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원하면 달에 갈 수 있다

넷플릭스 [히든 피겨스] 리뷰

by 담작가
히든 피겨스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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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 일하는 세 사람.

캐서린 고블, 메리 잭슨, 도로시 본.

그들을 흑인인 데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당하지만,

자신들에게 내재된 능력과 가능성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애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위대한 세 사람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누구나 달에 갈 수 있다
숨은 의미 찾기

“내 마음속에선 이미 달에 가 있어. 자네도 그런가?”

사진 참조 : 다음 영화

캐서린이 우주임무 그룹에 배정받아 근무하게 된 첫날. 우주임무 그룹 부장 ‘알 해리슨’은 캐서린에게 말한다. 캐서린은 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이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찝찝하다.

“엄마도 우주에 나가?”

“아니,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용감한 분들이 나가도록 도울 거야.”

그의 앞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캐서린은 딸들에게 털어놓는다.

해리슨의 질문에는 캐서린이 있을 자리가 없다. 자신은 달에 가 있지만, 캐서린과 함께 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철저히 너와 나를 분리한 채 묻는 질문에 캐서린이 엉거주춤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래서이다. 해리슨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것이었겠지만,

캐서린은 이 말에서 ‘자신은 영원히 우주로 나갈 수 없음’을 선고받는다.

“엄마도 우주로 날아갈 수 있어. 우주 비행사처럼.”

그러나 캐서린의 딸만큼은 엄마의 비행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도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사 밖에서 바라보는 시각, 어린 아이이 시점으로 볼 때는 해리슨과 캐서린은 똑같은 나사 직원이다. 그러니 캐서린이라고 우주에 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시민권 쟁취의 길은 고상하지만은 않아.”

그러나 어른들의 시선은 냉혹하다.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학위를 따겠다는 메리에게 남편은 말한다. 자유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며. 나사는 절대 ‘흑인 여자 엔지니어’를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메리의 남편만 그런 게 아니다. 캐서린이 나사에서 로켓 이착륙에 필요한 계산을 한다는 말을 들은 짐은 무심코 말을 내뱉는다.

“거기(나사)에선 여자에게도 그런 일을...”

사진 참조 : 다음 영화

피부색으로 차별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같은 흑인에게조차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그들. 그녀들은 뛰어난 영재로 인정받을 만큼 능력이 있지만, 인정받지 못한다. 그 길을 막는 것은 단순히 백인이 아니다. 같은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안 될 것이란 생각, 해봤자 헛수고라는 생각, 그래 봤자 상처만 받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거란 생각들이 모여 그녀들을 짓누른다.

영화에선 계속해서 흑인들에 대한 범죄 뉴스 보도 혹은 흑인들이 백인 경찰 앞에서 투쟁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당시 버지니아는 여전히 분리 정책이 통용되고 있는 곳이었다. 지금도 차별이 심한데, 그 때라고 오죽했을까. 그런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 그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는 모습을 그녀들의 모습과 교차로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녀들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끊임없이 나사 속 차별의 문을 부수려는 행보 역시
투쟁의 일부라는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캐서린은 짐에게 이렇게 쏘아붙이고 뒤돌아선다.

“네, 나사에서는 여자에게도 일을 시킨답니다.

우리가 치마를 입고 있어서가 아니라, 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죠.”




결국 자신의 가치를 올리고,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로 마음먹은 그녀들.

사진 참조 : 다음 영화

도로시는 도서관에서 찾는 책이 유색인종 코너에 없어서 백인 코너로 가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책이 없으면 그러려니 하라는 백인 여성의 말 한마디에 두 아들과 도로시는 도서관에서 쫓겨나고 만다.

메리는 엔지니어 수업을 듣기 위해 백인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정식 소송을 건다. 재판이 열린 날, 재판장은 그녀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는 왜 흑인 여성이 백인 학교에 가려는 거냐며 핀잔을 준다.

수석 엔지니어 폴 스탠퍼드는 캐서린을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해리슨은 무조건 계산을 캐서린에게 검토받으라고 했지만, 폴은 데이터의 반을 기밀이라는 핑계로 지우고는 캐서린에게 대충 계산하는 척이나 하라고 말한다.

그들은 정보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늘 저지당한다.

어떤 정보는 흑인에게, 여자에게 절대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첫째, 이런 정보는 흑인 여성인 너희가 봐도 모를 것이라는 것, 둘째는 흑인이자 여성인 너희들은 영원히 알아서도 안 된다는 게 그 이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백인 혹은 남성에게만 주어진 특혜를 뺏길 수 없다는 것이겠지.

철저히 분리되고 폐쇄된 그 정보의 출입문을 그녀들을 결국 열고야 만다.

도로시는 결국 책 한 권을 몰래 가지고 나와 프로그래머 공부를 시작하고, 메리는 호소력 있는 말로 재판장에게 결국 야간 학교를 등록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아낸다. 캐서린은 전등에 비춰본 것을 바탕으로 다음 로켓의 이름과 계산을 정확하게 해낸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해리슨의 물음에 캐서린은 답한다.

“그 너머를 본 거죠.”

진실은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 가려지지 않는다.
검게 칠한 펜 너머라도 보고자 하면 얼마든 볼 수 있다.




그 시각, 나사 곳곳에서도 편견과 차별이 철폐되기 시작한다. 거대한 IBM기계를 들이는데 문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결국 기계를 방 안에 들일 방법은 문을 부수는 것뿐이다. '부수지 말까요?' 직원의 말에, 해리슨은 답한다.

“아니, 아니야. 괜찮아, 계속해. 아예 해머로 부숴버려.”

이 장면은 언뜻 지나가면 그저 기계를 들이는데 일어난 해프닝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망치로 문을 부수는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줌으로써, 거대한 장벽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린다. 일종의 신호탄인 것이다. 문을 넓힌 결과, 도로시는 문 안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고, 기계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화장실이 너무 멀어 하루에 40분씩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캐서린의 울분 섞인 토로에 해리슨은 화장실에 달린 명패를 부숴버린다. 아무 데나 자리에서 가까운 화장실을 이용하라며, 백인 화장실도 유색인종 화장실도 없다는 말과 함께 해리슨은 덧붙인다.

“나사에선 모두가 같은 색 소변을 본다.”

0c68d471b024867f0dff679a434f990dcef4a6ae 사진 참조 : 다음 영화

일련의 사건을 통해 해리슨은 언뜻 알게 된다. 캐서린을 비롯한 흑인 여성들 역시 재능 있고, 의지가 있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을. 캐서린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후에도 여전히 그녀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폴에게 해리슨은 말한다.

“함께 오르지 않으면 정상엔 못 올라가.”




프렌드쉽 7호를 쏘아 올리기 직전, IBM이 계산한 착륙지점에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된 해리슨. 프렌드쉽 7호에 탑승할 우주인 존 글렌은 브리핑 때 보았던 캐서린의 어마 무시한 계산능력을 떠올리고는 그녀에게 계산을 맡길 것을 요구한다. 캐서린은 계산을 정확하게 해내지만, 실시간으로 우주선과 교신을 하는 교류실의 문은 그녀의 눈앞에서 닫히고 만다. 그러나 해리슨 부장은 문을 열고 캐서린을 들여보낸다.

결국 존 글렌과 우주선이 무사히 착륙하고, 해리슨은 캐서린을 보며 다시 한번 묻는다.

“우리가 달에 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 물음에 캐서린은 드디어 씩 웃으며 답할 수 있게 된다.

“우린 이미 달에 가 있어요.”


씁쓸함이 단단함이 되기까지
감상평

이 작품엔 사실 ‘숨은 의미’랄 게 없다. 흑인 여성이 나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과정이라는 내용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 이상의 설명이 뭐 필요하겠나. 구구절절 써놓은 위의 글은 사실 사소한 것들이다. 이 영화의 내용이 실화라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한데 말이다.


다만, 영화를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이 두 가지가 있다.

사진 참조 : 다음 영화

하나는 메리가 재판장에게 호소하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똑 부러지게 자기가 할 말을 하며, 권위의식에 절어 자아도취해 있는 재판장을 구워삶아먹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백인 여성이었다면, 적어도 흑인 남성이었다면 그것보단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째는 미첼이 도로시가 IBM 기계실 주임직을 달고 나서야 ‘본 씨’라고 예우를 갖춰 부르는 장면이었다.

미첼은 영화 내내 도로시를 이름으로 낮춰 부른다. 왜 자신의 주임 신청이 기각되냐는 도로시의 물음에 ‘묻지도 않았다’며 비웃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도로시.(끝까지 이름 부르면서) 어떻게 생각할진 몰라도 난 자기한테 악감정 없어.”

“알아요. 본인은 그렇다고 생각하겠죠.”

도로시는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이미 낮춰 부르는 그 행위에서부터 자신과 상대 간의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면 다인가? 그랬던 미첼이 결국 도로시가 인정받으니 예우를 갖추는 장면은, 메리의 장면과 같이 씁쓸했다.


같은 혹은 최소한의 기회라도 얻기 위해
약자는 보통 사람의 두 배, 그 이상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영화는 그 사실을 이 두 가지 장면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마냥 씁쓸하지만은 않다. 결국 메리와 도로시가 해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멈추지만 않는다면 결국엔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같은 여자이지만 백인 중에서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잖은가? 메리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가 됐고, 도로시는 후에 미첼이 데려온 백인 여성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는 포스터의 말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오랜만에 아주 단단한 영화를 본 기분이다.

도로시 본 역을 맡았던 옥타비아 스펜서가 나오는 영화 ‘헬프’도 전에 넷플릭스에서 내려가기 전에 봤는데, 아직 리뷰를 안 썼다. 이제 그 영화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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