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가 나쁜가, 흉기를 만든 사람이 나쁜가

소설책 [아름다운 흉기] 리뷰

by 담작가
아름다운 흉기
줄거리

깜깜한 밤, 깊은 산속 별장에 모인 네 사람.
그들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별장에 침입했으나, 곧 별장 주인인 센도 박사에게 들통난다.
우발적으로 센도 박사를 살해하고 별장에 불을 지른 채 도망간 네 사람.
이 모든 과정을 CCTV로 지켜보던 의문의 여자.
과연 그들이 숨기고 싶었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지켜본 여자는 누구였을까?


흉기가 나쁜가, 흉기를 만든 사람이 나쁜가
숨은 의미 찾기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제목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지나칠 정도로 평범하거나, 눈을 사로잡을 정도로 튀거나.
이 차이는 같은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극명히 갈린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 내가 그를 죽였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 브루투스의 심장’ 같이 읽고 싶게 만드는 제목인가 하면 ‘호숫가 살인사건, 회랑정 살인사건’ 등 어느 도서관에 가도 한 권쯤은 꽂혀있을 만한 제목일 때도 있다.
최근에는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내면서 제목을 너무 평범하게 바꿔버리는 경향도 있다. 깔끔하길 원해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소설책 제목이 ‘미등록자, 사소한 변화’ 이러면 더 재미없어 보이는데... 왜 출판사만 그 사실을 모르는지.

아무튼 이번 책 제목은 그나마 튀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한 십 년 전쯤이었다면 튀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요즘 들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목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리 신선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책을 처음 펼칠 때와 덮을 때 보이는 제목의 의미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기>
-전쟁이나 싸움에 사용되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어떤 일을 하거나 이루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나 도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흉기>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는 데 쓰는 도구

히가시노 게이고는 굳이 제목에 ‘무기’가 아닌 ‘흉기’라는 단어를 넣었다. 단순한 기구에서 멈추지 않고 사람을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직접적인 물건이라는 뜻을 불어넣은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 소설에서 지칭하는 ‘흉기’란 타란툴라를 의미한다.

그녀의 몸은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부러워하다 못해 무서워할 정도로 완벽했다. 인위적으로 조각하여 육상에 최적화시킨 근육들. 소설은 타란툴라의 외모를 두고 아름답다는 것이 아닌,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탄탄한 근육을 두고 아름답다고 이르고 있다. 만약 타란툴라가 예정된 수순으로 육상 경기에 나갔다면, 그녀는 그저 ‘아름다움’에서 그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녀는 육상 트랙에서 벗어나, 이전과는 다른 목적을 갖게 되면서 흉기로 변질된다. 타란툴라는 ‘센도 박사를 죽인 네 사람을 똑같이 죽인다’는 분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때리거나 죽인다. 이것이야말로 흉기다.

단순히 올림픽이라는 싸움에서 이긴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땐 무기에 불과했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흉기가 된 것이다.


1등만 살아남는 사회, 이 말은 스포츠계에서는 더욱 가혹하게 적용된다.

금메달이 아니면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신기록이 아니면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도핑의 유혹에 흔들린다.

지난 19년도, 한 보디빌더의 ‘약물 고백’으로 인해 약물중독이 얼마나 만연한 일인지가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몸이 망가져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한다. 확실한 효과와 그것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성공. 누구라도 단번에 뿌리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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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센도 박사, 네 명의 스포츠 스타, 자살한 선수. 모두들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들의 욕망이 뒤엉켜 만들어낸 처참한 결과가 바로 타란툴라다.

사실상 타란툴라는 결과물에 불과하다.


이쯤에서 흉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 약물 부작용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선수, 과거 영광과 현재의 성공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했던 네 사람.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간 것은 사실 자기 자신의 욕망 때문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못된 방법을 써서라도 최고가 되고자 했던 삐뚤어진 욕망 말이다.

결국 진짜 흉기는 ‘오로지 최고만을 부르짖는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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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아름답다, 아니, 아름다워 ‘보인다’.

성공한 이들은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노력이나 열정 없이, 오로지 순위와 점수에 집착해 얻어낸 성공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최고가 되는 순간의 영광은 달콤할지언정, 그 이후의 삶은 무료하다. 마치 큰 자극에 익숙해지면 작은 자극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처럼, 최고가 아닌 삶을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과연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되어야 할까?

선수들에게 도핑을 권유했던 건 센도 박사였다. 자신이 최고로 만들어준다는 유혹을 하면서, 자신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들이 이런 욕망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은 과연 누구일까? 그 책임은 사회에 있다. 1등이 아니면 안 되는 사회, 최고가 되어야만 인정받는 사회, 그렇게 살아남아야 성공하는 사회.

최고가 되고자 잘못된 방법을 택한 자들이 흉기라면, 이 흉기를 만들어낸 공장은 이러한 사회이다.

잘못된 인재를 배출해내는 이 사회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위의 보디빌더는 ‘보디빌더 대회 자체가 약물에 손을 대지 않고는 입상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몸은 결국 약물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심사위원들 역시 보디빌더가 약물에 손을 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보디빌더계에서는 선수의 90%가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 정말 개인이 만들었단 말인가?


우리는 ‘최고’와 ‘성공’만이 아름답다는 세뇌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가 만든 구조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써야만, 그리하여 그 집착으로부터 깨어나야만 잘못된 사회 구조를 깨부술 수 있다.

그렇게 잘못된 구조가 무너졌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올바른 경쟁의 의미를 새길 수 있을 것이다.


타란툴라의 눈물
감상평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타란툴라의 본명은 뭔데?”

책을 펼칠 때부터 덮을 때까지, 작중에서 타란툴라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저 ‘여자’ 혹은 ‘타란툴라’, 그것도 아니면 ‘외국인’ 정도로 불리었을 뿐이다. 과연 그녀에게 이름이란 게 있기는 했을지 의문이다. 이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센도 박사가 그녀를 이름으로 불렀을까. 어차피 센도 박사에게 타탄 툴라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기 실험에 사용된 실험용 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았을까.


이런 취급에도 불구하고 센도 박사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타란툴라의 모습은 헌신적이기까지 하다. 그녀가 그렇게 헌신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센도 박사가 바로 수없이 유산해온 아이들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또 다른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 줄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센도 박사를 향한 그녀의 마음이 사랑이었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아이를 위한 기브 앤 테이크였을 뿐. 그러니까 그녀가 복수한 이유는 센도 박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였던 셈이다.

타란툴라는 센도 박사의 죽음으로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삶의 이유를 잃은 거나 다름없다. 그 사실이 소름 돋을 정도로 불쾌하면서도 짠했다.


책 표지는 마치 얼굴을 클로즈업한 것처럼 보인다.
볼 위로 써진 글자가 타란툴라의 눈물처럼 보인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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