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잊고 있었던 제주의 지니어스로사이
약 두달여 이상 손목 터널증후군이란 핑계로 브런치 글을 쓰지 못한 나태함에 대한 변명의 글을 시작하며...
관광과 여행, 확대해서는 여가까지 포함하는 인간활동을 관찰/조사하고 생각하고 다시 관찰/조사하는 것이 나의 업이다. 관광을 학문으로 한다는 것은 대체로 돈벌이와 관련되는 관관산업적 시각이 지배적인 흐름이다. 이에 반해 나의 주 관심사는 관광지 또는 커뮤니티 또는 지역이다. 관광산업적 시각이 대중관광(또는 대량관광)이라면 관광지 기반 시각은 대안적 시각이란 점에서 대안관광이라 한다. 또는 관광지란 지역은 관광소비의 대상이지 관광의 주체는 아니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관광현상을 연구하는 것을 업으로 하지만 그래서 관광소비로 인해 상품화되어가고 파괴되어 가는(또는 발전되어가는) 지역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환경적 부작용에 더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론의 공간인 학문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대상화되어가고 상품화되어가는 관광지의 속도를 늦추고 관광객과 관광산업 그리고 관광지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최근 몇년간 제주와 관련하여 중앙에서는 이런 저런 제주의 긍정적 이미지만을 전파되고 있는 한편 지역에서는 불편과 불안한 이미지가 먼저다. 주로 중국자본의 잠식, 토건 중심의 자연 및 사회문화적 제주 고유 환경의 파괴, 범죄와 교통사고, 지가상승, 그리고 관련한 물신주의와 관련한 다양한 부정적 소식만이 들리는 환경은 불안감을 증폭한다.
인간은 주체적, 독립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주변환경과의 관계에서 너무도 자주 흔들리는 심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대안관광에 대한 이론적 세계에서의 수많은 다양한 논의를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에서의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라는 허무주의적 생각의 침략에 대항하여 그리 견고하게 방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제주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여전히 제주가 힐링의 땅일지라도 이 대지에 기대어 살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제주는 이제 더 이상 힐링의 땅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스물스물 스며든 것은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패배적 허무주의자가 바라보는 제주의 미래가 밝을 수는 없다. 2016년 8월은 나에게 이렇게 허무하고 무기력한 기간이었던 것 같다. 캠핑을 하면서 밤바다의 고기잡이 배의 집어등에 비추어 희미하게 보이는 제주를 보기 전까지, 다시 두발과 두눈으로 도시를 벗어나 한라산 깊숙한 자연에 몸을 맡기기 전까지. 온 몸을 제주의 바다에 맡겨 얼굴까지 담그며 제주바다맛을 느끼기 전까지 말이다. 부정적 제주의 이슈에 파묻혀 잊고 있었던 제주를 이슈의 대상지로만 바라보고 관찰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오랫만에 세포하나하나에 불어 넣어던 제주자연과의 교감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제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예전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다시 제주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제주사람들이 머리에 그려지는 순간을 지나니 허무주의적이고 패배적 생각을 극복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는 여전히 나에게 그리고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힐링의 땅이 아닐까 한다. 갑작스럽고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제주의 도시화 바람 속에서 조금은 벗어나 제주의 자연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제주의 공간은 이제 더이상 자연과 하나되었던 예전의 공간이 아니고 도시화된, 현대화된, 문명화된 공간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지금의 도심에 살던, 교외에 살던 별차이가 없었던 곳이 제주였다면 이제 제주의 도심과 자연은 분명하게 격리된 시대라는 자각 말이다. 다시 의식적으로라도 도심을 완전히 벗어날 필요가 있는 최근의 제주다라는 자각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