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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Mar 30. 2021

당신은 당신의 회사 책상을 사랑하나요?

퇴준생 보고서 24 - 내가 일하는 곳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최대한 조용히 퇴사 준비를 하고 있다. 들뜨고 신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약간 갑갑하긴 하지만, 퇴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나날이다.

그런데 '조용히 나가는 사람'치고는 짐이 꽤 많아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보자고 조금씩 짐을 늘려왔던 나날들이여. 왜 그랬을까. 가져갈 땐 한 보따리가 될 줄도 모르고. 물론 잘 써서 사무실 생활의 질을 높여준 물건도 있지만, 의외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처박아둔 물건이 더 많았다.

중요한 점은,
그렇게 살림을 가져다 놔도 회사가 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짐을 치우는 김에 '회사에 누구나 하나쯤은 갖다 놓는 물건' TOP3을 뽑아보겠다.

1. 핸드크림
2. 텀블러
3. 탁상용 가습기

장담하는데 직장인이라면 적어도 이 중에 한 가지는 무조건 구비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죄송. 세상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사막을 가도 회사만큼 건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름에는 에어컨 지옥, 겨울에는 히터 지옥이 되어 우리의 눈과 피부와 목을 건조하게 만든다.

사진 참조 : 픽사베이

상황이 그러하니 위 세 가지 물건은 구비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나는 텀블러에 목숨을 거는 타입이었다. '물을 조금이라도 많이 마시려면 텀블러에 손이 자주 가야 한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예쁜 텀블러를 사자!'는 것이 나의 합리화 지론이었다.

변명하자면, 효과가 있었으므로 꼭 합리화는 아니다. 삭막하고 칙칙한 책상에서 내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텀블러 하나뿐이었으니까. 컵이 예뻐서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 마법이랄까.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꼭 위의 목록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좋아하거나 마음에 드는, 아끼는 물건을 회사에 가져다 놓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단순히 공간을 꾸미는 것을 넘어서 출근 후 짜증 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비기와도 같다.


회사는 직장인에게 있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그곳의 사람들을 가족보다 많이 보는 것처럼, 집보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거나 아끼는 것들로 그 공간을 꾸미려고 하기도 하고, 최대한 안락한 자리로 만들고자 갖가지 물건을 구비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편안하려고, 조금이라도 기분 좋으려고.

그러나 우습게도 회사를 편안하게 느끼려고 할수록 나는 그 공간이 불편해졌다.


사진 참조 :픽사베이

어느 순간인가부터 나는 마음에 드는 텀블러를 회사에 가져가기 아깝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잘 더듬어보니 텀블러에 흠집이 나고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좋아하는 물건에 생채기가 나니, 그곳에 좋아하는 물건을 두기 싫었다. 마음에 위안을 주려고 가져온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나 둘, 내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회사에서 치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집에서 그릇을 찾다가 찬장 한 구석에 처박아 놓은 텀블러를 발견했다. 회사에서는 그리도 애지중지하며 사용하던 물건이었는데 집에 갖다 놓으니 존재조차 잊어버린 채 여태 찬장 속에 처박혀 있던 것이었다. 심지어 뚜껑에 뽀얀 먼지까지 앉아있는 것을 보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집은 그런 노력이 없어도 늘 편안한 공간이라는 것을.

내가 회사에서 느꼈던 것은 그저 돈을 썼다는 희열일 뿐이었다는 것을.

회사라는 공간을 좋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공간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였던 것이다.


사진참조 : 픽사베이

내 집은 더럽고, 버리지 못해 쌓아 둔 물건들로 꽉 차 있고, 강아지 털과 먼지가 휘날리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집이 좋다. 더럽고 꾸미지 않은 공간이지만 편안하고 안락하다. 그 이유는 내가 그냥 집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만큼은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이 공간에서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며 온전하다. 집은 내가 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공간이고, 지친 나를 품어줄 수 있는 공간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집에서 나를 한 번도 함부로 대한 적이 없다. 집은 언제나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고,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생각나는 것을 표현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회사에서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배가 고파도 점심시간을 양보했고, 졸려도 얼음을 씹으며 깨어났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며, 생각나는 것을 숨기는 공간이었다. 회사는 내가 우선일 수 없는 공간이었다. 단순히 사회생활을 넘어서 나는 회사에서 나를 늘 함부로 대했다. 남에게 나를 맞추고 나를 깎아내렸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는 공간을 어찌 사랑할 수 있으리.




만약 내가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 위치에서 존중받았다면 그 공간을 싫어했을까?

사진참조 : 픽사베이

좋아하려고 애쓰지 않았어도 분명 그 공간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했을 것이다. 특별한 꾸밈없이도 '내가 일하는 자리'에 분명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조건은 영영 성립될 수 없었기에, 아마 어떤 물건을 가져다 놓아도 그 공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 공간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그 공간에서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하게 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갖기 위해,
나는 조용히 퇴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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