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학의 사도 Aug 31. 2024

1부 4화)설득

달리가 밀레의 만종 그림에 죽은 아이의 관이 있다고 우기는 것을 현석은 그 말을 믿었다. 정말 죽은 아이의 관을 처음에 그렸었을까라는 질문을 미술 선생님에게 처음 들었을 때에는 작품 만종에 대하여, 그 다음은 만종을 그리는 밀레에 대하여, 그리고 나중에는 그 주장을 한 달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의 본성이 약하다는 성서의 구절을 읽고 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왜 달리의 말이 맞다고 믿을까? 달리의 말에 완벽한 논리적방어막이 있어서?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달리의 말을 긍정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러지 않았고 화살은 자신에게로 갔다. 그 그림에 해골이 있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왜 해골을 연상할까? 왜 없는 진실을 있는 진실로 치환하고 싶어할까? 해골은 악마. 나는 악마를 동경하고 있다. 악마와 함께 지내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다미가 악마다.’ 

현석은 이런 생각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의지와 무관하게 받아들여야했고 조만간 아버지가 다미에 의해 정신병에 걸려 자살할 것 같다는 무서운 예지감, 불안감, 공포심이 들었다.      


정환이 죽고 나서 2주 정도 지나고 마을 사람들이 정환의 부모와 영은의 눈치를 보며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덕에 마을은 적절히 조용했다. 8명이 참석한 주일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쓸고 있던 현석과 다미는 서로 반대편에서 청소를 시작해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꼼꼼히 하는 다미와 달리 대충 빨리 끝내려는 현석은 둘이 만나는 지점을 다미 쪽으로 이끌었다.

“현석아.”

“다했다, 가자.”

“야아”

다미가 아양떨면서 현석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아, 왜?”

“나 오늘 마을 나갈거야.”

“또 왜? 몇 번 째야?”

“내가 문철아저씨를 데려올거야.”

“뭐라고?” 현석은 입구에 누가 기웃거리지는 않는지 확인한 뒤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다미를 째려봤다. 

“대체 왜, 왜, 왜, 왜.”

“뭐야? 왜 그렇게 신경질적이야?”

“그냥 있어, 좀.”

“뭐를?” 한숨을 푹푹 쉬면서 고개를 떨군 뒤 현석은 무겁게 고개를 다시 들고 짜증을 부렸다.

“아오 진짜, 씨. 왜 나가는데?”

“너 왜 이렇게 짜증을 내?”

“몰라서 물어? 오늘 미사때도 아빠가 정환이형을 위해 기도했잖아. 정환이형 부모님도 아직도 슬퍼하시고. 못봤어?”

“그래서 뭐?”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떻게 해결해. 사람이 죽었는데. 네가 살려낼거야?” 현석이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아, 그런데 정말. 너 자꾸 짜증낼래?”


다미가 험궂은 인상을 지으며 현석이를 쳐다봤다. 현석은 그 때 명쾌하게 알게되었다. 자신은 다미를 두려워하고 이 관계는 자기 힘으로 뒤집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현석은 두려움의 명령으로 내려진 자신의 명령으로 얼굴 속 증오심을 풀었다. 다미는 현석에게 한 발짝 더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현석의 얼굴 바로 앞으로 갖다대었다. 그리고 너그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예전부터 현석이 좋아하던 표정이었다.

“내가 문철아저씨를 데려올게.”

“뭐..뭐?”

다미가 다시 돌아 미사용 의자의 책상 부분에 걸터 앉아 말을 이어갔다.

“너 학교 다니는 동안 나 영은아줌마 집에 다녔어. 며칠 동안 다니면서 위로도 해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그리고 그저께 금요일에 물어봤지. 문철아저씨 어디에 있는지.”

“진짜야?” 떨리는 목소리로 현석이 물었다.

“예전부터 아줌마 표정만 봐도 알겠더라고. 아저씨가 있는 곳을 안다는 걸.”

현석은 아무 대답이 없었고 다미는 현석의 반응이 없는걸 아쉬워하는 듯 갸우뚱 거리며 현석을 쳐다봤다. 7초 정도 더 지나 현석이 할 수 있는만큼 다미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제 그만하면 안될까?”

“왜?”

오후의 시작으로 높게 뜬 해는 성당 창문에 햇빛을 넣어 주어 둘이 서로를 더 잘 보이도록 만들어주었다.

“이럴 이유가 없잖아.”

“왜 없다고 생각해? 있을 수도 있지.”

비웃는 소리를 한껏 낸 다미의 대답은 현석을 더 깊은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너 아빠한테 백날 말해봐. 밤마다 하는 그 정신나간 구마좀 그만하라고. 아저씨가 그만둘까?”     




다미는 현석도 모르게 마을을 떠났고 다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아담은 말없이 묵주를 만지작거렸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었는데 말만 하지 않은게 아니라 실제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나가서 뭘 하는지,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또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지, 자신에게 복수할 계획을 짜고 돌아오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모든 걸 하느님께 맡기기로 했다. 현석에게는 신경쓰지 말라고 하고 혹시 연락이 오면 바로 알려주라고 일러준 뒤 성당으로 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앞에 서서 무릎을 끓고 경건함 마음으로 기도드렸다. 


‘주님, 죄인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이 죄인에게 힘을 주소서. 아들을 바치려고 한 아브라함의 꺾이지 않는 강직함을 저에게 주소서.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죄송합니다, 주님.’ 

아담은 고해실에 들어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안하려고 해도 다미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다미는 오늘 자신의 발로 나간것일까, 악마에 끌려간 것일까. 대체 6년째하는 구마 의식은 왜 효과가 없는 거야.’ 아무도 들어가라고 한 적 없는 감옥같은 독방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냥 괴로운게 아니라 정말 목숨을 끊고 싶었다. 자신이 죽으면 모든게 끝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결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주님께 의지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신부님.”

“아... 기도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고해 처음 해봅니다.”

아담은 익숙한 목소리를 알아챘다. 그것은 친구 영은의 목소리였다.

“세례는 받으셨습니까?”

“아니요.”

“세례받지 않으신 분은 고해성사를 보실 수 없습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나가려고 엉덩이를 드는 영은에게 한마디의 말이 들렸다. 어두운 방에 한 줄기의 작은 빛이 소리로 들려왔다.

“언젠가 세례를 받겠다고 약속하시고 고해성사를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되나요?”

“하느님은 무신론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언제나 기다리실 겁니다.”

“신부님.”

서로가 서로를 알고있는 익명의 대화에서 영은은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는 이야기를 꺼냈다. 신에 대한 믿음, 친구에 대한 믿음으로.

“저는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러니까.. 제가.. 그럼 안되는데... 젊은 남자랑 외도를 했어요.. 그 남자는 제가 좋다고 했고 저도 모르게 그만..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는.. 그 남자를 죽였어요. 그리고 남편은 도주했고 저는 그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 경찰에 말을 안했어요. 범죄은닉인가요. 뭐 그런 죄를...”

아담은 머리가 복잡했다. 우선 제일 처음 든 생각은 다미의 말이 정말 맞았다는 것. 두 번째로 영은에 대한 실망감과 혐오감. 마지막으로 든 감정은 나약하고 미련한 영은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심이였다. 

“이 외에도 제가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담은 스스로 침착하라고 명령한 뒤 말했다. 

“성당에 비치된 성서를 집에 가져가서 마태복음서를 읽도록 하십시오. 예수님 말씀 부분은 소리 내어 읽으시고요. 그리고 자매님.”

“네.”

“경찰에게 남편 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세요.”



영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담도 자신이 괜한 말을 했나 후회하면서도 사제로서의 의무라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마음 편한 것만 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신과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부님...”

“네.”

“말을 해줬어요.”

“말을 해줘요? 자매님이요? 경찰에게요? 무엇을요?”

“남편이 있는 곳...”

영은의 눈은 사제와 자신을 가로막는 가림막 아랫선을 보며 흔들리고 있었다.

“한 아이에게 알려줬어요.”

“아이요? 아이 누구..”

“죄송해요. 제가 왜 그걸 경찰이 아니라 아이에게... 꼭 뭐에 씌인 것처럼...”


영은은 머리를 부여잡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담은 영은에게 가야하나 일어섰다가 안될 것 같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영은의 절규는 멈추지 않았다. 큰소리의 절규는 자신의 마음 속 고통을 알아주라는 듯이 크게 울렸다. 하지만 그것은 의지의 외침이 아니었다. 자신의 신체 기관은 그저 생물학적으로 움직일 뿐이었고 영혼의 절망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의자에서 자빠져 넘어져 문에 부딪혀 열린 문 밖으로 쓰러졌다. 아담은 뛰어 나와 영은을 부르고 흔들었다.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눕혀놓고는 자기 입을 이유없이 문질러대며 어떻게 해야되는지 고민했다. 신음소리가 들려와 다시 영은을 쳐다보니 악몽을 꾸는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아무래도 질병이나 발작 그런 상황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담은 영은을 업고 유아실로 데려가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손으로 이마를 대보니 열이 많이 났고 얼른 달려가 수건에 물을 묻혀 그녀의 이마에 대주었다. 처음 쓰러진지 20분 정도 지나고나니 숨이 골라졌고 상태가 안정을 되찾았다. 아담은 안쓰럽게 누워있는 영은을 내려다보다가 축복의 성호를 그어준 뒤 알아서 일어날거라 생각하고 사무실로 갔다. 저녁 미사까지는 1시간이 남았고 30분 뒤에는 현석이와 마을 사람 강예정이 올 것이다. 저녁 미사에는 현석과 다미, 그리고 동네의 할아버지와 그 손자, 그리고 젊은 유부녀 강예정만 왔다. 정환이 죽은 이후 정환의 부모님도 같이 오니까 1시간 뒤에는 8명이 성당에 와있을 것이다. 영은이 그 전에 일어나 가야할텐데 신경쓰며 사무실을 왔다갔다했다. 그러다 벽에 걸린 뱀을 밟고 있는 미카엘 천사의 그림 –구마를 하는 방에도 똑같이 있는- 을 보니 갑자기 문득 걱정이 되었다. 방금 그 발작 증상이 혹시 악령으로 인해 고통받는게 아닐까. 다시 유아실로 얼른 뛰어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안도도 불안도 아닌 불편한 감정으로 둔하게 서있다가 얼른 성서비치대로 달려갔다. ‘아, 하느님.’ 가보니 비치대에 20권 있어야 할 성서가 19권 있었다. 아담은 잃어버린 수명을 되찾은 안도의 숨을 쉬고 저녁 미사를 준비했다.






‘하느님.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당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인간이기에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인간이기에 그것을 이기지 못했고 인간이기에 그것을 후회합니다. 저 때문에 정환이가 죽은 것이 맞다면 저를 벌해주소서. 하지만 용서받을 수 있는 만큼만 벌해주소서. 정환의 죽음이 저 때문이 아니라면 정환 부모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옵소서. 저는 너무나 두렵습니다. 집 밖에 나가는 것도 두렵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저에게 부끄러움의 바다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남편의 죄까지 모두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람이 두렵고 해가 지는 것이 두렵고 햇빛이 비추는 것이 두렵고 목소리가 두렵습니다. 하느님 용서해주세요.’

눈물 흘리며 무릎 끓고 성경책을 쓰다듬으며 영은은 자신의 집에 혼자 있었다. 원래 둘이 살던 황량한 사막같던 집은 이제는 혼자 사는 지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옥이 가장 편했고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이 지옥문에는 정환의 모친이 마카로 칠해놓은 ‘악마년 죽어라’라는 여섯글자가 그녀를 가둬놓고 있었다. 한 번씩 아담이 찾아와 말동무를 해주면 잠깐 살 맛 나는 세상을 맛보았다가 다시 지옥 속에서 천국을 향해 기도하는 여성이 되었다. 그녀의 바램은 하나였다. 그녀의 마음 속 고통이 모두 사라지는 것.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어도 상관없으니 이 고통만 사라지기를. 정환이 다시 살아나든, 정환의 모친이 자신을 용서하든, 절로 자신의 마음 속 죄책감이 사라지든 무슨 방식으로든 고통만을 사라지기를 간절히 원했다. 고통의 바다 안에서는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구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만이 그녀의 삶의 유일한 호흡이었다.     


‘저벅저벅’     

익숙한 발소리에 영은은 순간 숨이 멎을 뻔 했다. 영문도 모른채 성경책을 이불 속에 숨겨놓고 발소리에 집중했다. 문을 열어서 누가오는지 확인하면 됐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신부님이였으면, 친구 아담이였으면. 하지만 자신이 아는 아담의 발걸음 소리가 아니였고 점점 더 가까이 오는 발걸음 소리는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그 소리였다. 밤 11시에 문이 열렸다.

“여보. 나 왔어.”

“안녕하세요. 제가 설득한다고 했잖아요.”

문철의 등 뒤에 다미가 서있었다. ‘넌 천사야 악마야? 내 이 기분은...’ 계속 무릎 꿇은 채로 있는 영은은 다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서있는 문철과 방바닥 사이에 두었다. 고개 숙인채 왜 지금 나는 이 방에 혼자서 이들을 맞아야하나 생각했다.

“와... 왔어요? 바..밥은 드셨고요?”

“여보. 괜찮아?”

“아줌마가 많이 놀라셨나봐요.”

다미가 영은의 등 뒤에 와 앉아 할 필요없는 부축을 해주었다. 

“아저씨도 편하게 앉으세요.”

다정한 미소로 문철에게 말하자 문철은 자기가 손님인양 바보같은 반응을 하며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아저씨가 정환오빠네 부모님에게 사과하시겠대요.”

“...”

영은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다. 숨쉬는 순간 순간 모든 것이 지옥으로 느껴졌다.

 악마와 악마의 하수인. 그들과 숨을 나눠 쉬고있는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왜 악마로 보일까, 거기까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시간도 지났고 거기 어른들 마음이 좀 누그러졌겠지. 그리고 따지고보면 우리 모두 나쁜 사람이잖아. 내 죄라고 뭐 더 나쁜가? 용서받지 못할 이유가 뭐겠어.”

“뭐라고요?”

“게다가 거기 양반들은 성당도 다니고 있고. 용서가 의무인 사람들인데.”

“그게 사람을 죽인... 나참, 가해자가 할 말이에요?”

“내 말이 틀려?”

“지금 반성하고 돌아온거 맞아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돌아온거에요?”

“다 괜찮아질거야.”

“대체 뭐가요? 뭐가 괜찮아져요? 누구 마음대로?”

어처구니없는 말에 화가 난 영은은 이말 저말 쏟아낼 용기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용기같은 화가 솟아 나왔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야. 성당 신부님도 그런 말 자주 하잖아.”

“그래서 사람 죽인 일이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이에요?”

잠깐의 정적이 있었고 곧 문철의 표정이 성난 황소처럼 사나워졌다. 깡패 시절 자주 부리던 표정이었다.

“그럼? 남편 있는 여자가 젊은 놈한테 다리 벌린건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전세가 역전되고 방안의 공기는 영은을 휘감고 짓눌렀다. 그 방 안에서 영은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한게 불과 방금 전인데,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는거지.’ 영은은 시간의 멈춤이라는 관념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지 생각해서 돌아온 줄도 모르고 어디서 범죄자 취급이야! 잘못은 지가 먼저 해놓고. 뻔뻔스러운 년.”

자리에서 일어나 당장이라도 두들겨 팰 것 같은 위협적인 문철 앞에 영은은 팔로 얼굴을 가리며 겁먹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저씨, 그만해요. 그만하고 화를 좀 식혀요.”

문철은 일어선 다미와 앉아있는 영은을 번갈아보다가 짜증을 내며 머리를 긁어댔다. “아 기분 진짜 더럽네!” 지저분한 신경질에서 인간성이란 볼 수 없었다.

“아저씨. 내일 용서받으려면 아저씨도 아줌마를 용서해야돼요.”


다미의 말에 문철은 순한 양이 되어 상황이 종료되고 세 명은 한가족처럼 한 방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다. 각자의 새로운 날을 기대하고 염려한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