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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Jul 27. 2021

세상은 이것을 '산 너머 산'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오나개 5화 - 아무리 VIP가 좋아도 병원 VIP는 원치 않아

"똥 누가 싼 거야? 피똥 쌌는데?"

콩이가 병원을 다녀오고 한동안 잠잠한가 했더니, 이번에는 모모가 피 섞인 점액변을 봤다. 깜짝 놀란 집사들은 다각도로 똥 사진을 찍어대고 모모의 엉덩이를 살피고 검색을 하고 난리가 났다. 그 난리통에 모모는 조용히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눕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내 새끼라지만, 모모가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 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런 모모가 온몸을 만져대는데도 별 말이 없다는 건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소리다.

나는 다시 한번 캐리어를 꺼내 들어, 이번에는 모모를 싣고 부랴부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 선생님은 소화기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알려면 초음파와 혈액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거기에 드는 비용은 기본 60~70만 원 정도. 선생님은 일단 바로 검사를 하기보단 급성장염일 수도 있으니, 주사 맞고 약도 며칠 먹여보고 상태가 호전되는지 지켜보자고 하셨다.

기본 검사를 하고 주사를 맞으러 들어간 모모는 정말이지 동물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밖에 앉아있는데도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게 모모라는 걸 알아챌 정도였다.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것이 저렇게 소리를 꽥꽥 질러댈 힘은 아직 남았나 보구나...'싶어 은근히(?) 마음도 놓였다.

밥그릇 들었더니 난리

마음이 진정되고 나는 다른 집사들에게 현 상황을 보고했다. 의사 선생님께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말해본 결과, 아무래도 새로 바꾼 사료와 유산균을 먹이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동안 먹던 사료가 단종이 되어서 새로 바꿨는데, 그게 너무 고단백이라 기름져서 위장이 놀랐다는 것이다. 더불어 밥 먹을 때 챙겨주던 유산균이 다 떨어졌는데, 정신이 없어 차일피일 주문을 미뤄왔다. 마침 체크해보니 유산균을 안 먹은 지 일주일 정도 되는 시점이었다.

겨우 주사를 맞고 나온 모모는 순식간에 이뤄진 의료행위에 어이를 상실했는지 흥분해서 진료대를 왔다 갔다 했다. 처방받은 약과 사료까지 짐이 한가득인데 흥분한 개가 들어간 캐리어까지 들고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듯한 모모의 모습에 안도하고 있었다.

약 안 먹겠다고 시위하는 모모(11)


며칠 동안 먹기 싫어하는 약을 억지로 먹여가며 똥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단단하고 피가 없는 똥이었다. 내 생에 똥을 보고 이토록 기뻐할 거라 누가 알았을까. 아무튼 며칠 사이에 기운을 차린 모모는 병원을 가는 날 아침부터 약을 먹이는 집사에게 대차게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손가락을 물려가면서 약을 먹이고는 캐리어에 모모를 챙겨 나가려던 그 순간.

“콩이도 병원 가야 할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보니, 콩이 엉덩이 살갗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까져있었다. 벅벅 긁는 횟수가 늘어났다 싶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 갑작스레 두 마리 모두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에 터져버릴 것 같은 멘탈을 부여잡았다. 아직 예약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병원에 전화해 콩이도 진료를 받겠노라고 예약하고는 두 마리를 모두 실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모모가 평소에 소화기관이 안 좋은 편이라면, 콩이는 피부가 안 좋은 편이다.

다리 사이사이에 겹치는 겨드랑이(?)마다 거뭇거뭇하고 목욕한 지 며칠 안 돼서 금방 냄새가 난다. 콩이의 피부 상태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수부지’. 기름은 끼지만 피부 안쪽은 매우 건조해서 가려움이 두 배가 된다. 날씨가 더워지고 습기가 차면서 피부 여기저기가 더욱 간지러운 나머지 자는 사이 엉덩이를 물어뜯는 지경까지 갔던 것이다.

싫은 녀석 치곤 너무 잘 자는데, 너?

의사 선생님은 소독약과 바르는 연고를 처방해주셨다. 습기가 차서 물어뜯는 거니 넥 카라를 꼭 해야 한다고도 덧붙이셨다. 집에 오자마자 넥 카라를 채웠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의 콩이는 구석으로 처박혔다. 앉은뱅이 식탁 밑에 들어가 자는 버릇이 있는데, 그 밑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넥 카라가 걸려서 더욱 우울해 보였다.




한 마리가 괜찮아지면, 나머지 한 마리가 병원 신세를 지는 이 상황. 우리는 이걸 산 너머 산이라고 부른다.

물론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아픈 개를 지켜보는 일이다. 이 아픔이 드러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아파했을지, 말도 못 하고 끙끙 앓았을 걸 생각하면 속상하다. 모모에게 제 때 유산균을 챙겨주었더라면, 사료가 잘 맞는지 살펴보았더라면, 모모는 배탈이 나지 않았을까? 콩이를 더 자주 씻겨주었더라면, 개 전용 크림이라도 발라주었더라면, 콩이는 간지럽지 않았을까? 모든 게 집사 탓이라 미안할 따름이다.

여름의 시작에서 호되게 아팠으니, 남은 1년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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