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 관광산업은 공존이 가능한가?
관광지 제주에서의 삶이 점차 팍팍해지고 있다. 관광을 전공한 나로서는 학술논문을 통해 습득했던 관광지가 가질 수 밖에 없는 거의 모든 부정적 영향을 2010년 이후 짧은 시간에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탐욕과 그와 결탁한 토호세력, 이에 기대어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지식팔이, 성장하면 그 과실이 내것이 될 것이라는 헛됨에 부응하는 일부의 주민 등 각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한다. 인간의 이기심의 각축 속에서 황폐화되고 파괴되어 가는 것은 항상 힘없는 대부분의 지역주민이고 설문대할망이 천국에서의 삶의 버리고 살자고 했던 제주의 자연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래드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서 자신의 삶의 공간, 집을 여행의 대상으로 삼는 여행방식은 어쩌면 여행지의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궁극적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이성적 존재만은 아니듯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철학적이지 않다. 여행자 뿐만아니라 여행지의 삶을 꾸리는 주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관광지 제주는 여행이라는 체계 속에서 여행자와 지역주민, 여행산업의 이기심 속에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운명 아닌가?라는 체념이 마음 한켠에서 세력을 더 넓히고 있는 제주에서의 시간이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 때 나의 선택은 항상 그랬듯이 결국 여행에서 답을 찾는다. 여행지는 일본 큐슈의 남쪽 가고시마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 '야쿠시마'였다. 1993년 일본 최초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점이 제주와 닮았기 때문이고 미야자기 하야오의 원령공주의 모티브이자 배경이란 것이 다른 하나의 이유였다. 이 섬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함을 안고 여행을 떠났다.
제주와 야쿠시마는 본토와 떨어진 거리나 관광지로서의 성격 등이 면적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면이 많다.
큐슈여행의 허브인 후쿠오카와 가고시마에서 각 1박을 하면서 워밍업을 하고 여행 3일만에 만난 야쿠시마는 소문에 듣던 그대로 구름에 쌓여 있었다. 일년 내내 섬의 어느 한 곳에서는 비가온다는 섬이 야쿠시마라는 정보가 사실임을 직감하고 야구시마에서 3박4일 일정을 시작했다. 첫째날은 야쿠시마의 대략적인 분위기와 정보를 탐색하고, 둘째날은 야쿠시마의 상징인 야쿠스키를 만나러 가는 트레일, 셋째날은 야쿠시마와 관련된 더 자세한 것을 알기 위해 세계자연유산센터, 야쿠시마민속박물관 등 둘러보며, 마직막날은 야쿠시마를 떠나는 것으로 대략적인 일정을 잡았다.
야쿠시마는 가고시마에서 130km, 도쿄에서 1,000km 떨어져 있고, 면적 504㎢의 약 90%가 산악이며 연간 해변은 4,000mm, 산악은 10,000mm라는 어마어마한 비가 오는 섬이다. 이렇게 야쿠시마에 비가 많이 오는 이유는 바로 야쿠시마가 쿠로시오 난류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에 끊임없이 난류를 타고 밀려오는 온난한 공기가 야쿠시마의 1000m 이상급의 찬공기를 머금은 산들에 부딛쳐 365일 중 360여일 비를 뿌리는 것이다. 이 섬의 인구는 2016년 1월 기준 13,150명이며 1993년 일본 최초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계자연유산지구는 야쿠시마 면적은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을 포함한 더 넓은 지역은 일본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연간기온은 최고 35.4도 최저 0.7도이며 산악지역은 평균 6-7도, 해안지역은 평균 20도 정도이다. 야쿠시마 방문객은 연간 약 30만명으로 발표되고 있다.
제주도와 비교하면, 제주도가 타원형인데 반해 야쿠시마는 정원형태이며 면적은 약 제주의 1/3 정도인 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약 1만3천명, 하루방문객이 대략 1,000명 정도라는 것은 일본 열도의 1억2천만명의 인구라는 배후를 감안하고 세계자연유산이자 일본국립공원이며 원령공주라는 히트친 애니매이션의 배경이라는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고려하면, 인구 65만에 연간 1,200만명이 오는 제주도와 비교하면 모든 수치가 적아도 너무 적은 편이다. 또 하나 제주와 다른 점은 바로 토양인데, 제주가 화산폭발에 의한 현무암의 섬이라면 야쿠시마는 일본에 대한 선입견과는 다른게 화산폭발이 아니라 해저지형이 융기해 이루어져 주로 화강암으로 이루져 있으며 아직도 계속 융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식생은 제주와 유사하게 고도에 따라 온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수직적으로 다양한 식물군을 보였고 화산폭발이 없어 파괴되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생물다양성은 야쿠시마를 세계자연유산으로 가장 핵심적 요인이다. 이러한 점은 화산의 땅 일본의 특성인 화산지질의 독특성이 제주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이끈 핵심요인이라는 점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여행지로서 야쿠시마의 핵심은 바로 청정, 원시, 자연, 스펙타클한 경관 등과 등치되는 세계자연유산이란 브랜드의 땅이란 점일 것이다. 그중에서 단연 아이콘은 '야쿠스기(yakusugi)'로 불리는 1,000년 이상된 삼나무와 이를 잉태시킨 이끼의 땅을 돌아보는 트레일과 산행이다. 그래서 섬이지만 대부분의 여행자가 바다보다는 산으로 향하는 곳이 야쿠시마이다. 야쿠스기는 야쿠시마의 중심부에 약 1,500m 이상 최고봉은 1,936m에 이르는 8개의 산(여기말로 다케)들 사이에 위치해 있다. 수령 약 7,000년이라 홍보하는 가장 오래된 야쿠스기인 조몬스기에서 대체로 3,000년 이상 수령을 자랑하는 야쿠스기를 보려면 그래서 대략 8~10시간의 산행을 해야 한다.
야쿠시마 여행은 야쿠스기라 불리는 10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삼나무와의 만남이다. 일반 삼나무(스기)와 야쿠스기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면
다시 내가 야쿠시마로 떠난 이유인 관광지에서 자연과 인간은 공존가능성에 대한 주제로 돌아가보자. 이번 야쿠시마 여행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야쿠시마로 떠나기전 했던 생각을 확인한 것이라는데 있다. 즉, 인간과 자연이 관광과 관계했을 때 공존하기 위해서는 관광지가 통제력을 지니고 관광의 성장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야쿠시마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가장 아쉬웠던 점은 렌트를 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이 너무 불편했다는 것이다. 섬의 약 2/3, 개설된 제주도의 일주도로와 같은 해안도로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핵심 축이다. 야쿠시마의 대부분의 마을이 미야노무라항구와 야쿠시마 공항이 있는 남동쪽 연안에 있고 항구에서 시작해 종점이 대략 버스로 1시간 정도의 거리인 이 해안도로를 약 1시간에 1대의 버스가 왔다 갔다할 뿐이다. 그나마 교통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야노무라항에서의 마지막 편은 저녁 6시 언저리다. 즉 저녁 6시 이후 다른 지역에서는 적어도 7시 전에는 렌트카가 없다면 이 섬에서 움직일 수 없다. 숙소로 정한 마을 부근에서 무료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것도 항구가 있는 미야노무라와 공항이 있는 안보 외에는 대부분인 작은 마을이라 변변한 식당도 귀하고 특히나 마트 등은 더 귀하다. 인구 13,000여명이고 지역주민은 대부분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교통편은 아니지만, 지역의 관광수입적 측면을 고려하면 교통편을 조금 늦게까지 연장한다해도 나쁠 것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야쿠시마 버스루트맵과 마을 앞 정류장 마다 설치된 버스시간표. 외국인들을 위해 버스 정류장마다에는 일련번호가 붙어 있어 정류장 이름을 몰라도 몇번 정류장이란 것만 숙지하면 목적지로 가는데 별 어려움은 없다.
대중교통의 접근성을 제약하는 가장 핵심은 바로 야쿠시마 야쿠스기를 보러가는 산행이나 트레일코스에 나설 때이다. 한라산을 등반할 때 제주의 어미목이나 성판악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시라타니 운스이쿄와 시젠칸(야쿠스기 박물관)으로 운행되는 버스는 하루 4대와 2대 뿐이다. 그리고 야쿠시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조모스키를 보려면 반드시 갈 수 밖에 없는시젠칸에서 아라카와 토잔구치로 가는 버스는 5:20, 5:40, 6:00, 14:00 등 새벽에 3편 오후 한편 단 4편 뿐이다. 이 코스는 환경보전을 위해 승용차의 진입을 금지하는 곳이라 조몬스기를 보려면 새벽 일찍 서두를 수 밖에 없다(물론 성수기에는 한두편 더 운항된다). 한편, 야쿠시마로의 교통편도 그다지 많지 않다. 직항편만 본다면 비행편 하루 7편, 배편으로 쾌속선 하루 6편, 페리 2편만 있다. 섬이고 태풍의 길목이라는 기상조건을 고려하면 년간 30만명, 하루 약 1,000여명만 야쿠시마를 방문하는 것이다. 1993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생각하고 지리적 위치상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생각보다 많이 않다.
야쿠시마행 교통수단과 산행버스 시간표
시라타니 운스이교행 중형버스와 명성에 맞지 않게 소박하기만 한 입구 매표소 풍경, 주차공간도 몇대 없다.
하드웨어적 발전이 성장하면 누구에게나 좋다는 낙관론적 낙수효과에 기댄 지역개발 또는 관광개발이 아니라도 충분히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은 숙박시설 등에서도 옅볼 수 있다. 내가 보고 온 바에 의하면 주변 자연과 부조화스런 나홀로 우뚝선 단독 숙박시설이나 대규모 리조트는 없다. 몇개의 특급호텔급 리조트도 있지만 제주와 비교하면 소박한 규모일 뿐이다. 그것도 3층을 넘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야쿠시마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관광객은 모두 우리의 민박과 같은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민숙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야쿠시마는 관광하기에 모든 것이 조금씩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그것에 대해 여행자들도 크게 개의치 않는 문화이다. 당연히 그렇하다고 생각하고 야쿠시마의 자연과 문화를 존중하려 한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문화는 야쿠시마 뿐만 아니라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는 후쿠오카나 가고시마에서도 별판 차이가 없다. 요란하게 이곳 저곳에서 형형색색의 과장된 언어로 설명하는 종이질만 좋은 여러 종류의 한국어 팜플렛이나 가이드북은 없다. 다만, 교통표지판이나 관광안내판에 한국어로 간략하게 병기되거나 공신력 있는 관광협회에서 나오는 한국어 가이드북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야쿠시마에서는 한국어로 된 정보는 보지 못했다.
숙박시설도 주변 경관을 해칠만큼 우뚝 쏟은 것은 볼 수 없다.
이처럼 야쿠시마는 접근성을 제약하고 급격한 성장을 목적으로 접근성 향상을 위한 개발을 도모하지 않는 방법으로 지역이 통제력을 갖고 행정과 협력하여 관광성장을 관리하는 것이다. 물론 지역의 요구가 있다면 확장은 가능하겠지만 일본의 지방자치의 전통과 사람들의 기질을 봤을 때 우리처럼 단기간에 환경과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경제와 사회문화, 그리고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관광객과 관광산업 그리고 외부투자 세력에게 넘겨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은 관광객수 성장에만 집착해 수용력에 대한 고려 없이 투자유치의 명목으로 한 양적확대와 관광단지와 도로개설 등 하드웨어 확장에만 열을 올리는 제주의 관광정책과 관광에 대한 지역주민의 인식을 고려하면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환경적, 사회문화적 수용력을 고려해 관광성장이 세밀하게 관리될 때 자연과 지역주민 그리고 관광은 서로 약간의 악화와 불편을 감수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이것이 야쿠시마에서 내가 보고 느낀 제주에서의 의문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다. 비록 자연환경이나 사회문화적 상황이 야쿠시마와 제주는 다르지만 자연에 기반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섬은 역시 조금은 모든 것이 불편한 섬다움을 유지했을 때 그 가치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인간과 자연이 관광과 관계했을 때 공존하기 위해서는 관광지가 통제력을 지니고 관광의 성장을 관리해야 한다. 섬은 조금은 모든 것이 불편한 섬다움을 유지했을 때 그 가치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9박10일간 야쿠시마를 중심으로 큐슈의 후쿠오카, 가고시마를 다녀온 여행에서 필자가 주로 보고자 하는 점을 중심으로 쓴 글입니다. 보다 소프트한 정보성 여행기도 이어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