분한 건지도 모른다. 국민적 조롱 감이 된 누군가에게는 아주 씁쓸한 결말일 테고.

 

그리고 많은 유튜버가 만든 이른바 공익 목적의 수많은 '검증' 영상을 보며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공익 목적이면 포르노도 만들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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