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학의 사도 Sep 03. 2024

1부 5화)쌍방

기도를 위해 새벽 6시에 성당에 온 아담은 이 마을에서 처음 경험한 놀라운 풍경을 보았다. 사람들이 미사실에 앉아있는 것이였다. 마을의 한 할아버지가 가끔씩 혼자 와서 기도하고 있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여러 명이 앉아있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도 어여쁘지도 않았다. 뒤통수만 보고도 그 세 명이 누구인지, 얼마나 끔찍한 조합인지, 있어서는 안되는 무대 연출인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아담이 점점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다미가 일어서서 돌아보아 아담과 눈을 마주쳤다. 담담한 무표정으로 아담을 쳐다보았다. 


“아저씨, 저 왔어요.”

“... 그래.”

“문철아저씨가 돌아왔어요. 용서비시고 자수하시겠대요.”


이 말 할때의 다미는 칭찬을 바라는 자기 나이에 맞는 표정이었다. 문철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담에게 허리를 70도 꺽어 인사했다.

“신부님, 저 죄 용서받을려고 그럽니다.”

“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영은은 계속 자리에 앉은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담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가출한 저 아이가 문철씨를 데리고 왔구나. 아니, 그녀 속의 악마가 또 한 영혼을 타락시켰구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참회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인데. 이제는 저 악마가 그런 것까지 하며 끔찍한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어.’ 아담은 영의 싸움에서 밀리면 안된다 생각하여 문철에게 성호를 그어주며 기특한 일이라고 칭찬해주었다. 그러고는 세 명을 모두 쳐다볼 수 있게 그들의 앞자리로 가서 몸을 돌아섰다. 다미와 문철에게 앉으라고 하고 영은을 쳐다봤다. 가엾은 친구는 아무런 기운도 없었다. 숨쉬는 시체라고 해도 별로 위화감없는 상태였다. 어떻게 다미와 만나 돌아오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물어보려고 할 때 미사실 문이 열렸고 이번에는 정환의 부모가 들어왔다. ‘아, 하느님. 당신의 계획이십니까? 아니면 사탄의 농락입니까?’ 

아담은 작은 두통 속에 괴로워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감추어보려고 나름 신경썼지만 다미에게는 보였다. 다미는 피식하고 웃었다. 아담 역시 이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 소리는 들리라고 낸 소리였다.

정환의 아버지는 비교적 담담하게, 어머니는 화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애써 붙잡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들어오고 있었다. 2대 4로 미사실 가운데 통행로로 마주해 선채 아담이 전투의식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정환아버님, 여긴 어떻게...”

“어제 밤에 다미가 전화를 했어요. 문철이가 왔다고... 사과할거라고 해서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는 듯 문철은 다짜고짜 자신이 죽인 자의 부모들에게 가 무릎을 꿇었다. 

“제가 무식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두 분이 날 용서해줄지 모릅니다. 근데 정말로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감옥가서 죄값도 치를 것이고 두 분께도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드리겠습니다.”

대본을 외운 것처럼 딱딱한 목소리에 또박또박 소리를 지르는게 여간 듣기 싫은 소음이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였다. 정환의 모친은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문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아담 뒤에 거대한 예수님 상을 보았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눈에 머금은채 무릎 꿇은 문철을 지나쳐 아담에게 갔다.



“신부님, 저랑 얘기 좀 해요.”

아담은 당황한채로 끌려가듯이 사무실로 먼저 가는 정환의 모친을 뒤따라갔고 그 모습을 가장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네 명 중 다미였다.

“신부님, 궁금한게 있어요.”

“예.”

물어보려다 말고 정환의 어미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아이고 소리와 함께 땅을 치는 그녀에게 아담은 같이 꿇어 앉아 손을 잡아주었다.

“많이 힘드셨죠.”

“신부님...”

“하고 싶은 말씀 다 하세요.”

“제가 만약 저 남자를 죽이면 저는 지옥에 가나요?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거에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아담은 좀 어이가 없기도 했고 이런 고민을 해야하는 처지가 가엾기도 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며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에는, 우리에게도 그만한 자비심이 있기를 바라셨을 겁니다.”

“난 못해요. 사람들은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이제는 괜찮지않냐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하루도 잊은 적이 없어요. 아들의 목소리를, 아들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을, 아들을 떠나보낼 때 흘린 눈물을 매일 똑같이 흐르고 있어요. 저 남자를 보고 있는 내 마음이 얼마나 끔찍한지 아세요? 울화통이 터져요 울화통이.”

아담은 쟁탈전을 하는 느낌이었다. 악마와 자신의 길 중 이 여인은 어디를 갈 것인가. 아담은 절대로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정환의 모친을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성서를 꺼내 마태복음 18장 일부를 읽어주었다.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읽어주고 싶은 구절을 읽은 다음 정수기에 따뜻한 물을 종이컵에 담아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그녀의 손을 감싸 물을 잡게한 뒤 자신도 의자를 끌고 와 마주 앉았다.

“신부님.”

“네.”

“정환이는 지옥에 있겠죠?”

“글쎄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착한 일 한 번 한적 없으니 지옥에 갔겠죠.”

“그런데 그건 왜..”

“제가 지옥에 가게 되면 정환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어머님...”

황당함과 좌절감에 고개가 절로 떨궈진 아담이였지만 얼른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느님, 제게 힘을 주소서.’

“그렇게 문철씨에게 복수하고 싶으세요? 죽이고 싶어요?”

“저는 이 살인욕구가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세상 누구라도 저같이 될걸요. 다만...”

“다..만?”

“지옥에 가는게 두려워요.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영겁의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는게요... 죽고나면 가족에 대해서는 잊게 된다고도 하던데... 정환이도 못알아보고 저 혼자 지옥불에서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면 너무 분하잖아요.”

“어머님, 하느님을 두려워하시나요?”

“네...”

종잡을 수 없는 여자의 태도였지만 아담은 이 앞뒤 안맞는 의식의 흐름을 파고 들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 또한 우리의 믿음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이고요. 지금도 슬픔과 분노에 힘들어한다고 하셨지만 영원의 세계에서는 그 시간도 매우 짧은 시간이에요. 그 고통스러운 감정도 작아질겁니다. 불변하는건 하느님 뿐이에요.”

“여기서 좀 진정할 수 있게 시간을 주세요.”

“네.”



아담은 혼자 나가 심판의 순간을 기다리는 네 명에게 다가갔다. 아무 대화없이 네 명 모두 의자에 앉아있기만 했다.

“정환 어머님께 잠깐 시간이 좀 필요하신 것 같아요. 아버님과 문철아저씨는 잠깐 대화 좀 나누셨을까요.”

“제가 사무실 문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으렵니다.”

“그러지마시고 기다리시게요.” 아담이 순간 올라오는 짜증을 용케 참아내고 사제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십분이면 될 줄 알았던 아담의 예상과 다르게 삼십분을 넘어 한 시간이 넘어졌다. 아내가 좀 무례하다라고 느껴진 남편이 자신이 데려오겠다고 나섰다. 아담이 좀 더 기다려보자고 말렸고 30분을 또 넘기면 자신이 데려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당사자 빼고 멋대로 정한 약속 시간이 지났고 아담이 최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어섰다.


“아저씨, 제가 갈게요.”


아담을 말리듯이 다미가 벌떡 일어났다. 아무도 안쳐다보던 영은이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사람들쪽을 쳐다봤다. 그 모습을 아담이 보았고 영은은 친구 아담에게 안된다는 고개짓을 했다. 절대 안될 일이라는 것은 아담도 알고 있었다.

“아니야. 넌 앉아 있어라.”

“제가 잘 위로해드릴 자신있어요.”

“됐다니까!”

아담은 최근 몇 년 동안 내본적 없는 큰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넌 집에 가있어. 며칠 동안 말없이 집을 나가 있어놓고 너가 이렇게 끼고 있을 때냐!”

“아저씨...”

다미는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대로 뺨을 타 턱 밑까지 가 떨어졌다. 그 시간 동안 다미의 눈은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아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아침 해가 떠서 들어오는 빛에 악마에게나 나올 암흑은 성당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다.

“제가 문철아저씨 데려왔잖아요. 죄를 뉘우치고 용서받고 모두가 마음의 평화를 받도록 할려고요. 제가 철없이 가출해서 불량스럽게 있던거 아니잖아요.”

사춘기 중학생의 서러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앳된 감정으로 또박또박 읊어대는 다미 뒤로 영은이 계속 고개를 저었다.

“다미야...”

“신부님. 다미 얘가 아니였으면 저도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 뭡니까. 얘가 정말 천사나 뭐.. 그 성녀같은 그런거 일 수도 있잖아요?”

답답해하면서도 육체적으로 한숨 쉴 수 없어 영적으로 한숨 쉬고 있는 아담 뒤에서 정환의 아비도 거들었다.

“집사람도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집사람이 신부님을 많이 좋아합니다만 또 다른 사람에게 더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면...”

“아저씨.”


영은 혼자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아담은 도저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억지 부리지 않는 성격의 그였고 차마 다미가 악마에 씌였다는 말은 할 수도 없었기에 아담은 무언으로 다미가 데려오는 것을 허락했다. 다미는 훌쩍이며 미소 지은 뒤 돌아서서 사무실로 향했다. 돌아서는 과정에서 다미와 영은은 눈을 마주쳤고 영은은 두려움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10분 뒤 사과받을 사람이 그들 앞에 나와 섰다.     



아담은 성호를 긋고 사과받을 사람에게 축복의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 쥐어주었다. 옆에서 보기에 용서의 미덕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으로 보였지만 아담의 속내는 악마로부터의 영적 보호를 위한 행동이였다. ‘하느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이겨낸 것처럼 이 여인에게도 힘을 주소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악의 손을 뿌리치게 하시고 이 여인의 힘이 부족하다면 저와 성인, 성모마리아의 간구로 기도드리니 주님께서 힘을 빌려주소서.’

“정환어머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죽어버린 아드님한테도 미안하고 어... 그냥 진짜 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전부 다 죄송합니다. 정환어머님. 용서해주십시오.”

무릎 꿇고 듣기 싫게 읊어대더니 절을 한 채로 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있었다. 용서해주면 일어서겠다고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네, 용서할게요.”

너무 쉽게 나온 한마디에 계속 다른 곳을 보던 영은이 모여 서 있는 무리를 쳐다봤다. ‘다 끝난거야? 정말 끝난거야?’ 견디는 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 때에 드디어 고통이 끝난 것인지 영은이 안도 비슷하게 하려 했다. 그때 무식한 남편이 용서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정말입니까 물어댔다. 그 꼴이 한심했지만 자신도 우선은 이 일에 함께 해야한다는 판단은 들어 영은은 힘없는 다리를 이끌어 5명의 무리를 6명의 무리로 만들었다.

“네, 용서해요. 정말로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아줌마 엄청 감사해요!”

혼자서 감사하다며 떠들어대는 그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돌아가며 감사하다고 했다. 미성년자에게는 감사하다라고 하지 않고 고맙다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자... 그러면 정환어머님.”

헤헤거리며 바보같은 표정을 짓던 문철이 갑자기 한 순간에 굳은 표정으로 변했다. 굳었다고 해서 화가 아른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분위기에서 본인이 지을 표정은 아니였다. 정환 모친 뒤에 있던 다미는 느린 걸음으로 문철과 정환 모친 사이 옆자리로 가 섰다. 둘 모두의 표정을 보려는 듯이.

“이제 어머님이 사과하실 차례요. 당신 아들이 내 아내랑 그런 짓을 한거에 대해서.”

“뭐... 뭐라고?”

“당신 아들도 죄가 있지 않소. 설마 몰랐던 겁니까? 당신 아들이 내 아내랑 불륜을 저질렀다고요. 옷 벗고 할거 다하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대신 사과해야지. 안그래요?”

“갑자기 그게... 거... 거짓말이야.”

“얼씨구? 그걸 몰라서 나한테 그렇게 욕을 했었네. 그 젊은 아들이 어떤 난봉을 부렸는지를 몰라서. 저 여자한테 한 번 물어보쇼.”

“무.. 무슨...”

“신부님. 사과해야된다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면서요? 왜 내 죄만 잘못을 빌고 그놈 죄는 모른척 넘어가는데요?”

“문철씨...”

아담이 대책없이 막아보려고 했지만 끼어들 틈이 없었다.

“사과해!”

문철의 큰 소리에 성당 내부가 울렸고 정환의 어미가 떨리는 두 눈, 그 밑으로 떨어지는 눈물과 입술의 떨림으로 소리내는 분노가 후렴구를 이루었다.

“난 못해. 당신 지옥갈거야.”

그렇게 용서를 청하지 않고 돌아서서 성당을 나가버렸고 남편이 그 뒤를 급하게 따라갔다. 문철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듯 혼자 소리 질러댔다.

“어디가서 하느님 믿는다고 하지 마쇼!”     






성모마리아상이 있는 식탁에서 삼인분의 식사가 먹어지고 있었다. 어떤 식사는 그냥 씹혀졌고 어떤 식사는 잘근잘근 씹혀졌고 어떤 식사는 부드럽게 씹히는 듯 씹혀지지 않았다.

“앞으로 내 허락없이 나가지 말아라. 앞으로 안그런다고 했잖아?”

가만히 먹고만 있을 수 없던 아담이 먼저 말을 꺼냈다.

“도둑질을 안한다고 했었죠. 안나가겠다고는 안했는데요.”

“안다미!”

“제가 뭘 잘못했죠? 허락받지 않고 나갔지만 결국 저 때문에 문철아저씨가 돌아왔잖아요.”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그럼 누가 상관해요? 보니까 아무도 도움이 안되던데요. 잘나신 하느님이 상관하시나요?”

“앞으로 마을 밖으로 나가지 마. 또 어기면 방에 가둬놓을줄 알아. 알겠어?” 아담이 손가락질로 위협하며 말했다.

“알았어요.”

“하느님께 맹세해라.”

“마태복음 말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땅으로도 하지 말라. 십계명에도 나오는데요.”


숟가락으로 음악을 지휘하듯 말하는 다미를 보면서 현석은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다. 정확히 가장 두려운 것은 아버지가 다미 때문에 분노하여 이상한 행동을 할까 가장 무서웠다. 늘 잘 참아온 아버지였지만 요즘 들어 매우 힘들어보였다. ‘한계에 다다른 인간의 고통이 저런 모습일까?’ 어떤 것이 영원한 것이라는 생각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기 전에 미숙한 판단으로 생겨난 것이다. 굳세고 의롭고 슬기로운 사제의 모습은 여기까지일 수 있다. 현석은 도저히 그걸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끼어들 용기는 그 생각조차 없었다.

“그만하고 밥 먹자.”

이따 구마시간에 보자는 말을 현석도 다미도 알아들었다.     



인간계에 절대악은 있지만 절대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하느님께 의존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자신의 위선을 진실된 선으로 바꾸려하고 자신의 악에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아담은 이 생각으로 자신 내부에서 무너져가려는 선을 지탱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살려달라는 사적인 간절함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다미가 들어왔다. 알아서 십자가 모양으로 누웠고 막상 다미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차분해진 아담이 다미의 팔다리를 묶었다.

“인 노미네 파트리스 엣 필리 엣 스피리투스 상티. 아멘.”

다미의 눈이 무거운 듯 감기고 있었다. 스스로 눈을 떠보지만 다시 감기고 졸음을 이기지 못한채 쓰러졌다. 홀로 기도하고 있는 아담은 적의 침묵으로 인한 편한 고독함을 느꼈다. 

“하느님. 이 아이를 구원하소서. 사탄의 교만함으로 깨어나 사탄의 교활함으로 죄를 짓는 이 아이의 영혼을 하느님께서 정화시켜주소서. 사악한 악마를 지옥에 보내소서.”

아담은 성수Ⅰ병에 묵주의 십자가 부분을 담갔다 뺀 뒤 그 십자가를 아담의 이마에 올려놓았다.

“주님이 오셨도다. 사악한 악마는 눈을 떠라.”

여행길과 아침의 장면 연출에 피곤했는지 다미는 잠들어 자고 있었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고 경찰이 와서 문철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있었다. 문철은 상관없다는 듯이 비실비실 웃고있었고 온 마을 사람들이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아내 영은이었지만 특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허망하게 보고 있었다. ‘돌아오지마, 제발. 내 인생에서 없던 사람인 것처럼 되어줘.’ 문철을 태운 경찰차는 조용히 마을을 빠져 나가기 위해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운행하고 있었다. 조그만 마을에 가끔 오는 경찰차는 현재 이 차 한 대뿐이라 모두가 그 차번호를 외우고 있었고 마을 사람처럼 여겨지던 저 차에 죄를 실어보내는 기분은 마을 사람 모두의 기분을 좋지 않게 했다. 며칠 전에 저 경찰차를 먼저 만난 사람을 제외하고는.



조용히 가던 경찰차는 갑자기 폭발했고 한 명의 범죄자와 두 명의 경찰관은 모두 죽었다. 


그토록 증오하던 아들의 원수가 죽는 것을 무덤덤하게 지켜보던 정환 어미는 그날 밤 목숨을 끊었다.     








“아줌마. 괜찮으세요? 용서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느님도 이해하실거에요.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시잖아요. 원수를 용서하지 않고 복수한 죄조차 용서하실거에요.”

“무.. 무슨 말이야..”

“우리 아저씨는 신부님이니까 당연히 용서하라고 했겠죠. 그렇게 대답하는게 이론이니깐요.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걸요. 아줌마가 어떻게 하더라도 또 아줌마의 고해성사를 받아주실거고 성모마리아에게 용서를 빌어달라고 기도하실거에요. 아줌마는 결국 주님의 용서를 받을거고요.”

“네가 어떻게...”

“용서하지 마세요.”

“신부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실까?”

“물론이죠.”

“그럼 지금 나가서 내가 뭐라고 해야되는거냐? 다미야, 말해줘.”

“우선 용서해주세요.”

“뭐?”

“용서하지 않고 벌을 주기 위해 우선 용서해주시라고요. 벌은 제가 내일 대신 줄게요.”

“네가?”

“제가 문철아저씨를 데려왔잖아요. 저 믿죠? 내일 문철아저씨를 연행해 갈 경찰에 폭탄을 설치했어요. 제가 남모르게 모은 돈도 있고 친구도 있거든요.”

“그러면 죽인다는거야?”

“아줌마는 죄인을 용서해준 덕을 쌓고, 주님께 용서받고. 대신 저 아저씨는 벌을 받고. 저는 따로 용서받을게요.”

다미의 천사같은 미소로 나눈 대화가 주마등의 시작이었다.     

“제 말대로 됐죠? 마음이 좀 어떠세요?”

“너 정말 안들키게 설치한거 맞아?”

“그럼요. 제가 안했어요. 전 멀리서 보고만 있었고 친구가 했어요. 아줌마만 말안하면 절대 안잡혀요.”

“나 너무 무서워. 천벌받을거야.”

“제가 한건데 아줌마가 왜 천벌을 받아요?”

“알면서 모른척 했으니까!”

“아니에요. 아줌마는 은근히 내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 순간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했던거고 내 말에 위로를 받아서 용서해 줄 용기가 생긴게 다에요. 아줌마는 문철아저씨 죽음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 그럴까? 정말?”

“맞다니깐요. 그런데 그것보다 아줌마는 왜 문철아저씨에게 사과하지 않았어요?”

“어? 무슨 말을...”

“그거 알아요? 정환오빠는 저도 어떻게 해볼려고 했어요. 이 나라에 법이 없었으면 아마 강제로 겁탈했을걸요.”

“야!”

“아줌마 죄라면 그런 변태를 이 세상에 낳아놓고 나 몰라라 한거 아닐까요? 아줌마. 아저씨가 돌아가시는게 싫어요, 아니면 바람피는게 싫어요?”

“너 무슨 되먹지 못한 소리야 지금. 입 안닥쳐?”

“아줌마 성격에 분명 바람피는게 더 싫다고 할 것 같은데. 그럼 문철아저씨 죄보다 정환오빠 죄가 더 큰거 아닌가요? 그러고보니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한건가 싶네.”

그냥 죽어버리는게 어떠냐는 소녀의 목소리가 주마등의 끝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