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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을 위한 새 엔진?

일본 자동차 3사의 흥미로운 협력 선언

[ 솔직담백한 자동차 이야기, 제이슨류닷넷 웹사이트에 함께 올린 글입니다 ]


스바루, 토요타, 마즈다가 2024년 5월 28일에 열린 멀티 패스웨이 워크숍(Multi Pathway Workshop) 행사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전동화에 적합한 새 엔진을 개발하겠다고 공동 발표를 했습니다.

멀티 패스웨이 워크숍 행사에 참석한 스바루, 토요타, 마즈다 CEO와 CTO

이번 공동 발표는 토요타의 이른바 '멀티 패스웨이(Multi Pathway)' 전략에 두 업체가 좀 더 깊이 참여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토요타가 2023년 4월에 발표한 멀티 패스웨이 전략은 탄소중립을 궁극적 목표로 하되 전 세계 시장별 에너지 여건과 수요를 고려해 다양한 방식의 동력원 전동화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전략은 지난 몇 년간 토요타가 고수해온 방향을 이어받아, 탄소중립으로 가는 방법과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스바루와 마즈다가 함께 나선 것은 토요타와 두 업체와의 관계라는 배경이 작용했습니다. 두 업체 모두 2000년대 들어 여러 방면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토요타가 주식 일부를 인수하고 협력관계를 맺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토요타는 2024년 3월 기준으로 스바루의 지분 약 20.4%를 가진 최대주주고, 마즈다의 지분을 약 5.1% 갖고 있는 3대 주주입니다.

스바루와 공유한 토요타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TNGA 투시도

두 업체가 토요타와 손잡게 된 것은 다방면의 요구가 커지면서 자동차 업계에 전동화 전환이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특히 일본 업체들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스바루나 마즈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업체마다 나름 친환경 기술 개발을 꾸준히 해 왔지만 충분히 대응할 여력은 되지 않았고, 결국 가장 많은 투자를 해왔고 특히 하이브리드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토요타와 협력하는 것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두 업체는 토요타의 도움을 받아 전동화 제품군을 강화하거나 확장할 수 있었죠. 마즈다가 유럽형 마즈다2를 토요타로부터 OEM 공급받는다거나, 스바루가 토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활용한 동력계를 얹은 모델이나 토요타의 순수 전기 플랫폼인 e-TNGA를 활용한 모델인 솔테라를 내놓은 것들이 대표적이고요.

멀티 패스웨이 워크숍 행사에 참석한 3사 CEO들. 왼쪽부터 오사키 아츠시 스바루 CEO, 모로 마사히로 마즈다 CEO, 사토 코지 토요타 CEO

이번에 세 업체가 공동 발표한 것은 지금까지의 협력 관계보다 한층 더 나아가, 전동화 방향성과 관련된 중요 기술은 공유하면서 각 업체의 개성이나 특색을 살린 제품을 만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전까지의 협력이 표면적인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협력은 좀 더 깊이 있게 이루어진다는 뜻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브랜드별 제품 차별화를 통해 시장에서의 간섭을 줄이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 방향은 수소나 탄소중립(Carbon Neutral, CN) 연료를 쓰는 내연기관을 중심으로 내연기관의 탄소배출을 줄이고, 그간 쌓아온 하이브리드 중심 전동화 기술을 바탕으로 직병렬 하이브리드나 직렬 하이브리드 동력원을 만들어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토요타가 이야기하는 CN 연료란 탄소중립적으로 생산하는 합성연료인 e퓨얼(e-fuel)과 바이오 연료를 일컫는 말로, 내연기관을 쓰더라도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는 뜻에서 탄소중립 연료라고 부르는 것이죠.

토요타가 개발 중인 수소 연료 엔진

아울러 고출력 고효율과 더불어 소형화를 통해 동력계가 차지하는 공간을 줄여 차의 전체적 패키지를 효율적으로 구성하겠다는 방향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하이브리드 기술이 전반적으로 전기 모터의 역할을 키우는 방향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는 만큼, 내연기관이 보조적 역할을 하면서도 충분한 성능과 효율을 내도록 해 차체 설계의 자유도를 높이고 주행 특성을 세련되게 조율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죠.


발표에서는 토요타가 소형화해 개발 중인 직렬 4기통 1.5 L 및 2.0 L 터보 가솔린 엔진을, 스바루가 토요타 하이브리드 기술을 바탕으로 수평대향 엔진과 네바퀴굴림(AWD) 시스템을 결합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마즈다는 이미 MX-30 R-EV에 쓰이고 있는 직렬 하이브리드(주행거리 연장형 EV, EREV) 시스템의 싱글 로터 로터리 엔진과 더불어 한층 더 성능과 작동특성이 뛰어난 2 로터 로터리 엔진을 내놓았습니다.

멀티 패스웨이 워크숍에서 스바루가 공개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토요타를 포함해 일본 업체들이 전동화 전환 속도가 늦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내연기관 개발에 투자를 하겠다는 것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분들도 계실 겁니다. 물론 일본이라는 환경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아주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일본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원자력발전은 물론이고 위기 상황에서 전력망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최근 정책 흐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한동안 탈원전을 강력하게 추진하기도 했고요. 일본에서 전기차나 충전시설 보급이 느려진 것에는 그와 같은 분위기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멀티 패스웨이 워크숍에서 마즈다가 공개한 2 로터 로터리EV 시스템 콘셉트

그러나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고, 파리협약에 따라 국가적으로 탄소중립 실행목표와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2035년까지 새차의 100%를 전동화차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워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전동화차는 순수전기차와 연료전지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와 하이브리드차를 모두 포함합니다.


그런데 앞서도 이야기했듯, 일본의 전기차 관련 환경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닙니다. 발전 분야에서 여전히 화석연료 사용 비율이 높고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을 빠르게 끌어올리기는 어렵습니다. 전기차 충전 순수전기차에 바람직한 충전환경도 마찬가지고요. 전기차에 쓰일 배터리도 상당부분 다른 나라 업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배터리 업체가 협력해 대응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 업체들의 배터리 상품경쟁력을 따라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멀티 패스웨이 워크숍에서 토요타가 공개한 2.0L 가솔린 터보 엔진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일본 자동차 업계가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 내연기관의 탄소중립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전기차보다 비효율적이라고 해도, 연료만 탄소중립적이라면 내연기관을 쓰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근 유럽연합이 유로7 배출가스 기준을 확정하면서 e퓨얼을 쓰는 엔진 사용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것도 내연기관 수명 연장에 대한 기대를 키웠을 테고요. 유럽 시장은 일본 제2의 자동차 수출 지역(현지생산 제외)인 만큼, 시장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할 만합니다.


또 하나 이번 발표에서 눈길을 끈 것은 '엔진과 이를 뒷받침하는 서플라이 체인, 미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응'을 언급한 부분입니다. 여전히 급진적 환경론자들은 자동차 동력원의 완전 전동화가 탄소중립을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자동차 산업이 제조업 성격이 강한 만큼 산업 생태계의 급진적 전환이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특히 일본은 독일만큼은 아니어도 자동차 산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나라인 만큼, 전동화가 가져올 산업 생태계 변화가 경제에 주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크죠.

멀티 패스웨이 워크숍에서 발표하는 사토 코지 토요타 CEO

그런 관점에서 탄소중립이라는 시급한 과제에 비교적 빠르게 대응해 나가면서, 산업 생태계는 점진적 전환을 통해 전동화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생각이 이번 발표에 담겨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은 다분히 일본스러운 경영철학이 반영된 것이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언일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배경을 생각하면, 언뜻 모순되어 보이기도 하는 '탄소중립을 위한 새 엔진 개발'이라는 세 업체의 선언은 제반 환경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번 발표와 함께 세 업체가 공개한 엔진들은 공통된 개발 방향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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