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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Jun 02. 2021

이스트엔드의 명탐정

소설책 [왼손잡이 숙녀] 리뷰

에놀라 홈즈 - 왼손잡이 숙녀
줄거리

에놀라 홈즈가 집에서 무사히 탈출하고, 어느덧 새해가 밝았다.

본격적으로 탐정 일을 시작하게 된 에놀라, 아니지, ‘레슬리 티 라고스틴’ 박사.

그의 사이언티픽 퍼디토리언 사무소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는 에놀라, 아니지, '아이비 메쉴리'.

아무도 본 적 없다는 라고스틴 박사가 첫 번째로 맡게 된 사건은 무엇일까?


이스트엔드의 명탐정
숨은 의미 찾기

'에놀라 홈즈'라는 인물은 겉 표지로만 보면 단순히 당대 최고 스타인 '셜록 홈즈'의 명성에 기댄 것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훨씬 탄탄하게 짜여진 런던의 거리 위에 에놀라가 시대를 관통하며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놀라가 런던에 간 근본적인 이유는 '엄마를 찾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에놀라는 그저 손가락을 빨면서 엄마가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거나, 정처없이 엄마를 찾아 해메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했다가는 오빠들한테 잡혀가는 것은 물론이요, 애당초 펜델 홀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했을 것이지만.

그녀는 런던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종합해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가치관에 입각해 스스로 장래를 개척해 나가는 길을 택한다. 그저 얌전하고 정숙한 여인이 되어 누군가의 장식품이 되어 사는 길보단,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게 그녀가 원하는 길이다. 에놀라는 이스트엔드의 불쌍하고 힘든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셜록 홈즈의 배경이 되는 '베이커가 221B'를 생각해보면 매우 파격적인 선택이다. 셜록 홈즈를 한 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천재적인 능력을 활용하는 것을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저 심심하고 무료한 세상에서 시간을 때우는 정도로 여길 뿐이다. 셜록은 세상을 치밀하게 관찰해내는 능력은 있지만, 그것에 관심이나 애정을 보이진 않는다.

그에 반해 에놀라는 오빠와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한다.

가장 빈곤한 거리에 직접 몸담그고 살아가면서 주변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실천한다. 그녀는 도움이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명실상부한 '사이언티픽 퍼디토리언', 스스로 택한 '직업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에놀라가 '상류층'이라는 것을 깜빡 잊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고, 물론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주어진 삶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자신이 나아갈 길을 온전히 스스로 선택했으며,
선택한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지고자 노력한다.

이런 심지 곧고 매력적인 인물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모험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작가는 알고 있다.


사진 참조 : 왼손잡이 숙녀

한편, 에놀라는 자신과 비슷한 소녀를 마주한다. 준남작의 딸이지만 결혼이라는 억압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런던 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소녀, 세실리.

이 과정에서 작가는 '2편부터는 본격적으로 여성 인권을 다룰 것'이란 독자들의 편견을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물론 에놀라나 세실리 모두 자신들을 '여성'이라는 틀 안에 가두려는 사회적 고비에 맞서 싸운다. 그러나 더불어 당시 사회의 계급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평등하지 못한 거리 속 간극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에놀라가 계속 생각해왔던 '소명'과도 연결되어 있다.

거리의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을 돕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에놀라는 이번 사건을 통해 그 방법을 조금 더 본질적으로 고민해보게 된다.


사진 참조 : 왼손잡이 숙녀

더불어 에놀라는 세실리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소녀에게 이끌린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진짜 이름을 내뱉고 만다. 이는 튜크스베리 후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중요한 순간 에놀라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실수를 범한다. 이는 다르게 보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일 수도 있다.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사회가 편견없이 받아들여주길 원하는 작은 반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사건을 의뢰받는 것은 라고스틴 박사일지라도,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에놀라 홈즈일 것이다.

매력적인 반항아
감상평

놀랍다, '사라진 후작'에서 놀랐던 것보다 몇 배로 훨씬 놀랍다.

1편 이후로 그저 그런 탐정의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마치 '셜록 홈즈'처럼 말이다. 에놀라가 사회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자신의 재미를 위한 탐정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너무나도 얕봤던 것이다.


이번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여동생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셜록의 모습이었다. 셜록 홈즈의 팬으로서, 그의 새로운 모습이 진짜인 것처럼 받아들여져서 나 역시 에놀라처럼 가슴이 에이는 듯 했다. 여동생을 걱정하는 셜록 홈즈라. 감정에 휩쓸려 가장 간단한 이성적 추리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이라.

셜록은 같은 사건을 의뢰받고도 에놀라보다 한 발 늦는다. 어쩌면 셜록은 서서히 여동생이 자신과 맞먹는 천재라는 것을, 자신이 감당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천천히 인정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런던에는 에놀라가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있고, 에놀라가 도와야 할 고통받는 존재들이 남아있다. 에놀라는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그 많은 사람들을 어찌 도울 것인가? 그녀의 다음 활약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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