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1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부 1화)입양

by 철학의 사도 Aug 24. 2024

6평 남짓한 작은 방. 바닥은 낡은 나무 바닥이였고 때가 타있는 시멘트벽에는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브런치 글 이미지 1

 깨끗한 성모마리아 그림이 걸려있었다. 벽 끝에 1m 높이되는 탁자에는 세워져있는 십자고상 하나와 눕혀져있는 십자고상 여러개, 성경책, 그리고 물이 들어있는 작은 병 세 개가 있었다. 그 병들은 모두 성수라고 적혀있었고 로마숫자로 각 병마다 Ⅰ,Ⅱ,Ⅲ이 표기되어 있었다. 탁자 밑에는 성당에서 쓰는 큰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또한 성수로서 아담이 기도한 물이였다. 



이 방 한가운데에는 십자가 모양의 침대가 있었는데 다미는 거기에 눕혀져 양팔과 발이 묶여져 있었다. 하지만 다미는 익숙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만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남자와 소개팅하는 표정을 한 채, 오늘은 어떤 말을 들을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천장에는 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전등이 있었다. 그 전등은 전등을 받치는 천사의 형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대체 한 달 동안 어디있었던거니?”

“아침이랑 낮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안물어보더니 왜 이제야 물어보는 거에요?”

“어디 있었던거니?”

“알아요. 현석이 때문이죠?”

“말 안할거야?”

“심심해서 부산투어좀 하고 왔어요.”

“돈은?”

“훔쳤어요. 부자에게서 훔쳤어요. 그 사람으로선 큰 피해를 받은게 아니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마세요.”

“도둑질은 나쁜거야. 그 사람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네, 다음부턴 안할게요.”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방문에 붙은 미카엘 천사에 왼쪽 손을 대고 오른쪽 손은 가슴에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성 미카엘 대천사여.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악마의 악의와 간계에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브런치 글 이미지 2

“오랜만에 여기 누우니까 뭔가 반갑기도 하고 그렇네요.”

“천상 군대의 영도자이시여. 영혼들을 멸망시키려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탄과 다른 악령들을 하느님의 능력으로 지옥에 가두소서.”

“아멘.”     


사제복을 입은 남자의 이름은 조아담이였다. 천주교 사제였지만 성매매를 하고 성매매를 했던 여성과 교제하다가 발각되 사제직을 박탈당했다. 이후 현재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게 된 그는 여기에 허가된 적 없는, 비밀리에 지어진 성당에서 사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위인이였으며 마을 사람들 중 성당이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성당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는 다미에게 씌인 악마를 내쫓는 것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기고 매일 밤 다미에게 구마의식을 치렀다. 다미는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현석과 다르게 공식 입양은 못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허가가 나지 않았을테지만- 사랑으로 키웠다. 그에게 이 구마의식은 숙명이자 일상의 의무였으며 간절한 바램이었다. 


“아저씨, 그런데 그냥 밧줄 풀고 하면 안돼요? 발목은 괜찮은데 손목이 너무 불편해요.” 

“이 거룩한 성수로 악령을 쫓으시고 성령의 은혜를 내려주소서.”

아담은 성수Ⅰ병에 물을 엄지 손에 묻힌 다음 그 엄지 손을 다미의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그렸다. 

“5년 동안 한번이라도 제가 난동을 피운 적이 있나요?”

아담은 방금 그 병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손목에 감겨있던 묵주를 꺼내 정리하여 손에 쥐고 다시 다미를 향해 섰다.

“얌전히 있을게요. 제발요오오오.”

아담은 성호를 그었다.

“인 노미네 파트리스 엣 필레 엣 스피리투스상티...”

“이 밧줄은 그냥 습관이죠? 그렇죠?”

“아멘. 조용히 해.”

“아니면... 사실은 보고 싶죠? 제가 이 밧줄을 풀고 몸을 뒤집어 천장에 붙어 있는 모습을? 그러면 제가 악마에 씌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으니깐.”

“오늘따라 말이 많구나. 오랜만이라 그런거니?”

“제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악마가 아니고? 오늘은 저를 사람으로 좀 인정해주시는건가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헤헤”

“...” 아담은 순간 뺏겨버린 자신의 기도문을 마음 속으로 완성해내고 있었다.

“표정이 안좋네요? 아저씨. 아저씨가 생각하는 제가 악마에 씌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저에게 처음 구마하실 때 스페인어를 막 지껄인거죠? 배우지도 않은 언어를 말한다고?”


재미있는 만화를 보는 어린 아이의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다미를 상대로 아담은 굴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또 그렇지 않은척 해야했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경험을 취사선택하죠. 그 신념이 깨지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에요. 일종의 발악인지도 모르고.”

“다미야. 난 지금 악마가 아니라 너의 인격이 직접 말하는 걸 믿고 있단다. 상담을 원하면 구마가 끝나고 이따가하자. 우선 기도를 드려야 해.”

“정신병자 욕할거 없어요. 아저씨도 비슷한 수준이에요.”

“난 정신과 환자들 욕한 적 없다.”

“자기도 모르게 해봤을걸요.”

“글쎄. 기억에 없는데.”

“방금 말하면서도 확신하고 있었죠?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야. 누구나 그래요. 하지만 정신병자들도 그럴걸요. 확신과 신념은 증거가 되지 못해요. 사제복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미쳤다고 말하고 싶은거니?”

“제가 수녀회 고아원에 있을 때 수녀님이 스페인어를 알려줬었어요. 그 때 저는 스페인어를 통달했어요. 제가 머리 좋은거 아시잖아요.”

“그리스도님 이 아이를 구원하소서.”

“그 때도 방금처럼 성호를 그으셨죠. 그래서 악마 시늉으로 맞춰줄려고 장난친거에요. 정말이에요. 저는 악마같은거 씌이지 않았어요.”

“새터넘 알리오스퀘 스피리투스 말리그노스, 쿼 아드 페르디시오넴 아니마룸...”

“설마 아저씨가 신의 은총을 받아 라틴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죠? 아저씨가 라틴어를 배워서 잘하는 것처럼 저도 스페인어를 배워서 한 것 뿐이에요.”

“페르바간투르 인 문도, 디비나 비르투테...”

“제가 그 때 스페인어로 뭐라고 했는지 알려줄까요?”

“인 인페르눔 데트루데, 아멘.”

“엄마가 매춘부인거 네 아들이 아냐?”

아담의 눈동자는 흔들렸고 꼴깍 넘어가는 침소리는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뭐...?”

“어우 무서워라. 그 때 스페인어로 그랬다고요. 지금 한 말이 아니고.”

아담은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침착히 쉬고 다시 다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어?”

“수녀원 고아원에서 어떤 수녀님이 말해줬었어요.”

“누구였는지 기억나니?”

“누구인지 안들, 의미가 있겠어요? 거기 수녀원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렸는데.”


아담은 이미 수녀원 집단 살해의 범인이 다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악마에 씌여서 한 행동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이론대로 다미의 잘못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담은 그렇게 사랑하는 다미를 용서하며 이 마을로 데려왔던 것이다. 다미의 범죄를 은닉하는 것에 대한 합리화된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수녀원에서의 집단 사망이 사실 다미가 생각하는만큼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미야. 넌 그 수녀원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원장은 아직 살아있어.’

브런치 글 이미지 3

아담은 친자식과 입양자식을 양손에 한 명씩 잡고 이 작은 마을로 온 것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15살 소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