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이는 아버지와 친구에 대해 의문스러운게 많았다. 사제들은 부유하지 못하다던데 이 거대한 저택과 충분히 넉넉한 생활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다미는 왜 출생신고가 안되어있는지, 다미가 정말 악마에 씌인건지, 그리고 특히 아버지의 지시사항에 대해서는 모순점을 많이 느꼈다.
다미와 낮에는 놀아도 되지만 밤에는 놀면 안된다는 것, 대화를 나누더라도 마음 속 깊은 대화를 나누어서는 안된다는 것, 같이 성서를 읽되 다미의 의견같은 건 듣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다미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하지만 다미가 먼저 부탁하는건 듣지 말라는 것. 아무래도 아버지는 정말 다미가 악마에 씌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석이는 악마의 존재를 믿기 어려웠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신에 대해서는 믿기지 않았지만 믿고 싶어했고 서로 반대되는 두 존재에 대해 현석은 마음의 끌림대로 생각하려했다.
다미는 상냥했고 예뻤으며 해박했다.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아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다미였지만 집에서 혼자 읽은 책과 교육방송만으로 자신보다 앞서갔다. 현석은 처음에는 다미에게 질투했지만 그 질투가 곧 자신의 열정이고 다미는 동경의 대상이었다는걸 알고난 이후에는 다미가 항상 자신보다 더 똑똑하길 바랬다. 그리고 다미는 실제로 언제나 자신보다 똑똑했다. 아버지에게 성서에 대해 배울 때에도 다미는 가끔씩 아버지를 당황시키는 질문들을 했다. 아버지는 믿음의 영역이라며 넘겨버렸고 현석이도 이제 그 질문은 기억도 안났지만 다미의 지적 우월성은 가슴에 새겨져 남아있었다. 여러모로 사랑스러운 다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미를 여자로서 좋아해보지는 않았다. 오랫 동안 함께 지내 친남매처럼 여겨졌었고 고작 자신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이 다미와 어울린다는 것은 말도 안되었기에. 사실 다미에게 어울릴 남자가 있기는한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학교를 마친 현석은 같은 동네 사는 문철의 차를 타고 함께 마을로 돌아갔다.
“신부님은 너희들 대할 때에도 똑같으시냐?”
“예?”
“우리랑 있을 때에는 워낙에 고상하게만 계셔서. 집에서도 그러면 좀 이상하지않나 싶어서.”
“아.. 똑같으세요.”
“재미없고 지루하고?”
“네, 그렇죠, 뭐.”
“가족 앞에서도 그렇게 있으면 그게 진짜 모습이라는 건데, 그런 사람도 다 있네.”
“아저씨는 제가 알고있는 모습이랑 달라요?”
“나는 원래 막 나대는 인간이잖아. 나는 집에서도 똑같지. 난 어디서든 내숭같은거 안부려.”
문철아저씨의 이야기에 현석은 즐겁게 웃으며 귀가했다. 시골길에 들어서 아무것도 없을 것처럼 도로와 황토색 땅만 이어지다가 다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에 진입하여 맞은편에 절대 차가 와서는 안되는 좁은 길을 덜컹덜컹 가기 2분쯤 되었을 때에 다미가 보였다.
“너 기다리고 있던거냐?”
“그냥 우연인 것 같은데요.”
문철아저씨의 차에서 내린 현석은 다미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미도 활짝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었고 둘은 걸어서 집을 향해 걸어갔다.
“너 저 아저씨랑 같이 다니는거 재밌어?”
“응, 아저씨가 웃기잖아.”
“맞아, 웃기지.”
“너도 알지? 회관에서 모여서 잔치같은거하면 저 아저씨가 제일 말이 많잖아. 술 마시면 춤 추기도 하고.”
다미는 박수치며 깔깔 웃었다.
“맞아, 진짜 웃겨. 그 꼴을 보고 있으면.”
“야, 그렇다고 어른한테 꼴이 뭐냐 꼴이.”
새침맞은 표정으로 현석이 다미에게 한소리하자 다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더니 현석의 손을 잡고 인도겸 차도인 길을 나와 어느 공터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20년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던 놀이터가 있던 곳이다. 그나마 잡초가 덜한, 예전에 시소가 있던 자리로 와 현석보다 살짝 키가 작은 다미가 현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너가 이 사실을 알면 그런 말이 안나올걸.”
“뭐가?”
“내가 괜히 꼴이라고 한게 아니야. 너 알지. 문철아저씨네 아줌마 있잖아.”
“영은아줌마?”
“너 그 아줌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솔직히 아저씨랑은 좀 안어울리지. 엄청 얌전하시고... 아니지. 얌전한 수준이 아니라 그냥 말이 거의 없으시잖아. 근데 항상 온화하게 웃으시고. 약간 성모마리아님 느낌?”
“성모마리아? 네가 아는게 그것 뿐이라 그렇게 말이 나오는거 아냐?”
“그렇긴 하겠지만.. 그래도 성녀의 느낌은 나.”
“그 아줌마에 대해 잘 알아?”
“별로 말해본 적이 없는데.”
“그 아줌마 착한 것 같아?”
“응. 착하시잖아.”
다미는 짧게 한 번 웃고 현석의 어깨의 손을 올렸다.
“조현석. 너 역시 어리구나.”
“아이씨. 너는? 나이 많냐?”
“현석아. 얌전하다고 착한게 아니야. 얌전한 건 그냥 성격이야. 얌전하다는건 말수가 적고 행동하는게 거의 없는거고. 그러다보니 나쁜 말이나 나쁜 행동을 할 일이 적어지는거지. 그러다보니 착해 보이는 효과가 있는거지. 얌전하다는 것은 그저 나약함일 뿐이야.”
“뭐? 무슨 말을... 아, 어쨌든 영은아줌마 착한거 맞아.”
현석은 다미와 논쟁하고 싶지 않아 대충 넘기고 싶었다. 다미의 논증을 듣는 것이 여간 불편했다.
“온화하게 웃으면 착한거야? 그건 그냥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잖아.”
“왜 그래? 아저씨랑 아줌마한테 혼났어?”
“그럴리가. 너는 자주 혼나봤겠지만 나는 동네 어른들한테 한 번도 혼나본적이 없어.”
“그건 그렇지... 뭐 아무튼 영은아줌마는 착해. 나쁘다는 증거도 없잖아.”
“있어.”
“뭐?”
현석이는 다미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한 아버지의 지시가 떠올랐다. 물론 무시한지 오래지만 지금은 마치 소크라테스의 다이몬처럼 아버지가 귀에 대고 강력히 속삭이는 것 같았다. ‘듣지마.’ 그러나 현석은 자신이 15살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보다 다미를 더 좋아했다.
“영은아줌마랑 정환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야.”
“뭐? 야! 너 그게 무슨...”
현석은 누가 들었을까 주위를 급하게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아니라는 말을 듣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다미의 어깨를 잡고 급하게 물었다.
“그런 소문을 대체 어디서 들은거야? 말도 안되잖아.”
“소문이 아니야. 당사자들 밖에 모르는데.”
“그럼 네가 어떻게 알아? 네가 봤어?”
“정환오빠가 나한테 말해줬어.”
현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다미에게 갖다대며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했다.
“그게 말이 돼?”
“많이.”
“야, 잠깐... 영은아줌마랑 정환이 형이랑 사귄다는 말이지, 네 말은?”
“아니, 안사귀는데.”
“아이씨. 야!”
“왜 이렇게 몰라? 그냥 파트너인거야 서로.”
“파트너? 무슨 파트너?”
“몸.”
다미는 실실 웃으며 현석의 일그러진 표정을 즐겼다. 현석은 손으로 머리를 만졌다가 주변을 살폈다가 한숨을 쉬었다가하며 괴로워했다. 괴로워하는 것인지 짜증을 내는 것인지 규정하기 힘든 몸부림이었다.
“무슨 헛소리야, 진짜. 야! 실제로 둘이 그런다고 치자. 정환이형이 너한테 그 얘기를 왜 하냐?”
“정환오빠가 나를 원하거든. 내가 꼬시는 중이야.”
“아, 이 미친년이 진짜.”
“좀 역겹지 않니. 25살 남자가 15살 소녀에게 말이야. 이거 불법이잖아. 학교에서 배웠지?”
현석은 다미와 같이 있는 이 순간을 만든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다미 손에 이끌려 이 불편한 진실들을 들었어야 할 게 뻔했다. 무엇보다 현석을 고통스럽게하는 진리 중 하나는 다미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혼란의 침묵에 빠진 현석에게 다미가 다가가 꽃발을 들고 귓속말을 했다.
“너무 싫지? 영은 아줌마같은 순백의 아줌마를 그런 변태자식이 더럽힌다는게. 뭐 순백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지만.”
현석은 말없이 다미를 째려봤다. 딱히 할 말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정환 그 미친...’
“현석아. 내가 그 변태를 죽일거야.”
“또 무슨 헛소리야?”
다행히 이 말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현석이었다. ‘사람을 죽인다니. 말도 안돼. 이건 거짓말도 아니고 그냥 농담이잖아. 영은아줌마랑 떼어놓겠다는 말인가?’
“현석아 말해봐. 내가 그 변태를 죽여도 되겠니? 그럼 영은아줌마도 더 이상 그런 더러운 짓을 하지 않을거야.”
“어떻게 죽일건데 네가.”
“그건 비밀이야. 절대 들통나지 않아. 들통나고 싶어도 들통날 수가 없어.”
“어휴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동의하는거야? 정환오빠를 죽이는데?”
“마음대로 하라고, 가자.”
밤 10시, 각자 집에서 TV를 보거나 농사일에 지쳐 자고 있을 때에 현석은 침대에 누워 짝사랑 비슷하게 -결코 사랑은 아니지만- 연민을 품던 영은아줌마에 대해 고뇌하고 있었다. 평소 이 시각에는 다미와 아버지가 뭘 하고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걱정이 걱정을 덮고 있었다.
아담은 다미에게 세로로 한 번, 가로로 한 번, 크게 십자가 모양으로 성수Ⅲ의 물을 뿌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위대한 권능으로 마귀를 쫓아버리소서. 주님께서는 언제나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저씨. 정말 구마기도가 나에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의의 문을 열어라. 내가 들어가 야훼께 감사기도 드리리라. 이것이 야훼의 문. 의인들이 이리로 들어가리라. 나의 기도 들으시고 나를 구해 주셨으니 주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그렇게 시편을 읽으면 제 안의 악마가 사라지나요?”
“새터넘 알리오스케...”
“어쩌면 이 의식이 악마를 더 강하게 하지는 않을까요?”
“조용히 해.”
아담은 30cm 자의 높이와 맞먹는 십자고상을 다미의 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미의 배에 있던 손을 그대로 둔 채 남은 한 손은 자신의 가슴에 대고 고개를 숙여 중얼중얼 기도했다. 다미는 처음에 조용히 있나 싶더니 곧 이어 웃기 시작했다. 아담은 무시하고 계속 기도했고 다미도 곧 웃음을 멈췄다. 웃음을 멈춘 이유는 웃음을 멈춰야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꼭 아저씨가 저한테 기도하는 것 같지 않아요?”
“... 아멘.”
“아니면 제 배 위에 있는 십자가에 기도한건가요?”
아담은 십자고상을 탁자에 올려놓고 성호를 그은 뒤 다미의 상태를 관찰했다. 엑소시즘의 효과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미 말대로 악마가 더 강해지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다미는 천연덕스럽게 누워있었다. 시간낭비란 이런 것일까, 그 개념이 눈앞의 현실로 드러나있는 것만 같은 압박감을 아담은 느끼고 있었다.
“아저씨.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저씨와 저 사이에 악마가 있는거에요. 악마는 우리 눈에 안보이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런다고 하면?”
“아저씨는 지금까지 악마에게 기도한거죠.”
“기도는 하느님에게 울리는 것이야. 중간에 악마가 가로챈다는건 말도 안되지.”
“그런가요. 그런데 왜 신이 만든 인간들이 악마에게 부마되는 현상이 일어나는거죠? 마찬가지로 악마가 가로챈거 아닌가요? 그것도 무려 신의 창조물을?”
아담은 다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누워있느라 수고했다, 다미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이어서 다미에게 축복을 내리는 성호를 긋고 밧줄을 풀어주었다. 다미도 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수고하셨어요라는 짧은 한마디를 뒤로 늘 해왔던 것처럼 미카엘 천사의 문을 열고 걸어나갔다. 겉보기에 다미와 아담 모두 별 감정의 동요없이 일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담에게는 하루하루 큰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