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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May 28. 2021

문제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오나개 4화 - 개님의 작은 행동도 집사에겐 커다란 의미

오랜만에 강아지 캐리어를 꺼내들었다. 개님들은 집사놈이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외출한다는 걸 금방 눈치챘다. 흥분한 개들이 캐리어 문을 열라고 벅벅 긁어댔다. 하지만 나는 콩이만 쏙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

"모모, 미안해. 금방 다녀올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뒤로 한 채, 급히 집을 나섰다. 모모의 절규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 가는 길 내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만 같았다. 이런 집사의 마음을 아느지 모르는지 콩이는 그저 캐리어에 자리를 잡고 편히 앉아 있었다. 걱정이 되어 자꾸만 고개를 들이밀었다.

"콩아, 괜찮아? 이쪽 봐봐."

콩이의 왼쪽에서 이름을 불렀지만, 콩이는 들은체 만체였다. 가만히 앉아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캐리어를 들고 내린 곳은 대형 동물병원 앞이었다.




모든 일은 내가 집에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외출을 하고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갔다. 개들은 평소처럼 짖으며 거실에서 현관으로 부리나케 뛰어왔다. 나는 개에게 인사하려고 현관 앞에 설치해둔 안전문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개님들은 꼬리를 흔들며 집사에게 왜 이리 늦게 왔냐 타박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콩이 왜 저렇게 걸어?"
평소에 이러고 자니 어깨에 담이 오지...

애틋한 가족상봉의 순간을 바라보던 동생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 말을 듣고 콩이를 보니 정말 이상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고 앞을 보지 않았다. 걸어오는 걸 보니 몸을 살짝 오른쪽으로 비틀고 걷는 것 같았다. 깜짝놀란 가족들은 콩이를 둘러싸고 앉아 증상을 살폈다.

일어나라는 둥, 걸어보라는 둥, 안달이 난 가족들의 반응에도 콩이는 시큰둥했다. 결국 비장의 무기, 간식통을 흔들며 콩이가 어떤지 살펴보는 수 밖에 없었다. 냉큼 자리에 앉은 콩이의 시선은 간식을 쥔 손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오른쪽으로는 잘 돌리는데, 왼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흰자가 보이게 눈알만 굴리는 게 아닌가. 일부러 손으로 목을 잡고 살살 돌려봤지만 콩이는 돌리기를 거부했다. 눕는 것도 오른쪽으로만 웅크렸다.

콩이는 왼쪽으로 아예 고개를 못 돌렸다.

막 집에 들어온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콩이는 가만히 웅크려 자고 있었고, 내가 들어오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나갔다는 게 사건의 전부였다.


'개가 고개를 한 쪽으로만 돌려요' , '개가 고개를 못 돌려요'

증상을 검색해보니 비슷한 증상이 있다는 글들이 있었다. 뇌수막염, 전정계 증후군, 중이염... 무시무시한 병명에 섬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목에 살짝 담이 온 것 뿐이라고, 근육이 놀란 거라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한 번 겁에 질린 집사들은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갈지 말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자주 가던 동네 동물병원은 문을 닫고도 남은 시간. 결국 24시간 동물병원에 전화해 먼저 증상을 말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증상만 듣고는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일단 들었을 때는 신경계 문제같기도 하네요. 제가 오시라 마시라 했다가 문제가 생길수도 있으니 보호자님께서 지켜보실지, 지금 바로 오실지 판단해서 결정하시는 게 맞습니다."

그 결정을 못해 전화했는데 대체 어쩌란 건가. 하지만 병원에서 이렇게 말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반응이었다. 당장 눈앞에서 개를 보지도 못할 사람에게 전화너머로 결정을 내려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우리 개이니, 어떻게 할지 결정도 우리가 해야했고, 책임도 우리가 져야 했다.


우리는 한 군데만 더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신호가 가는 동안 얼마나 숨이 막히던지. 상대가 전화를 받고나서는 어떻게 말을 꺼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횡설수설 증상을 이야기하는 나에게 수의사가 물었다. 개가 목을 돌렸을 때 아파서 소리를 지르는지, 마비 증세가 있었는지, 일자로 제대로 걷는지. 대답은 전부 '아니오'였다. 고개를 꺾을 뿐이지 걷는 건 똑바로 걷고, 마비도 없었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응급상황까진 아닌 걸로 보여요. 아마 근육통일 수도 있으니, 지금 당장은 지켜보시고 위에 말한 증세가 나타날 경우엔 바로 데려오시는 게 나을 거 같네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말이 '콩이가 괜찮다'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려견이 어찌 될까봐 겁에 질린 집사들에게 필요했던 말은 좀 차분히 지켜보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난리를 피우고 콩이를 보니, 아까보단 확실히 나아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에 가기로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물론 잠이 오지 않아 새벽 4시까지 뒤척거렸지만.


"콩이 보호자님, 진료실로 들어가실게요~"

그렇게 다음 날 큰 병원을 찾았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수의사 앞에 앉았다. 격앙된 목소리로 그간의 설명을 차분히 들은 수의사님은 몇 가지 확인해보겠노라고 콩이를 데리고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다.

십오분, 이십분 남짓한 그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콩이는 가뜩이나 낯을 가리고, 이전에 병원에서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어서 병원을 싫어한다. 얼마나 무섭고 속상할까, 집사를 얼마나 찾을까, 걱정을 하고 있으니 진료실로 다시 들어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몇 가지 검사해 봤는데, 일단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이제부턴 건강한 자세로 자기다~(세상에 이런일이 톤)

긴장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것 같았지만 선생님 말씀을 새겨듣기 위해 자세를 바로했다.

다음 번에 똑같은 증상이 발생할 경우, 재발한 간격과 상태가 괜찮아지는데 걸리는 시간 등을 체크하라고 하라고 말씀하셨다. 요키는 근육이 많은 견종이 아니라 담에 걸리는 일은 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증상이 있을 때 데려온 것이 아니라서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웬만해서 다음 번에도 이러면 데리고 오라는 말과 함께 콩이는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반려동물의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이런 상황에 당황하지 않을 집사는 없다.

물론 나란 집사는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집사님들 중에서는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실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황하실 수 있는 집사님들을 위해, 이번 일을 겪으며 얻은 몇 가지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사실 팁이랄 것도 못 되지만...


1. 24시간 동물병원 정보를 확인할 때 '핏펫몰' 앱을 활용하라.

-평소 다니던 병원이 24시간이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진찰만 큰 병원에서 받을 뿐이지, 그 외에 것들은 작은 동네 병원을 훨씬 자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에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병원을 찾기가 어렵다. 포털 사이트에 일일이 검색할 정신이 없기 때문에 앱을 활용하는 게 좋다.

사진 출처 : 핏펫몰 앱 캡쳐

나 같은 경우는 개 치약을 주기적으로 사기 위해서 '핏펫몰' 앱을 깔아뒀었는데, '병원' 탭이 있던 게 떠올랐다. 여기에서 집사가 사는 지역에서 현재 운영 중인 병원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영수증 받아서 리뷰 남기면 포인트도 준단다. 참고로 광고 아니다.(광고면 좋겠다. 연락주세요, 핏펫몰.)


2. 인터넷에 증상 검색하지 말고 개의 상태를 상세히 살필 것

-이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인터넷은 의사가 아니다. 물론 참고를 위해 지속적인 증상을 알아볼 땐 필요할 수도 있지만, 갑작스런 상황에선 오히려 인터넷이 독이 된다. 그 시간에 반려동물의 아주 작은, 미세한 증상을 세세하게 살피는 게 낫다. 여차하면 병원에 가야하는데 말 못하는 동물대신 집사가 대신 증상을 설명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개님도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게 상담에 큰 도움이 됐다. 몇 시쯤 이랬는지, 언제부터 괜찮아졌는지,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반응이 어땠는지. 정말 필요한 정보는 무작정 겁부터 먹게 하는 글들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다. 핸드폰보다 동물에게 집중해야 한다.


개를 키우는 일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기를 키우는 일과 같다.

개들은 여전히 천진난만하다. 함께 살아온지 어느덧 11년 째다. 어디가 아프고, 얼마나 늙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렇다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는 건 아니다. 때론 '이렇게나 작고 어리고 활발한데?' 하며 사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개들은 자신이 늙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렇게 갑작스런 이상증세를 보인다.

막간 모모 출연 / 먹이고 있는 눈 영양제(광고아님)
하긴, 문제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아닌가.

갖가지 보조제를 챙겨먹는다 한들, 세월까지 피해갈 순 없는 법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다. 두 마리 모두 제법 큰 수술도 해봤고, 건강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다. 때론 이 작은 생명에게 내 몫의 삶을 좀 떼어주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한다. 하지만 안다. 개는 영원히 내 옆에 있어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내가 데려온 생명이 아프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
그저 지금처럼 품에 안긴 개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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