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의 자연 속에서 새 일본을 그린 어느 혁명가의 길
느닷없이 규슈올레길을 걸으려 계획하다.
한국 여행자에게 일본 규슈 여행의 3대 포인트는 후쿠오카에서 일본의 도시문화를 맛보거나, 벳부에서 일본 온천문화를 만끽하는 것 정도였다. 여기에 최근 들어 규슈 남쪽 가고시마가 핫한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가고시마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기후적 요소도 있지만 후쿠오카와 벳부의 일본 도시문화와 온천문화란 두 곳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가고시마 항을 중심으로 그 앞에 우뚝 쏟아 오른 사쿠라지마 섬이 가고시마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그 맞은편 텐진과 가고시마 중앙역을 중심으로 하는 다운타운에서는 옛 메이지유신의 주요 인물들의 역사적 발자취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가고시마 공항에서 가까운 산악지역은 벳부에 못지않은 일본내 유명 온천이 자리하는 온천지역이다.
규슈올레 기리시마-묘켄코스는 이 중 산악 온천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온천마을 묘켄(온천)에서 메이지유신의 산파 역할을 하고 일본인이 가장 영웅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라는 '사카모토 료마'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부와 일본 최초로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걸었다는 '료마의 산책길'의 끝자락 료마 공원의 시오히타시 온천까지 이어진 길이다. 규슈올레를 소개한 어느 가이드북에 의하면 공항에서 가깝고 이야기가 있는 길이라 가장 '올레'다운 코스라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규슈올레는 작년(2015) 연말 다케오 코스에 이어 규슈올레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다케오 올레를 걸으면서 본 일본 소도시의 모습은 인상 깊었다. 한국 여행객을 위한 목적형 여행상품으로 개발한 것이 규슈올레이긴 하지만 규슈를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자들을 올레길에서 마주친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 그러한 면에서 지난 다케오 올레는 여유롭게 일본 소도시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스러웠었다. 이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꼭 올레코스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여행에서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험적 성격으로 걸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이 꼭 하루정도 시간을 내어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은 가고시마에서 '사카모토 료마' 메이지 유신 시대의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가고시마에서 느긋하게 이국적인 남녘을 즐겨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하드 한 트레킹으로 바뀐 것이다.
규슈올레 기리시마-묘켄코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어에 서툰 나 같은 한국인 여행자가 기리시마-묘켄코스를 가기 위해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고시마 공항으로 가는 것이다. 이번 규슈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야쿠시마'를 다녀오기 위해 5박 6일을 보낸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의 4일이란 시간은 여유로울 수밖에 없었다. 가고시마 텐진에 자리한 도큐호텔에서 느긋하게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고 2-3분 거리의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온 가고시마 공항에 도착하니 9시 30분 경이다. 이후의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공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규슈올레에 가기 위한 안내와 묘켄 온천과 시오히타시 온천행 버스 시간표를 얻고 나니 30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오히타시 온천은 공항에서 두 정거장으로 약 10분 거리이지만 묘켄 온천은 11 정거장 약 25분 거리, 가이드북에서 본 소박한 식당이 생각나서 묘켄 온천을 트레킹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선택은 결론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료마 공원이라는 시오히타시 온천에는 온천 외에는 먹을만한 밥집이 없는 조그마한 공원이었기 때문이다. 묘켄 온천행 버스표를 밴딩 머신에서 390엔을 넣고 끊고 나서 나머지 시간을 오늘 하루 수고할 다리를 위해 공항 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했다.
가로시마공항 족욕탕과 묘켄행 버스시간표 그리고 묘켄 정류장
잠시 동안 일본 시골행 버스에 몸을 싣고 달려 도착한 묘켄 온천은 조그마한 온천마을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을 따라 일본 전통식의 온천장인 소박하게 보이는 료칸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올레 이정표를 따라 하천을 건너 식당, 타시마혼칸 오소쿠지도코를 찾아 들어갔다. 이 식당은 타시마혼칸이라는 온천장에 딸린 식당이다. 아는 한자라곤 물고기뿐, 생선구이로 짐작되는 메뉴를 시키니 이 지역의 향토음식 한 상이 나온다. 미소된장국과 생각보다 많이 주는 쌀밥 한 공기 그리고 생선뿐인 소박한 한상과 쥔장의 인상 좋은 미소를 반찬삼아 한 그릇 후딱 해치우고 길을 나선다. 주중이라 온천을 즐기러 온 일본인 여행객도 없는 마을에 홀로 산속 올레길로 길을 나서는 발걸음이 여유롭다.
묘켄 온천 마을 규슈올레 시작을 알리는 표지만과 묘켄 온천장, 그리고 타시마혼칸 오소쿠지도코의 향토음식 그리고 온천에 삶은 달걀
여유로운 발걸음을 따라 마을을 벗어나길 10여분,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되고 그 울창한 숲길을 만끽하려는 순간 나타난 이누카이노타기 폭포가 여행자를 반긴다. 작은 계곡에 고향 제주의 정방폭포만 한 웅장함을 자랑하는 폭포에 빠졌다. 여기까지가 이번 올레길의 마지막 파라다이스 일 줄은 그때까진 몰랐었다. 이후 한시간 정도의 계곡과 산길의 트레킹은 기리시마 산악의 울창함과 인적 없는 산길이라는 환경요인에 의해 심리적인 위축감을 느낄 정도의 깊은 산길이다. 코스의 대부분은 임도로 사용했던 길로 오랜 기간 동안 비바람에 깎여 사람 키보다 크게 움푹 들어간 길을 걷다 다시 산속 작은 마을과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보니 반갑기가 그지없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려 산속을 헤매다 나온 묘한 기분을 뒤로하고 마을 어귀 가을 이삭이 익어가는 논을 가로지르니 '료마의 산책길'이라는 표기가 올레 표식과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 끝에는 와케신사가 있다. 여기 정도가 이 올레코스의 반 정도라 할 수 있다. 출발한 지 2시간여다. 그리고 이곳 신사 뒤로 이어진 길이 바로 '료마의 산책길'로 료마 공원의 시오히타시 온천까지 올레코스는 일본 역사인물 중 가장 인기 있고 최초의 허니문을 즐긴 사나이가 지났다는 길과 겹쳐진다.
마을 벗어나면 본격적인 산행 시작, 그리고 이누카이노타기 폭포와 위압스런 임도로 사용되었던 숲길과 하천, 무너져 내린 흙더미가 때론 길을 덮치기 할 정도로 깊게 파인 산길이 이어진다.
와케신사에서 시오히타시 온천까지의 길은 전반의 숲길보다 울창하지도 않고 길 자체도 업 앤 다운이 심하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와케신사로 오기 전에 걸었던 길보다 다소 지루한 길이다. 계곡도 없고 삼림의 울창함도 이전만은 못하다. 다만 역사적인 인물이 걸었다는 길이란 데에서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 걸음씩 발걸음을 재촉했다. 11시 30분 정도에서 시작한 트레킹이 오후 3시경으로 들어서니 산속이라 생각보다 어둠이 빨리 찾아옴을 느낀다. 여기에 혼자 적막한 산길을 걷는다는데서 오는 다소간의 무서움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걸음은 한층 빨라졌다.
벼 익어가는 산속 마을의 황금들판과 와케신사 그리고 신사 뒤편으로 이어지는 료마의 산책길을 알리는 표지만. 여기서부터는 다소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료마라는 사무라이가 이 오지의 산길을 아리따운 신부와 함께 허니문 겸 걸으면서 그린 일본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그 시기에 일본은 쇄국이 아닌 개방이란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확신했을까? 그는 왜 그 희망의 끈을 일본의 중심이 아닌 변방 중 변방 규슈의 남쪽 끝 가고시마에서 보았을까? 그리고 변방 제주에 살고 있는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희망을 보려 하는 것인가?라는 이 길을 걷게 만든 의문과 같은 낭만적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그 순간 단 한 가지 생각은 빨리 이 산길을 벗어나자라는 것이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빨리 지는 해와 때맞춰 달려드는 숲 모기 그리고 습기와 사투하며 땀범벅이 되어 이 올레코스의 끝자락 시오히타시 온천에 도착하는 해는 이미 뉘엿뉘엿 산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곳이 온천이라는 것과 지친 여행자를 위해 작지만 효과는 탁월한 유황온천 족욕탕이 있다는 것이었다. 땀범벅인 나를 보고 문을 닫으려고 나왔다 놀라는 관리인 아저씨를 뒤로 하고 족욕탕에 발을 담그니 그제야 심신이 안정된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온천을 하면서 피로와 땀도 씻을 예정이었으나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 관계로 온천도 문을 닫으려 하는 분위기라 막차를 타기까지 그냥 족욕에 만족하기로 하였다. 생각보다 습하고 더운 날씨로 온천할 기운도 없었기도 했다.
료마 공원 시오히타시 온천 풍경
그 '남자'의 길, 그러나 다소 지루한 길
규슈올레 키리시마-묘켄코스는 전반적으로 다소 고독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것이 단지 이 코스를 홀로 걸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먼저 걸었던 다케오 코스가 다케오라는 소도시를 끼고 아기자기한 길을 걸었던 길과 기리시마 울창한 산속 임도를 따라 인적이 드문 산길만을 걷었던 이 코스가 비교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8월 태풍의 길목인 규슈의 입지적 특성과 습기가 많고 고온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8월과 9월 이 코스를 걸으라고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코스이다. 해가 빨리 떨어지는 산악이라는 특성과 습기로 인해 3시 정도부터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숲 모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이 코스는 선선한 봄이나 가을에 걷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울창한 숲이지만 이 숲들은 대체로 인공림이나 2 차림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산천도 그렇지만 일본도 예전에는 벌채가 심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삼나무나 편백나무 등 빨리 크는 나무를 심어 산림을 울창하게 만든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인 근대에 접어들어서라고 하니 예전에는 벌채로 인해 대부분 민오름이었던 제주의 오름과 곶자왈 숲의 과거와 겹쳐진다. 울창함의 정도가 다른 것은 언제부터 시작했느냐는 세월의 무게에 기인한다는 점은 숲과 숲 속의 여러 생명체를 신성성을 부여했다는 이미지가 있어 삼림 보존에 힘쓰지 않았을까 하는 일본에 대한 생각과 다소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과거 봉건적 체계에서 이 당시 주류 체제라 할 수 있는 서방의 과학문명에 기반한 시장경제체제로 19세기 일본의 시스템을 바꿔서 오늘날의 일본을 이끌어낸 결정적 계기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유신이 변방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을 보면서 항상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1%의 한계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주변부 변방인 제주를 보는 시선의 변화를 개인적으로 꿈꾸어 본다. 지금의 한국과 제주의 여러 문제 및 혼란의 관련하여 핵심은 마치 메이지 유신 즈음의 일본과 같이 이전 체제에서의 시스템과 기득권이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업그레이드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해본다. 즉, 개방화되고 세계화된 21세기에 우리의 정치와 경제 등 시스템은 아직도 20세기 집단주의적이고 폐쇄적이면서 국가 주도적 계획경제 체제과 시스템을 고수하면서 개인주의적이고 개방화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국민들의 눈높이를 만족시켜주는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와 제주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와 이로 인한 갈등의 원인은 세대 간의 차이 정도에서 바라볼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21세기에 20세기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이 지금의 한국에서 발생하는 모순의 원인라는 점에서 이제 세대나 부의 분배 정도의 수준에서 논의를 확장시켜 '시대'자체의 변화를 도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마치 200여 년 전 19세기 가고시마의 산속을 연인과 걸으며 20 세기 일본의 바탕이 되는 시스템의 변화를 도모했던 '료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