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반대로 악마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소녀가 읽고 있던 성경을 조직폭력배 두목이 뺏어서 바닥에 던저버렸다.
책이 바닥에 부딪히며 턱 소리가 났을 때 소리가 나는 쪽을 본 사람은 문쪽에 서있던 다른 조직원 한 명 뿐이었다. 경기도 외곽에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의 5층에서 심문이 벌어지고 있었다.
춥지 않고 적당히 선선한 밤의 봄 날씨에서 후드티를 입고 날카로운 턱선에 진주같은 눈동자의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을 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자신을 도발하는 것처럼 느낀 두목은 총을 꺼내서 소녀의 관자놀이에 들이댔다.
“잘 들어. 지금 현승이 그 자식도 1층에서 심문을 받고 있어. 둘 중 하나라도 살아야지?”
총을 관자놀이로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소녀는 밀리는 얼굴이 반동으로 계속 기우뚱했지만 표정변화없이 큰 눈을 처음 성경을 읽던 시선 그대로 하고있었다. 지금 그 시선의 끝에는 시멘트바닥과 보이지 않는 바람 뿐이었다.
“너가 현승이 불면 일단 살려는 줄게. 저놈이 너를 불든 안불든. 근데 네가 안불었는데 쟤가 너를 불면 넌 죽을 줄 알아.”
“둘 다 안불면요?”
“닥치고 빨리 말해. 너가 현승이 시켜서 우리 물건 빼돌렸지?”
“아니요.” 소녀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래. 아니, 잘못 물었다.” 두목은 너그럽게 웃었다. 그러더니 소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몇 살이지?”
“열다섯살이요.” 소녀의 시선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갔을 뿐이었다.
“그래, 열다섯살이 그런 걸 시켰을리가 없지. 근데 현승아저씨가 우리 마약 빼돌린거는 맞지? 너가 봤잖아? 그렇지?”
“아니에요. 저는 그냥 항구에서 그 아저씨 마주쳤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 아저씨는 계속 횟집에서 회만 먹던데요.”
“너 뒤지고 싶어! 내가 지금까지 죽여본 사람이 몇 명인줄 알아?”
두목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녀는 숨소리인지 웃음소리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조금 웃었다. 대충 빨리 고문시켜서 마약을 찾고 싶어 안달난 두목은 문쪽에 있던 부하에게 내려가보라고 했다. 부하는 뛰어 내려가 1분이 안되어 돌아왔다. 숨이 차 헉헉 거리며 달려서 돌아오는채로 대답했다.
“현승형님도 저 아이에 대해 모른다고 합니다.”
“누가 형님이야! 배신자가 형님이냐!”
“죄송합니다.” 부하는 속으로 마저 욕하며 눈을 내리 깔았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살짝 돌려 총을 들고 자신을 위협하던 두목을 쳐다봤다.
“이제 가도 되죠?”
“가긴 어딜 가. 안앉아?”
무시받는 느낌에 또 화가 난 두목이 눈알을 크게 뜨고 부라리며 소녀를 노려봤다. 190의 장신이었던 그는 160이 조금 넘는 소녀를 내려보며 시선의 위협을 보냈다. 보통은 이 정도의 노력같지 않은 노력만으로도 어지간한 남자들까지도 모두 기를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일찍 알게된 그는 상대방을 내려보게 될 때 더 과하게 눈에 힘을 주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들이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소녀는 돋보기로 식물을 관찰하는 초등학생같은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고 있었다. 소녀의 표정은 미래의 승리를 담보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서로 상대를 배신하고 아는대로 말하면 살 수 있었는데 둘 다 모른다고 하면 진짜 모르는 것 아니겠어요?”
“안닥쳐. 확 죽여버릴라 진짜.”
성인 남자의 분노는 소녀를 드디어 드러내놓고 웃게 만들었다. 사람을 여럿 죽여본 허세없는 폭력배는 점점 화가 났다. 그러나 그동안 나름의 확신을 해가며 사람을 죽여왔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소녀는 심호흡과 함께 쓰읍소리를 내더니 살짝 몸을 비켜서서 두목과 사선 위치로 이동했다.
“이 심리전 알려준 부하를 믿었나봐요?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겠죠?”
“뭐야?”
“아저씨 생긴 걸 보니까 아저씨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닐거고. 분명 다른 부하가 있었겠죠.”
“너가 뒤지고 싶지?”
서로 어긋난 위치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마주보는 두 사람은 뜨거운 용광로와 그 위에 떨어지는 얼음과 같았다. 원래는 얼음이 녹아야 맞지만 이들의 분위기는 그 반대였다.
“항상 남에게 명령을 하며 살았지만 그 명령을 알려준 것도 그 부하였죠? 진짜 브레인은 따로 있었던거죠. 아저씨 머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소녀는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옆머리를 툭툭치는 시늉과 함께 조직두목을 모욕했다. 소녀의 목숨을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두목의 머리 속에서 그러한 사실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 하실래요? 전화해서 물어볼래요? 네가 하라는대로 했는데 소용이 없다. 어떻게 해야되냐.” 소녀는 문쪽에 조직원을 한번 슬쩍 흘겨보고 슬며시 작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면서도 두목의 눈은 계속 응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 안받을걸요.”
“뭐?”
“내가 죽였거든요. 저기 저 아저씨 시켜서.”
두목은 바로 부하를 돌아쳐다봤다. 부하는 말은 안하고 손으로만 아니라고 저어댔다. 눈은 한없이 커져 두목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당당한 눈빛과 불안한 손짓이었다. ‘그래, 저놈이 배신할 리가 없어. 저 조그만게 아까부터...’
“전화해봐요. 그 브레인한테.”
소녀는 두목의 대꾸를 들을 필요도 없는 반론의 기능을 하는 명령을 던졌다. 두목은 전화를 걸어야하나 고민스러웠다. 우선 이 아이가 자신의 지성을 매꿔주는 부하의 존재를 아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되는 대화를 사람 취급도 안하는 어린 나이의 소녀와 나누면서 자신의 머리 속 생각이 자리를 못찾고 갈팡질팡하는 상황이 고통스럽기까지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야했다. 실제로 그는 그의 장자방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전화를 들어 그의 이름을 검색해 다이얼을 눌렀다. ‘예, 형님. 지금 무슨 상황입니까.’ 전화를 받을 때면 항상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두목과 떨어져 있을 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10초안에 핸드폰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두목은 거칠고 폭력적이었지만 자신의 장자방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했다. 10초안에 받지 않으면 뼈하나 분질러놓겠다는 자주하는 겁박도 그에게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정말 예의바르고 충성스러웠다. 그러나 다이얼을 누르고도 10초는 진작에 지나고도 넘어버렸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음성 메시지가 뜨자 두목은 전화를 끊고 문 앞에 대기하는 조직원을 째려봤다. 조직원은 손사래를 쳤다.
“저 아닙니다, 형님.”
두목은 다시 소녀를 쳐다봤다. 눈치채지 못한채 어느새 소녀와의 거리는 꽤 멀어져 있었다.
“현승아저씨도 지금 현승아저씨 붙잡고 있는 부하도, 지금 다 제 수족에 있어요. 너는 이제 끝이야.”
“이 개자식들이!”
두목은 다시 총을 꺼내 소녀와 부하를 왔다갔다하며 조준했다. 부하조직원은 계속 아니라고 진정하라고 외쳤지만 두목은 듣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부하의 표정을 보니 자신의 숨소리가 들리며 자신이 냉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태에서 총을 소녀 쪽으로 겨누며 소녀를 보니 그 아이는 소리없이 미소로 웃고 있었다. 눈은 자신을 보고 있고 미소는 분명 자신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저 악마같은게! 죽여버리겠어.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사람을 죽여왔는데 지금은 뭘 망설이는거야?’ 그는 무엇보다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나오고 싶었다. 일단 저 어린 여자만 죽이면 그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방아쇠를 당겼고 달빛이 비추는 회색빛의 시멘트 바닥에는 빨간 핏자국이 가득 뿌려졌다. 소녀는 웃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방아쇠를 담긴 그를 바라보았다. 두목은 잘려나간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고통의 신음을 외쳤다.
“나보다 너가 더 애송이인 것 같은데?”
분해된 총 조각과 소형 지뢰 칼날을 집어들어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여자 아이는 고통스러워하는 사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목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부하에게 소리쳤다.
“야! 이 년 죽여버려!”
부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녀와 두목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목의 손을 지혈해줘야하는지 소녀를 죽여야하는지 갈팡질팡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이 공사장에서 달아나는 것이었다.
“생각하지마요. 인간은 생각하면 방황하는 법이에요.”
소녀는 고개를 돌려 조직원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무표정이 다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돈이라면 이런 모지리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이 벌게 해줄게요. 현승 아저씨가 괜히 내 밑으로 들어왔겠어요?”
“야! 뭐하냐! 빨리 죽여버려!”
“발소리 들려요? 올라오는 사람 죽여요.”
“저 년 죽이라고!”
조직원은 갈팡질팡하던 생각은 자신이 갈 길을 정했다. 다만, 그 길이 정말로 옳은 길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에 소녀의 말대로 정말 동료 조직원이 올라왔다. 현승을 포박해 심문하던 조직원이었다.
“무슨 일이야?”
구렛나루부터 턱밑까지 이어진 칼자국은 그가 얼마나 거친 사람이었는지를 잘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거친 사람이었다.
“아니, 형님? 대체 무슨 상황이야!” 그는 자신의 두목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등뒤에서 꽂아진 칼에 그대로 쓰러졌다. 칼을 꽂은 행동은 더 늦으면 평생의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에 내려진 결단이었다.
“잘했어요. 두 명 정리하고 내려와요.”
소녀는 가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포박이 풀리고 현승은 자신의 지시를 실시하기 위해 올라갔다. 지시한 사람은 폐건물을 계단으로 빠져나갔다. 현승은 한 때 자신이 존경하며 모시던 조직원 형님을 편안하게 보내주기 위해 자신이 업으로서 잘하던 일을 시행했다.
“후회할거라고 했잖아요, 형님. 다미는.. 그 아이는.. 우리의 영웅이에요. 저년이야말로... 진정한.. 악마에요.”
깔끔하게 뒤처리를 한 그는 폐건물을 빠져나가기 전에 예기치 못하게 생긴 부하에게 말했다.
“너무 놀라지말고. 잘해보자고.”
“형님... 저 애송이가... 우리 두목이라도 되는 겁니까?”
현승은 부하의 어깨를 두드리고 폐건물을 나와 터벅터벅 걸어 대기해있는 봉고차 운전석에 탔다. 조수석에는 자신에게 지시내린 그녀가 한가롭게 성경을 보고 있었다. 전혀 진지하게 읽고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대충 서점에서 책구경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현승은 정말 읽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출발해.”
“어디로 갈까?”
“전에 말한 마을에 데려다 줘. 이제 집에 가야지.”
“얼마 만에 집에 가는거야?”
“한 달. 우리가 처음 만난게 딱 한 달 전이잖아.”
뒷좌석에 5억이 든 가방을 싣고 출발한 차는 사람은커녕 가로등하나 없는 도로를 조용히 달리고 있었다.
“다미야.”
“응?”
“구..궁금한게 있어.”
“뭔데요?”
“사람 처처음 죽여본게 언제야...?”
“9살 때.”
목을 쭉 내밀고 핸들을 잡아 돌리던 그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더듬는 말투로 계속 물었다.
“누.. 누구를..? 어떻게?”
“고아인 나를 키우던 수녀원의 수녀들을 다 죽여버렸지. 토요일마다 신부님이 와서 미사를 하고 밀가루 빵을 먹거든. 하나의 종교 의식이야. 그 빵에 독을 발라놨어.”
여자 아이는 옛 추억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처럼 살짝 웃었다.
“안들켰어? 왜 죽였어?”
“다음에 이야기해줄게요.”
여전히 적막하기만 한 시골길에 차가 멈췄다. 여자 아이는 차에서 내린 다음 뒷문을 열어 돈가방을 챙겼다.
“아저씨 몫은 트렁크에 있어요. 돌아가면 확인해봐. 아까 그 부하 1억 챙겨주고. 연락할 때까지 조용히 지내요.”
“어.. 응..잘 가.”
운전석 창문 사이로 작별을 한 두 사람은 한 번 더 눈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사실 여자아이는 하지 않았다.
여자아이는 멀어져가는 차를 끝까지 본 후 자신이 사는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논두렁을 지나 언덕에 오르면 다시 논두렁이 보이는데 거기를 또 지나 언덕을 또 오르면 보이는 마을이였다. 고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길러주는 친아빠같은 아저씨가 있는 곳. 자신을 친남매처럼 잘해주는 아저씨의 아들이 있는 곳. 그리고 몇 안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그 마을은 자신에게 한없이 우스운 감옥이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를 기르는 아저씨는 그 마을의 성당 사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