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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May 06. 2021

11년 견집사, 기록을 결심하다

오나개 1화 - 개의 시간은 집사보다 빠르다

개 한 마리가 옆구리를 파고든다.

이건 모모, 눈을 감고도 안다. 모모는 사람이 누워 있든 앉아있든 사람 몸에 붙어서 자야만 한다. 그 감촉에 잠이 깨면 ‘콩이는?’하는 생각이 스친다. 콩은 지켜보지 않으면 문지방에 낀 먼지도 핥아먹는지라 늘 살펴야 한다. 아찔한 생각에 고개를 돌리면 콩이 발이 보인다. 콩이는 늘 사람과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뉘고 잔다.

왼쪽부터 모모, 콩 / 11세 / 암컷/ 요크셔테리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콩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내가 머리를 만져주면 다시 긴장을 풀고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잠에 든다. 그 사이 내가 몸을 뒤척인 게 마뜩잖은 모모는 자리를 옮겨 내 발목에 머리를 배고 내 허벅다리에 엉덩이를 뉘인다.

가족 모두 일을 나간 아침, 아침밥을 먹고 배부른 개님들은 백수의 침대를 찾는다. 개 집이 두 개나 있는데도, 잠을 잘 때면 항상 사람 옆에 눕는다. 그렇게 두 마리 모두 안전히(?) 내 옆에 있는 걸 확인하면, (이쯤 되면 개가 아니라 사람이 분리불안증을 앓는 수준이다.) 잠이 다 깼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내가 일어나면 개님들이 언짢아하시기 때문이다. 개가 조금 더 자게 내버려 두자는 핑계로 침대에서 뒹굴거리기.

퇴사 후에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소소한 기쁨이랄까.




나는 견집사다. 올해로 11살 잡수신 모모와 콩, 두 마리의 요크셔테리어를 모시고 산다.

알다시피 개의 나이는 인간과는 다르다. 우리 개들의 나이를 환산해보면 60살이다. 물론 백세 시대 인간에게 60이란 나이는 이제 그리 큰 나이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적은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반 세기 하고도 강산이 한 번 더 바뀔 시간이다. 개는 조금, 아니 많이 억울할 것 같다. 집사와 똑같이 11년을 살았는데도, 본인만 빨리 늙어버린다면 말이다.

모든 생명은 천천히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죽음 앞에선 어색하고 당혹스럽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겪은 첫 죽음의 경험은 우리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방학을 며칠 앞둔 추운 겨울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학생 때는 자주 찾아뵙지 못했지만, 어릴 적 나를 키워주시다시피 하셨던 외할아버지였다. 전화를 끊고 갑작스레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장례식을 치르는 3일 내내, 할아버지를 납골당에 안치하는 순간까지도 코가 시릴 만큼 울었다.

물론 외할아버지의 부재는 익숙해졌다. 할아버지를 생각해도 울지 않았고, 할아버지가 없는 할아버지의 방에서도 가족들끼리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죽음은 천천히 스며들었다. 할아버지를 잊어버리진 않았지만, 이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개가 죽으면 아무렇지 않게 되는데 얼마나 걸릴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할아버지와는 같이 살지도 않았을뿐더러, 추억도 어릴 때가 전부라서 또렷하지 않다. 그런데도 며칠을 울만큼 슬펐다. 그럼 식탁 위아래에서 같이 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자고, 한 집에서 살았던 개들이 죽으면 대체 얼마나 슬플까. 모모와 콩이가 죽으면 매일 현관문을 열 때마다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짖으면서 뛰쳐나오는 개가 없으니까.

내가 아무리 슬퍼도 개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거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때가 되면 개에게 더 좋은 음식을 주지 못해서, 더 좋은 곳에 데려가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후회할지도 모른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쓰다듬고 싶어서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그때 고작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개를 추억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럼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할까. 어떤 기록이라야 세세하고 또렷하고 구체적으로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개의 일상을 글로 기록하기로 했다.

글은 내가 가장 잘 기록할 수 있는 방식이므로. 이 글은 때로 개와 함께한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가 될 수도 있고, 개의 일상을 상세히 적는 관찰일지가 될 수도 있고, 개에게 보내는 편지가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개에 대한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싹싹 그러모아 담아낼 것이란 점이다. 글 속에 모모와 콩의 모든 시간이 온전히 담길 수 있도록.

이건 아주 특별한 개들의 아주 평범한 집사가 쓰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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