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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Jul 06. 2021

감정이 아닌 시각으로서의 염세

인문서적 [당당한 염세주의자] 리뷰

당당한 염세주의자
줄거리

'염세주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현대인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태도가 되어버렸다.

긍정과 희망이 없는 시대, 부정과 절망만이 가득한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 세상에서 누구보다 염세적인 시선을 던지는 '장자'

염세는 감정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감정이 아닌 시각으로서의 염세
숨은 의미 찾기

'염세주의'란 뭘까?

일단 긍정적이거나 밝은 태도는 아니다. 나무위키의 말을 빌리자면 염세주의란 '중2병'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버리기는 어렵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길다. 그런 긴 세월 동안 사회는 우리가 원치 않았던 구조와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오랜 시간 굳어버린 체계와 관습을 뜯어고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그것에 맞추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이 효율적인 방법을 따르고 싶지 않다고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보통 염세주의자가 된다.

저자는 염세가 단순히 감정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사진 출처 : 당당한 염세주의자 중

염세주의를 말하기 이전에, 왜 이런 염세주의적 감정들이 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인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린 보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나도 쉽게 환상 혹은 혐오를 갖는다.

스마트폰을 통해 개인이 하루에 전달받을 수 있는 정보는 수천, 수억 개다. sns만 보더라도 내 지인, 지인의 지인, 혹은 아예 모르는 사람들의 정보도 알 수 있다. 뉴스 기사는 또 어떻고. 그런 상황이니 모든 걸 정확하게 알고 구별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우리는 대강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바탕으로 정보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이걸 한 마디로 '편견'이라 부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한 것, 듣지 못한 것을 간단하게 판단한다. 판단만 하면 다행인데 그 뒤에는 소모적인 감정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보통은 극단적인 환상이나 혐오가 대표적인 감정이다.

우리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이렇게 정보가 넘쳐흐르는 시대에는 더더욱. 이런 능력은 필수 교양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왜? 그런 극단적 환상과 혐오가 인간을 쉽게 조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좁은 우물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휩쓸린다. 그것이 바로 염세주의의 시작이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며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관점'은 필요하다. 누구나 후천적 환경에 의해 각자 다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나, 때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쉽게 예단하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것을 인과관계를 따져 묻고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당당한 염세주의자 중

사람들은 대부분 이 경로를 따라 자신의 편견대로 세상을 바라보고는 허무함에 빠진다.

가장 큰 이유는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때 극단적 환상과 혐오를 조장하는 어떤 사회의 시스템은 사람들의 가치관 설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들이 이득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적 가치관을 설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가?

그러나 장자는 인간들이 만들어온 가치 자체가 허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가치관에서 부각하는 평가 기준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매우 한정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설정된 기준으로 자신을 이리저리 재고 자르고 꿰맨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사실 모든 개개인은 결국 사회 속에서 설정된 여러 가지 관계에 의존해 존재한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과연 '진짜 나'인지에 대해서 당신은 확신할 수 있는가? 어쩌면 '진짜 나' 같은 건 애초에 없을 수도 있다. 지금 나라는 생물마저도 그저 이 형태를 빌려 잠깐 나타난 어떤 '현상'일 수 있다.

그러니 굳이 사회가 강요하는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으며,
사회가 말하는 실패의 기준 범위에 있다고 하여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잘못하면 "모든 건 허상에 불과하니 그냥 포기하고 살자."는 말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장자가 추구하는 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삶'이다.
사진 출처 : 당당한 염세주의자 중

우리는 너무나도 생사에 집착한다. 관계에 집착하고, 물질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이 삶의 모습은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현상에 불과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에겐 저마다 다른 모습의 독특한 삶이 주어졌다. 이런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닌, '허상에 집착하지 않는 진실된 자아'를 찾기 위한 수련이다. 자신이 이 모습에서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을 찾고 실천하려 노력해야 한다. 다만 그것이 비록 인간의 기준에서 성공하진 않더라도,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한 명의 독특한 인간으로 발현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염세주의'는 사실 염세가 아닌 '허무주의'다.
사진 출처 : 당당한 염세주의자 중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 아니, 현상에 불과하면서도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도 허상에 집착한다. 집착한 대로 이루지 못했을 때에는 스스로를 파괴하려 들고 세상을 제멋대로 바라본다. 이런 잘못된 습관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인간 사회를 병들게 한다. 우리는 세상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이번 삶에서의 목적'을 찾아야만, 우리는 진정 삶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혐오자의 염세주의란
감상평

책이 눈에 띄었던 것은 순전히 '염세주의자'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왜냐, 나 역시 누구보다 염세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연 장자는 염세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까, 그게 궁금했다.

이 책은 나의 1차원적인 염세 마인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었다. 이전에는 현상에 대한 감정으로만 염세를 이해했는데, 이제는 좀 더 넓은 시야로 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어떤 것에 혐오를 갖거나 동조할 필요 없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텅 빈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과연 현실 세계에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인간을 혐오한다.

'에이, 너도 인간인데 인간을 혐오한다고? 그럼 너는 너 자신도 혐오한다는 거야?' 맞다. 나는 나 자신이 인간이라서 혐오한다.

나는 인간이 자연의 섭리대로 살지 않는 것이 불스럽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연에게 인간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저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연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모든 것을 인간 중심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혐오한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 나는 환경 보호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환경을 파괴하는 물건들을 사용한다. 인간이 개발한 편리함을 추구한다. 이중적인 잣대로 가득 찬 나 자신을 혐오한다.

그럼에도 이미 세상은 돌아가고 있고, 내 힘으로는 어떻게 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고 자살하기보단 발버둥 치는 쪽을 택했다. 당장 지구가 인류를 깡그리 멸망시킬리는 없기에, 조금이라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우리 이렇게 한 번 살아보자!'라고 말하는 쪽이 되겠다고 택한 것.


사진 출처 : 당당한 염세주의자 중

나는 가까운 친구와 인류의 흥망에 대해 자주 논하곤 한다. 그는 인류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세상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인간은 지구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고, 세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세상은 결코 아름다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내 반응에 대해 친구는 항상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는 걸 보면,
너는 츤데레가 아닐까?”

맞다. 나는 인간도 세상도 싫지만, 어떻게든 바꾸고 싶다.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작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만이 유일하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세상이 나아진다면 나름 기대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세상에 관철시키고 조금이나마 변화를 이루려면 어쨌든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칠 것이다.”

치사하고 더러운 말이지만 맞는 말이다. 내가 잘 버무린 헛소리를 하더라도(물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사람들이 들어줄 만큼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뱉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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