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인생

소설 [빅 픽처] 리뷰

by 담작가
빅 픽처
줄거리

사진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결국 변호사가 된 ‘벤’.

삶에 대해 회의적인 탓에 아내인 ‘베스’와의 사이가 틀어진지는 오래다. 둘이 함께 사는 이유는 오로지 두 아들 때문.

그러던 어느 날, 베스가 이웃집의 거만한 사진가 ‘개리’와 불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개리를 찾아간 벤은 그만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고 마는데...


어쩌다 인생
숨은 의미 찾기
내가 아닌 삶은 어떤 것일까?
그전에 대체 나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나’를 정의하는 일일 것이다. 한낱 이름과 나이, 성격과 직업 따위로 정말 한 인간을 정의할 수 있을까? 가끔 살아가다 보면 이 모든 게 부질없어 보일 뿐이다. 사회 속에서 구성된 인간의 속성은, 사회 구성원과 치밀한 관계 속에서 태어나는 결과물에 불과하다. 다만, 모든 것을 벗겨내고 남은 맨 몸의 나는 누구인지, 그것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작가는 이런 고민을 180도 뒤집어 생각하게 만든다. 아예 나를 정의할 수 없게, 그나마 붙잡고 있던 밧줄마저 끊어버리는 것이다. 벤은 더 이상 자신으로 살 수 없다. 평생 남 흉내를 내며 살아야 한다. 그제야 인간은 깨닫는 것이다. 내가 보잘것없고, 부질없다고 느꼈던 것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쌓아온 ‘나’의 일부였다는 것을 말이다.


벤이 개리를 죽이고 도망 다니며 깨달은 것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자신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은 어제는 이제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점.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는 것. 벤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편한 길을 택한 자신을 경멸한다. 부모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온 나날들을 부정하고자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자조적인 시선이 아내의 마음을 떠나게 했고, 자기 자신마저 죽여버리게 되었다.

떠나간 것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갖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느라 내가 쥐고 있는 현재를 무시한다면 미래는 가질 수 없다.

작가는 이런 섬뜩한 사실을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게 풀어낸다. 실제로 살인, 위조, 사기 등등. 주인공이 엄청난 범죄행각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 소설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우습게 다뤄버리는 블랙 코미디처럼. 소설 자체가 벤의 성격처럼 자조적이다. 꾸역꾸역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마치 독자에게 거울을 비춰주는 듯하다.


백 명의 인간이 있다면, 백 개의 길이 있을 것이다.

각자 걸어가는 삶의 경로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처음 의도했던 대로 길을 걷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완벽하게 해내는 인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애초에 태어남 자체가 자신의 선택과 계획이 아니듯이. 만약 신이 있다면, 인간의 태어남은 악의적인 장난이 아닐까 싶다.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길로 걸어가기 마련이니까. 이렇듯 우리는 모두 ‘어쩌다 보니’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쩌다 살게 된 인생은 의미가 없는 걸까?


우리는 어쩌다 맞닥뜨린 상황에 매번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게 되었지만, 이 삶은 결국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 것도 자신의 몫이나, 벤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늘 경멸하고 혐오해왔다. 그 결과는 개리를 죽이는 선택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질투. 물론 개리도 옳지 않았지만, 벤도 옳지 않았다. 이 소설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저 인간은 모두 똑같다는 대전제 하나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동안 ‘희망을 주기 위한’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희망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이란 불공평하고 매정하며 무안한 것이다. 오늘이 산산조각 나서 더 이상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을 때, 내가 간절히 바랐던 어제는 벌써 흘러가 버린 지 오래다. 당신은 지금 삶에 만족하는가?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 보잘것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버티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왕 살 거니까
감상평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에 써 놓았던 리뷰인데, 살짝 다듬고 정리해서 올려 보았다. 블로그에는 이미 예전에 올라간 것이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읽을 수 있었다. 소설 분위기가 유쾌하고 가벼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다 읽고 돌아보면 무척이나 암울한 소설. 반려자와 불륜을 저지른 사람을 홧김에 죽였다. 여기서부터 끔찍한 현실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 이성적이고 차분하려 애써서 내린 결론도 무척이나 암울하다. 내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못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지.


문득 얼마 전에 올렸던 ‘심판’이 생각났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삶을 구축해간다는 건, 참으로 비합리적이다. 의지가 늘 옳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고작이다. 예전에는 이 생각을 하다 보면 많이 암울해졌다. 내 존재 자체가 의미 없어 보여서. 그래도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몸짓이라면, 이왕 살 거 후회하지 않는 쪽으로 걸어보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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