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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May 23. 2021

개에게 인간의 거리는 낯설다

오나개 3화 - 산책이 익숙해지는데 걸리는 시간

"하이, 빅스비~ 오늘 미세먼지 알려줘!"
"오늘 미세먼지는 좋음이에요."

요즘 아침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질문은 늘 똑같다. 오늘 날씨, 오늘 미세먼지. 제일 중요한 것은 비가 안 와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좋음 혹은 보통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 환기 때문이냐고?
아니요, 개 산책 때문에 그러죠.




퇴사하고 일상에서 가장 달라진 점 하나를 꼽으라면, 매일 개와 산책을 한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 집 개님들은 산책을 '안'했다. 부끄럽지만 집사가 어지간해선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물론 가끔은 가족끼리 휴가지를 놀러 나가거나 동네를 걸으러 나간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우리 집에서 개와의 산책이란 일상적이고 규칙적인 행위가 아닌 '거창한 것'이었다.

지난 글에서 썼던 것처럼, 단순히 신발 사이즈만으로 설명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근본적으로 우리들은 산책이 부담스러웠다. 어렵고 까탈스러운 행위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우리 집 개님들은 점점 외출 빈도가 적어졌다.


우리는 개에게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 몰랐다.

모모 : 헥헥헥헥헥헥헥헥헥....

가끔 산책을 나가면 무조건 동네 한 바퀴를 돌려고 했다. 집사야 매일 걷는 길이지만, 자주 외출을 하지 않는 개님들 입장에서는 신기하고 무서운 것들로 가득 찬 거리였을 테다. 그런 거리를 아무런 규칙도 없이 걸으면서 개들이 아무렇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개는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향해 짖고, 다른 개를 따라가고, 흥분해서 날뛰었다. 산책을 하고 오면 인간이 더 기진맥진했다. 단순히 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개를 진정시키느라 진이 빠졌다. 개가 짖기라도 하면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싫어 무작정 개를 안고 자리를 피했다.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우리는 산책을 부담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밖에서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특히 모모는 개나 사람을 마주치면 심하게 흥분했다. 무작정 달려들어서 냄새를 맡고 따가느라 바빴다. 낮을 가리는 콩이는 얼른 가자고 재촉하고 모모를 잡아끌면 울었다. 두 마리가 양쪽에서 울고 짖고 하다 보면 인간은 어쩔 줄 몰라했다.


"우리 개들은 너무 쉽게 흥분해."

콩이는 천천히 걷는 걸 좋아하는 편

돌이켜보면 창피하지만 그땐 그랬다. 우린 개가 짖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보다는, 외출이 익숙지 않아서 적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나가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모든 걸 개의 탓으로 돌렸다.

한참 뒤에야 강형욱 씨가 방송에서 하는 말들을 들으며 우리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개에게도 '사회화'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쳤다. 충격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어미의 몸에서 나온 지 2개월 만에 우리 집으로 와서, 아는 얼굴이라고는 우리 가족뿐인 개에게 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걸으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당연하지만, 무언가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집에서만 지낸 개들에게 거리의 풍경은 낯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산책을 꾸준히 해야만 했다. 늘 같은 길을 걸으며 이곳이 우리 집 주변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했다. 냄새를 맡게 내버려 두고, 다른 개와 인사를 나누도록 시간을 주어야 했다. 개와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개를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닌 '개와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내가 매일 개 산책을 하기로 결심한 건 친한 선배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우리 집 개님들과 비슷한 나이의 포메라니안 두 마리를 키우던 선배였다. 한동안 바빠 연락을 못했는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선배는 내게 두 마리 개 중 한 마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개 많이 아껴줘. 산책도 자주 시켜주고."

담담한 말투였지만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는 내 카톡 프로필에 걸린 개 사진을 보니 죽은 개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고 했다. 지나고 보니 더 많이 놀아주고, 산책시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개가 걸을 수 있을 때, 나갈 수 있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그 말이 가슴에 사무쳤던 나는, 퇴사 후에 개를 매일 산책시켜주겠노라 결심했다. 이전에도 수없이 했던 다짐이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우리 개에게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을까, 우리 개들도 그렇게 갑자기 내 곁을 떠나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을 하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산책을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는 거창한 계획보다는 지킬 수 있는 간소한 산책을 하기로 약속했다.

첫째,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 나가기.
둘째, 짧은 길을 여러 번 걷고 개의 컨디션에 따라 조절하기.
셋째, 되도록 매일 짧게라도 나가기.

평범한 일상의 일부처럼, 개와 인간 모두 산책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일단 최대한 사람이 없을 법한 시간을 골랐다. 집 주변을 크게 벗어나기보다는 익숙한 산책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였다. 날씨, 컨디션 같이 부득이하게 외출할 수 없는 사유가 아닌 한 잠깐이라도 나갔다.

그렇게 처음으로 '인간을 위한 산책'이 아닌, '개를 위한 산책'을 나가보았다.

개는 바람과 햇빛을 즐기며 힘차게 뛰어다녔다. 길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알아서 갈 길을 찾아가기도 한다. 다른 개를 만나도 짖기보단 차분히 인사하려고 하고, 사람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래, 개님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과 꾸준한 경험이었다.
인간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듯 말이다.




나름 산책을 꾸준히 하게 되니까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게 많아졌다.

일단은 자외선. 사람이야 선크림 바르면 그만이지만, 개님들 피부가 너무 연약해서 강한 햇빛에 피부가 상할까 봐 걱정이다. 모자를 씌우거나 옷을 입혀볼까 하다가 요새는 해가 지는 시간에 산책을 가는 걸로 방법을 바꿨다. 또 하나는 벌레다. 내부 기생충 약은 먹이는데 몸에 붙는 진드기 같은 것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지금은 진드기 스프레이 같은 걸 사서 나갈 때마다 뿌려주고 있다. 신기하게 벌레가 날아왔다가도 피해 간다.

이렇게 점점 산책 쪼렙에서 벗어나고 있다.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힐링

의외로 작심삼일로 끝날 것 같던 '1일 1 산책 프로젝트'는 아직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 산책한 날을 일부러 달력에 표시까지 해가면서 되도록 많은 날을 나가려고 노력한다. 물론 집사도 외출해서 좋지만, 그보다는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길을 걸어가는 개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면 행복해진다.

단언컨대, 산책은 개님과 집사 모두가 가장 간편하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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