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은 이 마을에 하나뿐인 총각 성인이었다. 유일한 20대였고 그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살았다. 정환의 부모님은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노부부였지만 세상은 더 이상 옛날처럼 가족과 마을의 품에 아이를 가두지 못했다.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것들을 봐온 정환은 처음에는 호기심, 나중에는 욕망, 이후에는 중독으로 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닉해 살아왔다. 대부분 사람들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마을 안에서 쉴 때에 정환은 시간만 나면 읍내, 더 나아가 시내로 나갔다. 돈을 주고 욕망을 충족시키기도 했으며, 술이나 춤을 통해 즉석으로 만난 여자와 욕망을 누리기도 했다. 한 때는 이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되면 어떨까 감시당하는 마음으로 노심초사해하기도 하고 민망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고 싶다와 할 수 있다, 그리고 했다만 남아있었다.
그러다 우연치않게 마을 안에서도 눈이 맞아버린 일이 생겼다. 서울에서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다가 손을 씻고 내려온 문철과 반강제적으로 결혼한 영은과 단 둘이 집에 있다가 일을 벌려버린 것이다. 영은은 가부장적인 집에서 평생 집안일만 하다가 자신의 뜻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혼, 그리고 20명도 채 살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의 삶까지 모든 것이 악몽같았다. 처음에는 악몽이 악몽인지 몰랐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정환과의 일탈을 하고 있으니 그동안 자신이 악몽 속에서 나오지 못했었음을 느껴버렸다.
이렇게 한 유부녀의 삶을 바꿔놓은 정환은 이제는 또 다른 욕망을 꿈꾸며 사람이 오지 않는 옛날 회관의 마루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는 지금의 욕망이 앉아있었다.
“한 잔해.”
“오빠.”
“안마실거면 말고.”
“저랑 하고 싶죠?”
“하하! 너, 너, 어린 애가 누가 그런 말 하래.”
“미성년자랑 하는거 불법 아니에요?”
“난 너랑 안할건데.”
“거짓말. 그 때 내 가슴 빤히 쳐다보는거 모를까봐요.”
“사실은 네가 하고 싶은거 아냐?”
“오빠 잘해요?”
“크으.. 혼자 마시는 술이라 맛이 덜하네.” 정환이 소주잔을 내려놓고 입맛을 다셨다.
“잘하냐니깐요?” 다미가 고개를 꺾어 비스듬히 정환을 보며 말했다. 정환도 다미를 정면으로 쳐다봤다. “너 해봤어?”
“나중에 대답해줄게요.”
“안해줘도 돼.” 정환은 다시 다미가 아닌 정면으로 시선을 옮긴채 마른 오징어를 씹었다.
“미성년자랑 해봤어요?”
“옛날에. 18살짜리 애랑.”
“어우, 나쁘다.”
“야, 20살이 해도되면 19살도 되는거야. 19살이 되는데 18살은 안될거 뭐냐.”
“계속 그런 식으로 해서 15살인 나랑도 해도 된다는 거에요? 억지아니에요?”
“이제 너가 대답할 차례야.”
“말 안해줘도 된다면서요.”
“반칙이지. 왜 나만 말하고 너는 말 안해.”
“나는 어리잖아요. 나처럼 순수한 아이에게 그러면 안되죠.”
“웃기네. 별로 순수한 것 같지 않은데.” 둘은 다시 눈을 마주쳤고 다미가 정환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이따가 할 때 말해줄게요.”
다미는 소주잔 옆으로 바닥에 내려져있는 정환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맞대었다.
“오빠 집으로 올래? 시내로 나갔다가 들어오자. 도심 구경도 시켜줄게.”
“근데 그 전에 부탁이 있어요.”
“말해봐.”
“문철아저씨한테 이야기해요. 영은아줌마와의 일을.”
“뭐? 이게 미쳤나. 너 죽고 싶어?” 정환은 가까이 붙어있는 다미를 팔짓으로 밀어내고 노려봤다.
“왜 그렇게 화를 내요? 용서도 받고 좋잖아요.”
“너 또라이냐? 괜히 말해줬잖아, 이거.”
정환은 험궂은 표정으로 다미를 보며 소리질렀다. 삿대질까지 해댔는데 다미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오빠가 문철아저씨한테 이야기해서 용서받으면 오빠랑 할게요. 과거가 깔끔한 남자랑 하고 싶다고요.”
다미는 정환의 허벅지에 손을 살며시 올려 천천히 쓸어내리며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 아저씨한테 고해성사하는 것처럼요.”
정환은 벌떡 일어나 다미 얼굴에 침을 뱉었다. 침 맞은 다미의 표정에서 예쁜 미소는 사라지고 증오가 드리워졌다. 정환을 올려다보는 눈빛에는 네까짓게하는 표정이 담겨있었다.
“어디가서 나랑 술 마신 이야기하지마라. 어우, 나사빠진 년.”
정환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투덜투덜 걸어나갔고 다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짜증난 표정은 사라지고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정환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일주일 뒤 욕망에 눈이 먼 정환은 문철에게 살해당하고 문철은 살인죄 처벌이 두려워 마을에서 도주했다.
젊은 아들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정환의 모친은 영정 앞에서 우느라 전혀 마을 사람들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 일의 몫은 모두 정환의 아버지 역할이었다. 울지도 않고 웃는 표정으로 침착하게 사람들을 맞이하는 그에게서 평안이 느껴졌지만 그 역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서러움이 가득했다. 정환의 어머니와 다르게 그는 영정 앞에 있을 용기가 없어 사람들과 함께 하며 슬픔을 더러내고 있던 것이었다.
“신부님, 과일도 더 드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얘들아, 더 먹고 싶은거 없니?”
“괜찮아요. 많이 먹었어요.”
다미가 장례식장에서 지을 수 있는, 지어야하는 적정 수준으로 미소지으며 정환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정환 아버지는 떡을 잘 먹는다며 떡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다미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젓가락으로 사람들이 잘 안먹는 반찬을 집어 먹었다. 현석은 그런 다미가 역겹고 두려웠다. 장미 줄기에 있는 가시에 찔리면 찔린 사람 탓이라 누구 탓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찔린다고해도 잠깐 따끔하고 그만이지만 칼에 맞아 죽으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이 역시 누구 탓을 할 수 없다. 죽어버렸으니까. 죽은 사람은 죽인 사람을 탓할 수 없다. 심지어는 죽이라고 사주한 사람까지도.
“다미가 떡을 좋아하는구나.”
정환 아버지가 늙은 손을 살살 떨며 떡을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거의 비워져있는 접시들을 치워달라고 한 뒤 깊은 한숨을 쉬며 아담을 보았다.
“정환이가 성당을 다니지 않아 이렇게 되었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릴 때에 억지로 데리고 다닐 때도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때려서라도 좀 데리고 다녔어야 할까요.”
“그런 자책하지 마세요. 우리들의 삶이 그런 것에 좌지우지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신부님이 그 날 바로 오셔서 기도해주시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저희 집사람도 지금은 상태가 저래서... 그렇습니다만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정환 아버지도 눈물을 막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노인의 주름으로 타고 내리는 눈물은 길따라 흘러가고 노인의 글로 옮겨 쓰기 쉬운 울음소리는 더 슬픈 무언가가 있었다. 이 슬퍼하는 사람과 가장 거리가 먼, 대각선에 위치한 다미가 휴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정환 아버지 옆에 있던 현석은 왜 휴지 줄 생각을 못했지라며 자신을 자책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현석은 이 모든 상황이 공포스러웠다. 양심의 가책도 가슴 속에서 나팔처럼 울리고 있었다. 정환이 죽은 근본적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이 장례식장 안에서, 아니 이 세계에서 딱 두 명. 그 중 한 명이 자신이고 자신이 정환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것도 자책스러웠지만 이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크게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어깨위로 느껴지는 마음의 부담은 악마가 등 뒤에서 자신의 어깨를 살포시, 하지만 저항할 수 없이 세게 누르는 것 같았다.
“당신이 여길 어디라고 와!”
영정 쪽 안에서 크게 들리는 고함은 모두의 시선을 데려왔다. 정환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소리나는 쪽을 향해 달려갔고 아담도 그를 뒤따라 갔다. 현석은 몸을 돌려 일어날 듯 말 듯 엉덩이와 마음의 씨름만 하고 있었다. 다미가 가면 따라가고 안가면 그냥 앉아있어야지라고 결심같지 않은 결심을 하고 다미를 쳐다보았다. 다미는 현석을 보며 갸우뚱한, 정확히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화가 난 현석이 정작 화는 내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멍청히 앉아 있었다. 고함소리가 계속 들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영정 쪽으로 가자 현석은 그제서야 사람들을 따라 나섰다. 정환의 어머니가 고개 숙여 서있는 영은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었고 그 뒤에서 정환의 아버지가 정환 어머니를 떼어놓으려고 했다. 늙은 남성 노인의 힘은 부족해보였고 그나마 덜 늙어 보이는 여성 노인은 그 분노로 인해 힘이 넘쳐나보였다.
“네 남편 데려와. 네 남편 데려오고 우리 아들 살려내!”
“정환어머님, 진정하세요.”
“그래 여보, 그래도 조문 오셨잖아. 이건 예의가 아니지.”
“사람을 죽였는데 예의가 왜 필요해. 예의가 왜 필요해!”
“어머님, 그만하세요. 영은이가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아담이 정환 어머니의 팔을 잡고 못때리게 막으며 달랬다.
“정환아. 정환아. 아이고. 당장 나가!”
아들 잃은 여자의 울음은 도저히 그칠 줄 몰랐고 그 분노를 잠재우려는 시도가 더 나빠 보일 정도였다. 아무 말도 안하고 있던 영은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마법처럼 소음이 조금식 페이드아웃되면서 조용해졌다. 침묵이 감돌 때 정환의 어머니는 자신을 놓으라고 남편과 아담에게 말했다. 그리고 눈물을 닦고 차분히 영은에게 다가갔다. 사람들 제일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현석은 마음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차분해질 수 있을까.’ 정환의 어머니는 영은에게 다가가더니 자신의 신체 범위로 들어오자 그대로 영은의 뺨을 갈겼다.
“여보, 뭐하는거야!”
정환의 아버지는 아내의 허리와 배를 껴안고 그녀를 몸 뒤쪽으로 당겼다.
“다신 오지마. 너도 마을 밖으로 사라져. 다음엔 네 몸을 절단낼 수도 있어.”
어찌나 묵직한 큰 소리로 또박또박 외치는지 다들 귀를 아파할 정도였다. 영은은 결국 조용히 몸을 일으켜 장례식장을 나왔다. 정환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무도 그녀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런 분위기를 형성한 것 중 하나는 문철과 영은의 평소 행실, 즐거움과 우울함의 대조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빠져나가는 길을 그저 쳐다만 보고 있을 뿐 아무도 영은을 챙겨주지 않았다. 어서 사라지라는 듯 나가는 길을 조용히 비켜줄 뿐 이었다. 정환 어머니의 눈치를 봐서만이 아니였다. 사람들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욕망에 빠졌고 그렇게 그녀는 문둥병환자같은 처량한 모습으로 빠져 나갔다. 영은이 장례식장 건물을 빠져나와 주차장을 가고 있을 때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은아!”
아담이 뛰어오며 가뿐 숨을 내쉰 다음 영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많이 슬픈 상태잖아.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 고마워. 나도 알아.”
“네 잘못이 아니야.”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내기로 공식적으로 합의한 적은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최소한 말은 놓게 되었다. 영은은 고결한 신부님에게, 아담은 편하게 반말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여성에게, 둘은 드문드문의 교류로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영은은 아담의 눈을 잘 마주칠 수 없었다.
“정말 그럴까?”
“당연하지. 정환 어머님도 알아.”
“아담아.”
“응?”
영은은 곧 울것처럼 울먹하다가 곧 진정하고 이번엔 아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이가 왜 정환이를 죽였을까?”
“글쎄...”
“모든게 잘 정리될 날이 올까? 그이는 벌을 받아야겠지만... 정환이 부모님이나, 아니면 나나...”
“그럼.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잖아. 그냥 떠도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그러니까 아직도 그 말이 유명하지.”
“모든게 정리된 줄 알았는데 또... 또 다시 더 끔찍한 비극이 나오면?”
“왜 그런 말을 해? 걱정이 문제를 만드는거야. 마음을 편하게 해.”
“나 너무 무서워.”
“괜찮아. 걱정하지마. 집에 가서 좀 편하게 쉬어.”
“아담아.. 신부님..”
“응?”
영은은 다시 아담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있는 신경을 다 써서 만들어낸 표정으로 웃은 뒤 말했다.
“아니야. 잘 들어가라고. 현석이랑 다미 잘 챙겨주고.”
아담은 영은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구나 눈치를 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장례식장 안에서는 안에서였지만 지금 여기, 현재 아담의 세계에서 가장 가엾은건 영은이었다.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9시였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휴식을 취하고 아담과 현석은 보통 부자지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외출로 인해 피곤할 법도 했지만 평소보다 늦은 시각 열시 반에 아담은 다미를 데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마친 뒤 아담은 성수Ⅰ병의 물을 엄지에 묻혀 아라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었다. 그리고 그레고리오 성가를 튼 뒤 의자에 앉아 말없이 벽에 걸린 성모 그림 액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몸과 마음이 항상 지쳐있었는데 그 날은 외출이라는 사소한 이유로 지나치게 더 많이 지쳐있었다.
2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오늘도 어김없이 다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 문철아저씨가 정환이오빠를 죽였을까요?”
“...”
“혹시 영은아줌마가 정환이오빠랑 바람을 폈고, 문철아저씨가 그걸 알아서 그런게 아닐까요? 어때요? 제 가설이.”
아담은 악마의 발현으로 판단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성수Ⅱ의 물을 다미의 얼굴에 뿌렸다. 그리고 성호를 그은 뒤 라틴어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레고리오 성가 속에서 조용히 읊어지는 라틴어 기도문은 성스러운 분위기, 그러면서도 압도적인 느낌을 뿜었다 그러나 다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제 생각에는 그거 말고는 없어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다미는 아담의 표정을 보려면 목을 들어 봐야만 했다. 그렇지만 다미는 그것이 매우 귀찮게 여겨졌다.
“아저씨는 제가 악마에 씌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악마는 자신이 보지 않은 것도 알게 만들지 않나요? 그게 부마증상 중 하나라면서요.”
아담은 섬뜩하여 기도를 멈추었다. 그러고는 다미의 얼굴을 쳐다봤다. 늘 보는 미소는 오늘따라 더 악마같았다.
“그렇다면 제가 하는 말이 진짜이지 않을까요?”
“악마는 거짓말의 아버지지. 태초에 뱀이 아담에게 거짓말을 한 그때부터.”
“잘 빠져나가시네요. 그럼 방금 내가 한 말이 정말 거짓말일까요?”
아담은 십자고상을 들어 다미의 가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전능하신 하느님. 세상의 구원자이자 지배자이신 주님.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물리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이 땅에 평화를 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세상의 구원자이자 지배자이신 주님.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제가 하는 말이 거짓말 같은가요? 아니면 인정하기 싫은거에요?”
“평화를 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세상의 구원자이자 지배자이신 주님. 간구하오니...”
“아저씨도 영은아줌마랑 그렇고 그런 사이이고 싶은거 아니에요?”
아담은 다미의 눈에서 손을 뗐다. 그러더니 탁자 밑 커다란 성수가 든 항아리를 그대로 들어 그의 마음 속 분노를 가득 담아 다미에게 뿌려버렸다. 얼굴을 포함해 온 몸이 다 젖은 다미는 눈을 질끈 감고 몸 위를 누르는 물에 눈을 껌벅거렸다. 그 상황에서도 그레고리오성가는 계속 재생되고 있었고 성가 덕인지 저질러버린 분노의 몸짓 덕인지 아담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마음 속으로 방금 전 행동을 매우 후회했지만 이미 저질러져버린 일이고 후회하는 낌새를 내면 악마가 그 틈을 파고 들 것이 분명했다.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것도 문제인데 더 악마에게 질 수 없다고 아담은 다짐하며 하느님께 평정심을 달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이런 일이 앞으로 자주 생긴다면 안되지 않을까요?”
다미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는 아담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 대답도 안하는게 낫다고 판단하고 침착한 시늉으로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기도하며 그녀를 향해 마무리를 의미하는 축복의 성호를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