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용의자 X] 리뷰
용의자 X
줄거리
조카 윤아와 단둘이 사는 화선, 그리고 옆집에 사는 석고.
서로가 서로에게 평화롭고 단조로운 이웃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화선의 전남편이 집에 들이닥친다.
폭력을 휘두르며 윤아와 화선을 위협하던 전남편을 제압하려다가 두 사람은 그만 그를 살해하고 만다.
그 사실을 모두 듣고 있던 석고는 옆집 문을 두드리고는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말하는데...
증명은 답이 아니라 풀이 과정이다
숨은 의미 찾기
석고는 수학에 미친 사람이다. 한 때는 천재 수학자가 될 거라는 기대도 한 몸에 받았지만, 현실은 그저 무시받는 수학 선생님일 뿐. 끝내 난제를 증명하지 못한 석고는 자신의 삶이 부정당했다고 생각한다. 의미 없는 삶을 끝내려는 찰나, 그는 새로운 난제를 마주치게 된다. 바로 화선.
자신을 살게 했던 유일한 이유는 수학이었다. 화선을 만나기 전까지. 수학에 의해 살아가던 석고는 죽고, 석고는 화선에 의해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역시 난제는 난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도,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본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 난제는 풀지 못해도 그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네가 참이라고 생각하면 참인 거지."
"증명하지 않으면 진실이 아니야."
학생 때, 수학시험을 볼 때마다 골머리를 앓던 게 늘 '식'이었다. 선생님들은 풀이과정을 강조했다. 답만 적은 것은 부분점수일 뿐이라고. 식이 있어야 완벽한 풀이라고. 석고는 수학 선생님답게 지독한 풀이과정 중독자이다. 자신이 아무리 참이라고 믿어도 그것이 참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것은 참이 아니다.
반면, 민범은 느낌적으로 답을 찍어 맞추고 '내가 답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라고 치부하는 타입이다. 그러니 석고가 낸 문제를 푸는 입장인 민범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답이라도, 그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답으로 인정받을 수 없으니까. 사실상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 참을 증명할 증거가 있어야만 참이 성립된다.
이 지점에서 원작과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민범은 원작에서 교수로, 천재 수학자에 대적하는 천재 물리학자로 나온다. 작품 전체적으로 천재들의 대결이라는 분위기가 도드라지고, 석고가 낸 문제를 민범이 풀이하는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민범의 역할을 배제함으로써 석고의 감정선에 집중한다. 원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작품이 된 결정적 계기다.
앞서 석고에게 화선은 '난제'라고 말했다. 화선이 난제라면 석고는 수학자다. 수학자는 자신만의 접근법으로 난제에 대한 증명을 제시한다. 이 영화는 난제를 증명하는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난제와 수학자의 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표현해낸다.
그러나 그가 간과했던 것은, 자신이 난제를 증명함으로써 입장이 뒤바뀌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가 화선이라는 난제를 증명한 순간, 석고는 난제로, 화선은 수학자로 변한다. 오히려 화선이 석고라는 난제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여기에서 민범이 큰 역할을 한다. 화선을 속이고 싶었던 석고의 뜻과 달리, 결국 화선은 진실을 깨닫게 된다. 화선은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어떻게 증명해낼까. 영화는 닫힌 결말처럼 보이지만, 화선이 트릭을 알게 됨으로써 열린 결말이 된다.
비록 석고의 풀이과정은 잔혹했지만, 그에 응당한 책임을 짐으로써 답을 내놓는다. 다른 답안도 있었겠지만, 그는 해당 답안을 위한 풀이과정을 작성했다. 그렇다면 이제 화선은 어떤 풀이과정과 답을 내놓을까?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난제에 부딪힌다. 때론 겁에 질려 도망가기도 하고,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쉽사리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끝까지 매달려 증명해보았느냐이다. 사실 답은 중요하지 않다. 인생에서 만나는 난제는 수학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풀이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는 난제에 부딪혔을 때, 정답만을 고민한다.
그러나 정답이 아닌 풀이과정에 좀 더 집중한다면
그것은 보다 아름다운 증명이 될 것이다.
오래 남는 작품
감상평
세월이 오래 지난 작품이지만, 여전히 인기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명하다. 수학밖에 모르는 수학 바보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라니. 히가시노야말로 이과적 발상으로 이토록 사람의 감정을 애끓게 하는 천재다.
원작과는 살짝 다른 점이 독이 될 수 있었는데, 다른 매력을 더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간 것 같아 재밌었다. 매우 한국적이고, 민범이라는 인물을 심하게 각색하긴 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망가졌다면 크게 분노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를 한국에서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잘 팔린 작품이다. 나는 유명해지기 전에 읽었는데, 그때 받았던 신선한 충격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가슴에 묶여있던 매듭이 사라락 풀리면서 헉, 하는 느낌. 그 충격 때문에 여기저기 추천을 하고 다녔더랬다. 지금은 읽은 지 한참 되어서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래서인지 원작을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