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개 2화 - 나는 신발이 없어, 그래서 걸을 수가 난 없어
모모한테 물린 순간 너무 아파서 손을 잡아당기는 실수를 했다. 우리 집 개님들, 아니, (콩이는 집사를 절대 물지 않는다) 모모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에 집사를 콱 물어버린다. 그때 물고 나서 금방 후회하고 입을 떼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때 물린 부위를 빼려고 하면 모모가 당황해서 더 세게 물어버린다.
하필 물려도 손톱 주변을 물리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손을 잡아 뺐다. 손톱 밑에 살이 살짝 째져서 피가 났다. 물린 부위가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심장이 손가락에서 뛰는 느낌이었다.
모모는 눈치를 보면서도 계속 화를 냈고, 콩이는 모모더러 조용히 하라고 짖었다. 나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완전 아비규환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동생은 모모의 발에 손을 뻗다가 손을 물리고 있었다.
개를 화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신발을 벗기려던 것뿐이었다.
우리 집 개님들은 사람 언어로 '매우 동안'이다. 이제 슬슬 배나 귀 안쪽에 검버섯이 보이는 걸 보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생긴 건 아기 같다. 더군다나 나이를 먹어도 어째 점잖아지기는 커녕, 날뛰느라 바쁘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도무지 11살처럼 뵈지 않는다. 몸집 작은 개들이 마구 뛰어다니니, 스쳐가며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직 아기 강아지처럼 보일 수밖에.
오죽했으면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개들이 예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분은 갑자기 나를 붙들어 세우고는 느닷없이 자기 강아지 얘기를 꺼냈다. 횡설수설하던 걸 정리해보면, 3개월 된 강아지를 키우는데 밥을 줘도 울고, 특히 밤에 자꾸 운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순간 나는 내가 강형욱 씨라도 된 줄 알았다. 예정에 없던 길거리 상담에 난 차분히 대답했다.
"저희 집 개들은 11살이라서, 아기들은 잘 모르겠는데요...^^"
"어머머? 얘들이 11살이나 됐다고요? 나는 하도 조그맣길래 애긴 줄 알았네~"
이해한다. 비숑이나 푸들같이 다리도 길쭉하고 금방 몸집이 커지는 견종에 비해 요크셔는 작은 편이니까. 아마 강아지가 우리 개와 몸집이 비슷해서 물어본 것이리라. 특히 모모는 오해할 만도 하다. 워낙 뼈가 가늘고 덩치 자체가 작으니까. 예전에는 콩이와 모모를 부모 자식 간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모모가 살이 쪄서 콩이와 몸집이 비슷해졌다. 그런데 몸무게에 비해 다리는 여전히 가느다란 편이다. 툭하면 '두 발 자유화'를 시전 하는 모모를 두고 가족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비대해진 몸을 관절이 견뎌줄까 싶어서. 결국 모모의 체중감량을 위해 매일 산책을 하기로 결심했다.
콩이는 젤리도 두툼하고 발목도 두꺼운 편이라 어지간한 소형견 전용 신발이 얼추 맞는다. 그러나 모모는 젤리도 얇고 살점이 없는 데다가, 앞서 말했듯 다리가 가늘어서 아무리 찍찍이로 고정을 해도 흘러내렸다. 아무리 소형견이라도 저마다 다 특징이 다른 법인데, 어찌 신발 사이즈는 그리도 천편일률적인지.
그렇다고 맨발로 걷기엔 연약한 젤리가 신경 쓰였다. 맨발 산책에 피를 본 경험도 있고, 걷고 나면 굳은 살도 박히는 바람에 집사들은 눈 빠지게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렇게 찾아낸 게 바로 '산책용 붕대'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료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압박 붕대인데, 산책할 때 간편하게 발에 감아주기만 하면 끝이라는 것.
발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다니!
모모에게 딱 좋은 신발이 아닌가. 기대를 품고 냉큼 구매를 했다. 물건을 받아 며칠 사용해본 결과... 우리는 다른 신발을 사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신기기 힘들다.
-평소 얌전한 강아지면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집 개님들은 워낙 똥꼬 발랄해서... 붕대를 말기 위해서는 네 발이 다 보여야 하기 때문에 무릎을 산처럼 세우고 개를 눕혀서 배를 보이게 하는 수밖에 없다. 개들이 그런 자세를 싫어해서 뒤를 잘 받쳐주지 않으면 버둥거리기도 하고, 산책 가는 걸 눈치라도 채는 날엔 다리를 휘적거리는 탓에 신기기 매우 힘들었다.
2. 꽉 매지 않으면 잘 풀린다.
-정말 압박 붕대처럼 세게 둘러야 한다. 특별히 접착제가 발라진 게 아니라, 제품이 자기들끼리만 붙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살이나 털에는 달라붙지 않는다. 모모는 처음 붕대를 감은 날, 나가서 열 걸음 만에 한쪽 발에서 붕대가 튕겨 나왔다. 산책이 끝날 즈음엔 네 발 모두 맨발이었고.
처음부터 단단히 고정을 하고 두껍게 여러 겹을 둘러줘야 한다. 그냥 신기는 것도 힘든데, 꽁꽁 싸매기까지 해야 한다니. 뭣보다 세게 두르다 보면 통풍은 될까 싶다. 그렇다고 마음 약해져 살살 두르면 나가자마자 벗겨지고, 환장할 노릇이다.
3. 벗길 때 너무 힘들다.
-콩이는 다른 후기들처럼 잘만 벗겨졌지만, 모모는 그렇지 않았다. 발바닥이 쓸리면서 까지는 면이 생기고, 벗길 때 그 부분이 휘리릭 벗겨지지 않고 끈적이면서 끊어진다. 그러면 박스 테이프처럼 끝이 어딘지 찾을 수가 없게 되고, 빨리 벗기지 못해 발을 붙들게 된다. 평소에도 가뜩이나 엄살이 심한 모모는 산책을 더 하지 못한 울분을 여기에서 발산한다. 건드리지 말라고 화를 내는데, 안 벗기고 집에 들일 수도 없고. 살짝 다리라도 잡아당기면 난리가 난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제품을 비방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른 집 개들에게는 더 즐거운 산책시간을 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콩이는 그럭저럭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붕대를 벗기다가 피까지 보고 나니, 모모한테는 앞으로도 도저히 사용할 자신이 없어졌다. 기분 좋게 산책하고 와서 핏빛 싸움이라니...
글을 쓰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냥 걸어도 문제없는데 괜한 걱정을 하나?'
개가 싫어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하는 현타가 온다. 그것도 돈까지 써가면서. 개 좋자고 산책을 하면서 사람 좋자고 신발 신기는 건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인 거 아닌가. 사람이 신발 신는다고 개도 신발을 신겨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기적인 건 아닐까. 어쩌면 신발 신긴다고 개와 아등바등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밖에 나가 있는 게 개를 위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