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박 10일 긴 규슈 후쿠오카, 가고시마, 야쿠시마를 돌아본 이번 추석 여행 일정. 사실 이번 여행은 제주와 같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일본에서 최초로 지정된 야쿠시마를 돌아보고 싶다는 것이 출발의 계기였다. 야쿠시마가 예전에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배경이었다는 것도 여행 목적지로 욕구를 추동시키는 하나의 요인이었음은 물론이다. 여행의 동기는 이처럼 정말 단순했었다. 그리고 나에겐 못 간 여름휴가를 대신할 시간이 필요했었다.
별생각 없이 떠난 이 여행에서 반전은 가고시마에서 일어났다. 야쿠시마를 들어가기 위해 중간 기착지로만 봤던 가고시마에서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임팩트를 갖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이끌려 규슈올레 기리시마-묘켄 코스를 걷게 될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한 일정이었다. 결론적으로 야쿠시마는 기존 생각을 확인하고 확신시킨 곳이었다면 가고시마란 땅은 새로운 영감을 주는 곳이 되었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라는 문구가 있다. 고려말 '탐라국'이 고려의 중앙집권적 체제에 완전하게 복속한 이후 근래에 들어까지 제주는 대한민국의 1%라는 한계를 가진 섬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제주 창조여신 설문대 할망 설화 중에서도 제주의 한계는 언급되고 있다. 제주민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신에게 육지와 연결 시켜 달라고 하지만 결국 여신이 원하는 재물 1%가 모자라 실패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만큼 섬은 인적, 물적 자원이 결핍된 곳이다. 예전에고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섬이 갖는 이 같은 한계는 사람을 자조직이고 의존적이게 한다. 한편으로 이 한계는 도피처로서의 기능을 한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요인이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아이러니한 것은 이 섬이라는 한계로 인해 발전이 늦은 것이 근래 들어서는 오히려 시대의 가치라 할 수 있는 '청정환경'이라는 점이 중심의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 자연유산'이라는 자연환경의 브랜드화와 더불어 많은 외부인들이 폭발적으로 제주로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지역에서는 이를 계기로 핵심 경쟁우위 요소인 청정한 자연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1%의 한계 때문에 보상받지 못했던 것을 보상받으려는 듯 투자유치란 명목으로 팔아치우거나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개발하고 있다. 요컨대 중심부에서 구시대적 가치가 된 것을 뒤늦게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현제 제주 전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도시민은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각종 오염과 범죄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고, 농촌지역은 농촌지역대로 이주민과의 갈등, 난개발 등으로 인한 고유경관 파괴, 전통 가치관의 파괴와 상품화의 격랑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라면 영원히 제주는 대한민국에서 부정적 측면에서의 1%에 갇히게 되고 말 것이다. 언제까지 제주는 주변부로서만 존재하고 취급당해야 할까? 이를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주변부인 1% 한계는 결국 한계로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제주에 살면서 뜬금없이 찾아오는 고민 중 하나였다. 한계로서의 자조감에 희망을 싹을 발견한 것이 바로 이번 야쿠시마 여행 중 중간 기착지로만 생각했던 가고시마에서의 3일이다.
주변부 제주는 근래 들어 중심부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방문객 수와 이주민이 늘어나고 있고 짭은 기간 제주의 수용력을 벗어난 개발이 진행됨으로 오수에 의한 해안오염, 해안과 중산간 지역의 난개발, 고유경관 파괴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좌측부터 제주도 개발 현황, 제주스럽지 않은 해안의 난개발, 정화 용량을 벗어난 오수의 바다 방류)
일본 본 섬과 도쿄를 기준으로 보면 가고시마는 변방인 규슈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있는 변방 중 변방지역이다. 하지만 이 변방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현대 일본의 기틀과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적 시스템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변방의 한계를 고민하고 있던 사람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메이지 유신의 가장 중심인물들이 이 가고시마 출신이었던 것이다. 가고시마 전 전역은 이들 일본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의 자취를 보존하고 기리고 때로는 관광매력물로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의 핵심은 막부를 중심으로 한 봉건제도를 없애고 쇄국이 아니라 개방을 통해 앞선 서양의 제도를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막부 체제의 해체로 민주공화국으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유명무실했던 일왕을 중심으로 하자는 것이 유신의 명분이었다. 이를 위해 비교적 다른 지역에 앞서 서양문물을 접했던 규슈지역, 특히 가고시마의 토호들이 나섰고, 규슈지역의 다른 토호세력을 등에 업는 1866년 3월의 ‘사쓰마-조슈 동맹’을 이끌어내 마침내 1867년 11월 ‘타이세이 호칸’(대정 봉환, 大政奉還), 즉 메이지유신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의 국가체제는 인접지역인 조선과 중국 등이 봉건체제에 머물러 있을 때 19C의 주류 체제인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완성했고 그들만의 특성을 반영하여 내재화했다. 이로 인해 20세기 중반 이후 서양의 제국과는 다른 일본의 독특한 시장경제가 발현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비록 규슈지역 사람은 아니지만 메이지유신 성공의 가장 큰 역할을 한 사건인 사쓰마-조슈 동맹을 이끌어낸 '료마'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반대자의 테러로 인해 부상을 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치료해준 여성과 결혼하고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이 시대의 풍운아가 신혼여행길이 현재 규슈올레 '기리시마-묘켄' 코스의 핵심을 이룬다.
이 규슈지역 출신도 아닌 일본의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 출신인 료마는 어떤 절박함으로 일본의 쇄신을 머리에 그렸을까? 그가 가장 편안하게 신부와 걸었던 신혼여행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당시의 그와 교류하면서 현재 제주 또는 한국이 당면한 문제를 풀기 위한 일말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야쿠시마에서 나온 이튿날 규슈올레 기리시마-묘켄 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여행 전에는 결코 생각지도 못했던 일정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다. 혼자만의 자유여행이 주는 매력은 어런 선택의 자유로움에 있지 않을까 한다. 단순했던 목표를 가진 여행이 제법 진중해진 것이다.
가고시마 관광의 중심지 중앙역과 거리 곳곳에 조성된 메이지 유신의 주요 주역에 대한 기념동상과 기념 안내판
규슈올레 키리시마-묘켄코스를 가기 위해서는 가고시마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가고시마공항으로 가거나 열차를 이용해 가는 방법이 있다. 대체로 기리시마와 묘켄이 가고시마 공항과 인접한 지역이라 공항으로 가는 방법이 일반적이고 규슈올레 안내책자에도 이렇게 안내하고 있다. 가고시마 시내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약 1시간 거리의 가고시마공항 국내선에 내리면 우선 반겨주는 것은 벳부 지역에 못지않게 온천으로 유명한 고장답게 무료 온천 족욕탕이 반겼다. 잠시 족욕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고 묘켄 온천으로 가는 지역 버스를 기다려 타면 15분 정도면 일본 시골의 한적한 온천마을 묘켄에 도착 후 안내책자에 나온 가성비 뛰어난 마을 식당에 들려 일본식 시골 정식을 점심으로 해결하고 본격적인 올레코스를 걸었다. 마을과 인접해 바로 웅장한 소리와 함께 반겨주는 폭포(정방폭포 급은 된다)를 뒤로 하면 이제 본격적인 임도로 사용했던 산길을 따라 걷는 규슈 올레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이 오지의 울창한 산길을 혼자 걷다 보면 조금 무서운 기분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산길을 넘어 산골마을에서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산길로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올레길은 료마의 산책길과 겹친다. 료마라는 사무라이가 이 오지의 산길을 아리따운 신부와 함께 걸으면서 본 일본의 미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의 일본은 그가 상상한 미래와 얼마나 부합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체제의 주류(당시에는 시대정신)에 진입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구체제적 시스템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그는 그 가능성을 일본의 변방 중 변방인 규슈 남쪽 가고시마에서 발견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로 인해 현재의 일본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대정신에 맞는 체제의 변화를 꿰하지 않고서는 미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규슈올레 기리미사-묘켄코스, 묘켄온천 시작점. 기리시마보다 이곳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기리미사 료마 공원 쪽은 식당을 찾지 못했다.
규슈올레 기리시마-묘켄코스는 메이지 유신의 중심인물 료마의 신혼여행길과 일부 겹치며, 시작과 끝 지점인 묘켄과 료마 공원에는 모두 온천이 있다는 점이 장점이나, 코스 자체는 난이도가 상당이 있는 편이다. 특히 코스 중간중간 조그만 산사태로 길이 막히거나 우거지고 한적해 혼자 걷을 시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을 얘기하라면 '퇴행적'이란 말로 축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997년 IMF는 1990년대 어렵게 이루어낸 '민주화'가 변화하는 세계체제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에 들어선 민주정권은 IMF체제라는 위기를 극복함과 더불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봉건체제의 극복만이 부강한 일본을 만들 수 있다는 료마의 신념에서 보았듯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집단주의, 이분법적 냉전사고, 보존이나 공존보다는 성장과 경쟁, 다소 가부장적이고 재량권이 넓은 20세기의 체계를 해체하고 다품종 소량생산, 다양성, 집단보다는 개인, 성장과 경쟁보다는 발전과 공존을 모색하고 강조되는 포스트모던적 체계를 시스템화하려고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적용하여 21세기에 대배하려 했다. 비록 국민적 의식이 이에 따라가지 못해 결국 반동으로 퇴행적인 10여 년을 보내게 되었지만 말이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모순은 남북 분단이겠지만. 현재 한국사회, 좁게는 제주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모순은 이 갭이 원인이 아닌가 한다. 포스트모던적 21세기의 중심부 체계에 익숙해져 있는 세력과 20세기 구조를 수호할수록 이익적인 세력 간의 이니셔티브 다툼에서 20세기 이티셔티브의 퇴행적 승리의 결과가 만들어 놓은 문제점들 말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주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도 단순하게 세대를 젋게하거나 세대별 갈등을 낮게 하는 등의 부분적 인적교체만으로는 문제를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이 생각이다. 즉 세대라는 좁은 측면의 변화가 아닌 가치관, 세계관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교체가 아닌 시대교체 말이다. 21세기에 20세기 시스템 하에 움직이니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지향점, 즉 대규모 개발이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가 아닌 소규모 개발, 자연과의 공존 등의 환경가치를 기반으로 개인의 재량을 없애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매뉴얼에 의해 움직이는 것), 제도화하여야만 변화를 이루고 공고해야만 지역과 국가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사람들의 삶의 질도 높아질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21세기 가치를 실현시키고 내재화시키고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신호와 확신을 주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중앙인 서울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제주에서부터 출발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는다. 제주가 바뀌면 한국을 바꿀 수 있고 바뀐 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해 공헌할 것이다. 19세기 중엽 가고시마의 토호세력과 료마라는 사무라이가 생각하고 실질적으로 바꾼 일본의 변방 가고시마의 올레길을 걸으며 정리한 생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제주는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청정한 환경적 가치가 중요하고 여러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을 통제할 수 있는 섬환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가치인 패키지 중심의 관광과 관광개발 그리고 성장지상주의적 세력이 현재는 주류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를 경쟁과 개발보다는 보존과 공존의 가치에 기반을 두고 성장이 관리되며, 단순한 양적 성장보다는 성장의 과실이 지역에 선순환되도록 하는 형평성(공정성)의 가치를 기반으로 지역의 지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새로운 제주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에서 보듯이 말이다. 1%라는 것은 한계일 수 있지만 이끌어가는 주도력을 갖는 가능성의 1% 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선 시대교체한다는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마치 제주를 둘러싼 바다가 섬이라는 고립을 강화시키는 요소로 인식하기보다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가능성을 공간으로 인식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현재 제주에서 일어나는 관광을 중심으로 한 20C형 성장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주가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