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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May 13. 2021

선택과 집중을 위한 에너지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리뷰

에놀라 홈즈
줄거리

내 이름은 에놀라 홈즈!

엄마 유도리안과 핀레이의 저택에서 즐겁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

그런데 내 16살 생일날 아침, 엄마가 사라져 버렸어.

오빠들은 날 가두려고 하지만, 어림없지.

내 힘으로 엄마를 꼭 찾고 말 거야!


선택과 집중을 위한 에너지
숨은 의미 찾기

'홈즈'라는 이름에서 우리는 누구나 '셜록 홈즈'를 떠올린다. 추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다 아는 그 이름. 셜록은 논리적인 사고와 추리능력으로 각종 사건을 거침없이 해결해나가는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는 그렇게 추리계의 굳건한 영웅으로 자리매김하며 아직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또 다른 홈즈로는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있다. 그는 셜록 홈즈의 형으로, 원작을 비롯해 여러 리메이크작에서도 셜록의 가족 중 등장했던 것은 그동안 마이크로프트뿐이었다.

사진 참조 :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그런데 만약 홈즈 가문에 딸이 있다면?

'에놀라 홈즈'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리메이크된 것이다.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라는 설정은 원작 작가인 '낸시 스프링어'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셜록에게 비슷한 성격을 가진 여동생이 있다면?'이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총 여섯 편의 에놀라 홈즈 시리즈로 답변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 원작 중에서도 1편 '사라진 후작'을 다루고 있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간략하게 시대적 배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에놀라 홈즈의 시간적 배경은 1888년(원작에서 밝힘)으로, 한창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빗발칠 때였다. 1982년 확대된 기혼여성 재산법의 통과로 여성의 사유재산권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은 선거의 권리조차 없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반발이 거세질 때의 사회상을 바탕으로 에놀라 홈즈의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다.

사진 참조 :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등장인물은 대체로 '여성 참정권에 대해 찬성하는 자, 반대하는 자' 두 부류로 나뉜다.

영화에 등장하는 홈즈 남매의 어머니 '유도리안 홈즈'는 사실 에놀라보다도 훨씬 흥미가 갔던 인물이다. 그녀는 가족들 몰래 집을 나와 런던으로 가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어떤 가치관과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는 에놀라에 대한 교육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진 참조 :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여성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노동을 하기보다는 '집'이라는 공간에 한정된 활동을 해야 하던 시기. 유도리안은 집에서 온갖 스포츠와 공부를 직접 가르친다. 특히 집에서 테니스를 치는 장면은 단순히 사실여부를 떠나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두 사람은 조금 과격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테니스를 즐긴다. 이 장면은 행위 자체만으로 '늘 정돈된 집안에서 불편한 옷을 입고 정해진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당시의 여성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아무리 억압해도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고, 유도리안은 테니스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한다.

벽에 공이 부딪혀도 테니스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벽이 무너질 때까지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그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인물은 아무래도 튜크스베리 백작이다.

사진 참조 :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두 사람의 인연은 위험에 처한 튜크스베리를 에놀라가 구출하게 되면서 강렬한 시작을 맞는다. 둘은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취향을 보여준다. 튜크스베리는 꽃을 좋아하는 남자이고, 에놀라는 무술을 즐기는 여자이다. '남자답지 않은' 남자, '여자답지 않은' 여자. 그들은 마땅한 여성상, 남성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보단, 오롯이 '고유한 개인의 성격과 취향'을 사랑하고 드러내려 한다. 더불어 타인이 자신의 취향을 존중해주길 바라고, 서로를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하게 된다.

영화 중반부까지도 종이인형 같은 튜크스베리는 온갖 무술을 연마한 에놀라에게 도움을 받는다. 여기에서 흔히 보이는 '공주와 기사'의 뒤바뀐 버전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반전된 성 역할 이야기는 그동안 아예 보지 못했던 구조는 아니라서 크게 흥미가 가진 않았다. 신부학교로 들어간 에놀라를 튜크스베리가 빼내 오는 장면이 나오기 전까진.

사진 참조 :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그들의 관계에서 오로지 '누가 누구를 구한다'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가 힘이 닿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서로를 돕는 친구 관계로 발전한다. 이 부분은 '인격체'로서 서로를 대한다는 점과도 맞닿아있다. 그들은 여자라서, 남자라서 서로를 돕는 게 아니다.

한 인간이 위험에 처한 다른 인간을 구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 행보는 결국 튜크스베리가 투표장에 들어가게 되면서 하나가 된다. 튜크스베리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관을 위해 투표를 하지 않을까.


현대 사회의 우리는 더 이상 무언가를 선택하려 하지 않는다.

눈앞에 즐비한 것들 중에 고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기 때문이다. 선택이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 최종적으로 바라는 목표를 고민해야만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그러나 선택이 귀찮은 나머지 '아무거나'를 남발하거나 그저 남들이 제시한 것 중에 괜찮은 걸 택한다. 선택을 하지 않으니, 집중하고 실천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도 생성하지 않는다.

사진 참조 :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영화는 명확한 해답이나 원하는 해답이 없는 혼돈의 시기에도, 자신을 찾고 발전하며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두 명의 청춘을 비춘다. 그들은 런던의 뒷골목 같이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도, 진정한 친구와 신념과 가치관을 찾아나간다. 그들을 조명함으로써, 영화는 우리에게 의문을 던진다.

"가만히 있으면 뭐가 바뀌어? 남들이 제시한 것 말고는 스스로 찾지 못해?"

그들은 엉성하지만 부딪히고 깨달으며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간다. 그저 쳇바퀴 굴리듯 살아가지 않고, 자기 삶의 궤적을 직접 그려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할 차례이다.


원작이 궁금해지는 영화
감상평

영화를 보고 원작에 관심이 생겨 책도 읽었다. 책 리뷰는 조만간 올라올 예정이다.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리뷰를 좀 찾아 읽어보니 논란이 많은 작품이었다. 대체로 '억지스럽다'는 사람들이 비판을 많이 하는 편.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역사적 배경으로 봤을 때, 억지스러운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시기적으로도 그 당시 런던에서 펼쳐지는 내용이라고 충분히 납득이 간다.

마이크로프트를 꽉 막히고 극단적 보수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해서 캐릭터를 깎아내렸다는 말도 있던데. 그가 고위 공무직으로 국가의 업무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영 개연성 없는 캐릭터성은 아니다. 원작에서의 그는 다른 성향을 가진 것 같긴 하지만, BBC의 셜록 시리즈에서 보이는 마이크로프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안하무인 하지만 누구보다 법과 질서에 진심인 사람. 물론 셜록에 버금가는 천재를 너무 멍청하게 표현한 점은 안타깝지만.


시즌 2 방영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입장이 없는 듯하다. 시즌1을 완벽하게 닫힌 결말로 가져가는 듯하면서도, 시즌2의 가능성을 살짝 열어두는 태도라서 배우들만 'OK'하면 충분히 제작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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