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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May 04. 2021

그녀는 태양이고 싶었다

넷플릭스 [마리 앙투아네트] 리뷰


마리 앙투아네트
줄거리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

14살의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을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다.

설렘에 가득 찼던 결혼 생활은 그저 각국의 표면적 평화와 내면적 힘 대결로 사용되었을 뿐.

아이를 가지라는 어머니의 성화와 자신에게 무관심한 남편, 프랑스 귀족과 왕실의 비웃음.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어떻게 살아야 했던 걸까?


그녀는 태양이고 싶었다
숨은 의미 찾기

영화는 전반적으로 정적이다. 어떤 특정한 사건을 밀착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를 차분히 따라가는 형식이라고나 할까. 물론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내용도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주를 이루지는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인물을 평가하기보단,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만 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토
“주여, 굽어살피소서. 저흰 너무나 어리옵니다.”

갑작스레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생을 마감하자, 어린 왕과 왕비는 당혹스러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그들의 나이는 고작해야 19살, 18살이었다. 20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왕좌에 앉아 국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것도 향락과 사치에 빠져있는 프랑스 왕족을 이끌고 재정난을 헤쳐나가기란 만만치 않은 문제였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토

특히나 루이 16세는 영화 속에서 보이는 루이 15세나 그 외 당시 다른 남자들처럼 ‘남자답지 않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루이 15세가 대놓고 정부와 공식적인 자리를 거닌 것과 달리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잠자리에서 먼저 다가와도 밀어내기 일쑤였다. 또한 왕위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가면무도회에서 루이 16세를 알아본 사람이 “황태자가 일은 치르셨나? 대신 황태자비를 눕혀줄까?”라는 조롱을 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에게 조롱당하고 인정받지도 못하는데 왕의 자리에 앉는다니. 그로서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을 테다.

그런 왕의 아내였던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남편에게도, 친정에게도 기대지 못한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루이 16세는 여자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건 아내에게도 매한가지. 더불어 국정을 돌보기에 바빠 그녀와의 시간을 보낼 틈조차 없었다. 친정에서는 얼른 임신해서 권력을 찬탈해야 한다고 난리, 남편은 자길 거들떠보지도 않지, 주변에서는 그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비웃고 은근히 따돌리지. 자신의 동서가 먼저 출산한 날, 결국 그녀는 방에 뛰어들어가 서럽게 울음을 터트린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토

영화에서는 이 대사가 굉장히 독특하게 등장한다. 루이 16세가 국민이 굶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미국에 대한 원조를 유지하라고 말하자, 화면이 궁전으로 전환된다. 동시에 갑자기 성난 군중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며, 한 남자가 “왕비에게 백성들 먹을 빵이 없다고 하자 뭐랬는지 아시오?”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검은 립스틱을 짙게 바른 표독스러운 표정의 왕비가 “그럼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라고 말한다.

“어쩜 날 그리 매도하는지 몰라.”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토

친한 부인들과 마주 앉은 왕비는 속상해하면서도, 그런 소문에 딱히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쓴다. 그녀를 희대의 악녀로 만든 그 말은 사실 거짓말이라고 한다. 백성들 역시 굶주리고 힘든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미워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왕비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것 자체로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지만 말이다.

사실 영화에서 왕비는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 무지할 정도로 보인다. 신하가 모든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국왕께서 알아서 하시겠죠.”라고 말한다. 왕관을 쓰면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녀가 원해서 왕족이 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사치와 향락뿐인데 어찌할까. 게다가 어릴 적부터 부유하게 살았던 그녀가 굶주린 국민의 삶을 헤아릴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그 자리에 앉은 이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그런 삶에 내던져진 왕비에게 일말의 이해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토
“두 왕족이 찢어지면 전 뭐가 되죠? 오스트리아 공주? 프랑스 황태자비?”
“둘 다죠.”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토

그녀는 옷을 고르는데 계속해서 정세 보고서 이야기를 하는 신하에게 묻는다. 자신은 대체 어떤 존재냐고. 사실 오스트리아 공주인 것도, 프랑스 황태자비인 것도 정치적인 압박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결국 각국의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한 것도 오스트리아 핏줄이 프랑스 왕족을 잇게 되어야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서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니까.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갖게 된다.

자신의 진짜 모습도, 진짜 원하는 삶도 모른 채 어린 나이에 넓은 궁전에 갇혀 체스판 위의 말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생활이 혼돈스러운 것이다. 자신은 대체 누구인가? 알 수 없게 된다.

아마 그녀는 공주도, 황태자비도 아니게 된다는 대답을 바란 건 아닐까. 차라리 둘 다 아니게 되면, 이 감옥 같은 삶에서 빠져나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 현실은 양쪽에 발을 걸친 채, 어느 땅에도 자기 발로 설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니 차라리 부인들과 쇼핑이나 하고 공연이나 보며 현실을 도피하고 외면하는 게 나을 수밖에.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토

그녀는 늘 파티를 즐겼지만 사실은 파티 이후의 일출을 더 좋아했다.

붉은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의 옆얼굴에서 동경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괴로운 자신의 현재를 잊기 위해 놀고 마시고 웃고 떠들지만, 시끌벅적한 파티가 지나가고 나면 공허하다.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침이 다가오는 장면이다. 자신이 어떤 밤을 보냈건, 아침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태양이 밝은 것을 보며 왕비는 공허한 자신의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오늘 하루도 단단해지길 기도한다.

그녀는 태양이고 싶었다.
억지로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늘 존재 자체로 세상을 밝게 비추는 태양.


평생 뿌리내리지 못한 삶
감상평
‘화려해서 더욱 외로웠던 베르사유의 장미’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토

포스터에 적힌 문구는 그녀의 길지만 짧았던 인생을 정확한 한 문장으로서 짚어낸다. 영화 속에는 그녀의 외로움을 표현한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창문 밖을 바라보는 왕비의 모습이다. 창문에서 밖을 바라보는 그녀가 화면에 잡히고 건물 전체가 나올 때까지 서서히 멀어진다. 굳이 롱테이크로 보여준 이 장면에서, 그녀는 자포자기한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 장면들은 그녀가 거대한 건물에 갇혀 무언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것은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 국경을 지날 때 벗었던 옷일 수도 있고, 함께 카드놀이를 하며 마차를 타고 온 수행원일 수도 있고, 마차를 탄 내내 끌어안고 있던 작은 개일 수도 있다.


“이 길이 그리 마음에 드오?”
“이제 작별을 고하려고요.”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토

프랑스 혁명군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마차를 타고 도망가는 중에 왕비가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자 왕은 묻는다. 그녀는 왕궁 내의 정원과 길을 꾸미기 위해 많은 세금을 들였다고 한다. 묘목을 심고, 정원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기도 했다. 왕의 눈에는 왕비가 그렇게 애정을 쏟은 곳을 떠나려니 아쉬운 것처럼 보였으리라. 그러나 왕비는 무언가를 떠나는 데엔 익숙하다. 익숙해서 더 씁쓸하다.

오스트리아에 자신이 14년간 쌓아온 일생과 기반을 모두 내려놓고 왔다. 인간이 새로운 곳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뿌리를 내려야 하지만, 프랑스에 당도한 그녀에게 누구도 땅 한 칸 내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정착하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썼다. 어쩌면 자식 역시 정치적 싸움의 일환보다는, 그녀가 마음을 붙일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린 자식도 세상을 떠나고, 겨우 정을 붙인 공간까지 떠나야 하다니.

평생 어딘가에 마음 붙여본 적 없을 그녀가 조금은 안쓰럽게 여겨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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