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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Oct 16. 2020

결국 스트레스 때문에 약을 먹었다

퇴준생 보고서 10 - 직장인은 전부 약쟁이야

나는 꽤 많은 비타민을 섭취한다.

유산균(질/장), 비타민D, 오메가3, 마그네슘(칼슘 포함)에 최근에는 먹지 않는 비타민B까지. 사람들은 나더러 약쟁이라고 한다. 그렇게 약을 많이 먹으면 약 없이는 어떻게 살 거냐고. 그런데 변명하자면,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약을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 하기 전에는 말이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돈을 벌자 쇼핑 목록의 분야가 넓어졌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할 때보다 수입이 많아져서(물론 이것도 쥐똥만큼이지만) 사고 싶던 것 뿐 아니라, 이제는 살 수 있는 것들도 늘어난 셈이다. 그 중에서도 예전에는 살 생각조차 안 했던 게 바로 영양제다. 영양제는 무슨? 어지간해서는 약도 잘 안 먹고, 병원도 안 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에게 있어 감기는 며칠 앓으면 낫는 병이고, 생리통은 약 한 알 먹고 버티는 병이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영양제를 사게 되었을까.

아마 비타민D 섭취의 필요성에 대해 읽고 싼 걸로 직구했던 것 같다. 처음엔 비타민D만 먹다가 이것저것 늘리면서 점점 종류가 다양해졌다. 어쩌다 먹기 시작했지만 먹다보니 확실히 효과가 느껴졌다. 피로감이 덜했고, 눈이 덜 뻑뻑했고, 질이 건강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를 본 건 칼슘(마그네슘)이었다.

먹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칼슘 부족은 우울증과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칼슘을 잘 복용해주면 우울하고 무기력한 기분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라고 생각했다. 근데 진짜로 칼슘을 먹었을 때와 먹지 않았을 때의 기분 차이가 심하게 느껴졌다.

한창 잠도 안 오고, 무기력하고, 모든 게 귀찮고, 부정적이고 우울하던 때였다. 마음이 진정되면서 규칙적인 수면패턴을 잡기 시작했다. 뭣보다 가장 컸던 건 우울감이었다. 정말로 우울감이 조금씩 해소가 되었다. 혹시라도 직장 내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은 칼슘 먹는 걸 고려해보길 추천한다.(물론 의사나 약사와의 상의를 거치길 바란다. 난 그냥 사서일 뿐이지 의사나 약사가 아니니까.)


친구가 준 스트레스 약...

그렇게 계속 해피엔딩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이 정도 영양제로는 소용이 없다.

명치가 답답하고 하루종일 골이 울린다. 한번 편두통이 시작되면 하루종일 골이 울리고 무기력증도 심하다. 한의원에 다니는 친구는 자신이 먹던 스트레스 약을 좀 나눠줬다.(우울증 약 같은 게 아니라, 명치의 답답함을 내려주는 약이라고 했다.) 뭐라도 좋으니 가슴에 묶인 매듭을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약을 먹었다.

소감은... 신기했다!

평소라면 짜증나고 명치가 답답해질만한 순간에도 나는 짜증나지 않았다. 뭐랄까, 머리로는 '아, 빡치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슴은 평온했다. 화가 나야 하는데 딱히 화가 안 났다. 전에는 누군가 던진 돌에 파도가 일었다면, 지금은 그냥 돌이 가라앉는 기분?


그제야 왜 다들 그리도 약을 먹는지 알 것 같았다.
이게 없으면 죽을 것 같아서,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버텨주지 않아서 그랬던 거다.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도, 스트레스를 푸는 취미가 있어도, 근본적으로 몸에 영양제를 때려박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몸을 케어하고, 다 쓰러져서 허물어가는 마음을 케어해야 다른 것도 할 수 있다. 이건 약에 의존하는 게 아니다.

"피지컬이 아무리 좋아도 멘탈이 무너지면 소용없다."

가짜사나이에서 교관은 말했다. 나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요즘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몸이 기본은 해 줘야 멘탈로 버틸 수 있다. 매일매일 스트레스 수치의 한계치를 찍고 사는데, 몸에 필요한 영양성분이라도 갖춰줘야 에너지를 만들어낼 거 아닌가. 그게 기브 앤 테이크지. 영양제도 안 먹고 지금의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라는 건 내 몸과 마음에 못할 짓이다.




앞으로도 쭉 영양제를 먹겠지만, 확실한 건 퇴사만큼 좋은 영양제가 없다.

지금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근본을 잘라내야 해결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정말 요즘은 단 1의 자부심이나 애사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다 때려치고 싶다. 부정적인 마음이 꽉 차 있는 덕분에 긍정적인 마음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애써 긍정의 말을 내뱉어도 흩어지는 허황된 꿈 같은 기분.

빨리 퇴사해야되는가 보다...더 열심히 쓰자는 생각이 가득한 요즘이다.

우리 모두, 몸에 영양제라도 주면서 일을 시키자.
내 몸도 최저시급은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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