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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May 26. 2021

승자 없는 전쟁터

넷플릭스 [래치드(Ratched)] 리뷰

래치드(Ratched)
줄거리

1947년 전쟁이 끝난 미국.

전쟁 간호사 출신의 래치드는 루시아 정신병원에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온다.

그러나 쌀쌀맞은 수간호사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병원장.

어떻게든 취직해야만 한다, 이 병원에!


승자 없는 전쟁터
숨은 의미 찾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밀이 많은 주인공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 비밀이 드러날 때마다 인간의 모습이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입체적 인물과는 조금 다르다. 결국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는 느낌이라고 하면 더 쉬우려나. 래치드는 이중, 삼중으로 잠긴 비밀의 문을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영악하게도 매 회차마다 새로운 비밀을 밝히며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에 몰입하게 한다.

1화에서만 하더라도 밀드러드 래치드는 강인하고 결단력 있었다. 마치 인형 놀이를 하듯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주변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했다. 모든 것은 자기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점차 모든 일들이 틀어지자, 그녀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주변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내면까지도 통제불능의 상태에 놓인다.

드라마는 래치드의 비밀을 통해 그녀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심층적으로 그려낸다.


드라마 후반에 래치드에게 사회복지사가 찾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래치드가 털리슨을 두고 도망간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는 걸 알고 있는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에드먼드를 돕고 싶은 네 마음은 알겠는데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애쓰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이 장면에서 어떤 대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모든 상황을 내가 규정짓고 심판하고 책임지겠다고 생각한
그 오만함을 내려놓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

기억하는가? '부부의 세계'의 주인공 '지선우'가 드라마의 마지막에 했던 내레이션이다.

어쩐지 지선우와 래치드는 매우 비슷해 보였다.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고 믿는 지경에 이른다.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개입을 철저히 꺼리고, 스스로의 판단에 오차가 없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처참히 깨지고 무너진다.


래치드는 마지막까지 털리슨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부질없는 욕심이 결국 털리슨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만든다. 남매는 서로에게 죽음의 칼날을 겨누는 사이가 되고 만다.

래치드의 오만함이, 그녀를 털리슨과 똑같은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래치드가 선이고 털리슨이 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저 똑같은 범죄자에 불과하다. 득을 얻기 위해, 방해를 제거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거나 사건을 은폐했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선을 넘었다.

합리적인 살인은 없다. 인간에게 필요한 전쟁은 없듯이 말이다.


벳시 버킷과 그웬돌린 브릿지는 래치드와 함께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추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흥미롭게도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의 초반 모습과 닮아간다.

벳시는 초반에 하노버 박사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수간호사라는 직위까지 내려놓으며 하노버와의 가정적인 삶을 꿈꾼다. 그와 반대로 그웬돌린은 초반에 정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진 워커홀릭이었다. 허나 벳시는 하노버에게 대차게 차이고, 그웬돌린은 래치드를 만나고 감정에 흔들린다.

벳시는 병원을 운영하며 자신의 직업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가정에 속해 살아가는 것보단 직접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생활이 자신에게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와 반대로 그웬돌린은 명성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삶의 행복함을 깨닫는다. 세상의 시선에 맞춰 자신을 가꾸고 명예와 권력을 쥐는 것보단,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의 생활이 더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1940년대는 전쟁으로 인해 여성들이 사회생활에 뛰어들어야 하던 시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여성해방운동의 침체기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에서 이들은 남성에게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고,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여성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드라마가 갈등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었다. 드라마는 주요 인물과 주변 인물의 갈등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를 확실히 하려고 한다. 문제는 이 인물들이 특정한 집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가장 쉬운 예시가 주지사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위해 혐오를 일삼는 전형적인 차별주의자다. 그의 식사 장면이 나올 때 항상 스테이크가 등장한다. 1930년대에는 남성들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스테이크를 먹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남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와 직군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자극적인 인물이다.

물론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성이 주지사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털리슨을 제외한 주요 남성 인물들은 모두 죽었다. 장애를 가진 간호사 헉, 흑인이었던 경호원, 아시아인이었던 하노버 박사. 장애인과 흑인과 아시아인. 왜 그들은 꼭 죽어야만 했을까? 우습게도 주지사는 백인 남성이다. 더 말할 필요가 있나?


하노버 박사 얘기가 나왔으니 샬롯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다중인격자로, 그녀에게서 드러나는 폭력성 강한 캐릭터는 모두 남성이다. 마지막에 하노버 박사의 인격에 조종당해 벳시를 협박하는 장면에서 이 갈등이 의도된 것이었음을 확신했다. 샬롯이 보였던 하노버 박사는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하노버의 모습과는 달랐다. 이는 두 가지 문제를 보인다. 하나는 '아시아인'을 활용해 폭력성을 드러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샬롯이 굳이 '남성 인격'에게 지배당했다는 점이다.

한 명 더, 벳시와 친구였던 루이스. 그녀는 벳시와 친해 보이지만 교육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자립하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벳시는 전문지식을 갖춘 직업여성인, 즉 '부유층'에 해당한다. 자연스레 루이스는 '빈곤층'을 대변한다. 그런 상징적인 인물이 범죄자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 반영했겠지만 아무래도 빈곤층에 대한 편향된 시선이 포함되었다고 해석된다.


성별의 대립, 인종의 대립, 빈부격차와 장애여부 등 드라마는 수많은 대립을 그려낸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대립은 격동적인 공격의 몸짓을 보인다. 물론 드라마의 재미는 살릴 수 있었지만, 이토록 마지막까지 파괴적인 드라마는 이전까지 본 적이 없다. 2편이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스러운 것은 그 탓이다.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전쟁터에서, 과연 살아남은 것은 이긴 것인가?
조금 더 화해와 이해의 몸짓을 보일 수는 없었을까?
안타까운 드라마였다.


아름다움과 잔혹함 그 사이 어딘가
감상평

넷플릭스 드라마가 거의 대부분 그런 건지. 3화까지는 도무지 내용이 이해가 안 간다. 숨겨놓은 게 뭔지는 안 알려주고 일단 머리채 붙들고 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포기하려면 1화에 진즉 때려치워야 하는데, 찝찝해서 계속 보게 만드는 짜증 나는 부류. 물론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소리.

래치드는 광고를 많이 했어서 궁금했다. 호러물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복잡하고 지독한 드라마. 원래 고어한 장면 잘 못 보는데, 공포영화 보면서 고어 게이지가 올랐는지 래치드는 괜찮았다. 너무 심하다 싶으면 실눈 감긴 했는데, 그 외에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봤다.

래치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조명으로 인물의 심리상태를 표현한다는 점. 의지의 표현으로 쓰인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신호등의 파란불, 빨간불처럼 생각하면 된다. 초록 조명에는 자신의 상황에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이대로 일이 순탄히 진행할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시이다. 반대로 빨간 조명은 절망적이고 일에 차질이 생겼을 때를 나타낸다. 그런데 너무 초반에만 조명 표현이 많이 나오고 뒤로 갈수록 잘 안 나와서 아쉬웠다.

결과적으로 뭔가 툭 끊긴 느낌. 치열하게 치고받고 싸우다가 갑자기 끝나버린 느낌이다. 그것도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지 않은 채로. 결국 2편이 나오면 보긴 하겠지만,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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