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칭찬부터 좀 해주시겠어요?

칭찬은 완벽하지 않아도 돼. 내가 완벽하게 해석할 테니.

by 담작가

만약 당신이 완벽주의자가 아니고, 주변의 친한 사람 중에 완벽주의자가 없다면 일단 아주 축복받은 일이다. 게다가 살면서 한 번도 완벽주의자를 만난 적이 없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70억 분의 1의 확률로 지랄 맞고 귀찮고 진땀 빼는 인간관계를 피해 간 셈이다. 하지만 긴 인생이니 어쩌다 한 번쯤은 완벽주의자를 만날 수도 있으니 그들을 대할 때의 주의점을 알려주겠다. 딱 한 가지면 된다.

절대 그들에게 ‘성공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마라.


나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거의 99%의 확률로 ‘그건 댁이 이미 성공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만적이고 건방진 태도는 내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이유로 귀결된다.

잘 되고 싶지 않은 사람 있나? 자기가 해온 일들에 대해 결실을 좀 더 크게 맺을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 있나? 어쨌거나 잘 되려고 노력했으면서 ‘성공이 목적은 아니었다’는 말이, 이런 말을 해도 될 진 모르겠지만,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길게 말할 필요 없이 자격지심이다.

물론 그런 말들을 웃어넘기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성공 비결은 궁금해하는 나 자신이 몇 배는 더 역겹기는 하다. 겉으로는 나도 나만의 방법을 추구할 거라면서, 막상 속으로는 성공 비기는 안 알려주고 달짝지근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자기 계발 서적의 약올림에 분개한다.


나도 성공하고 싶다. 하지만 성공은 어렵다. 답이 정해져 있는 데다가 오픈북 시험인데도 성공이라는 공식은 마치 수학 문제 같이 날 당혹스럽게 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띄엄띄엄 기억해내는, 수포자인 나로서는 정답지처럼 행동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4시간 잘 거 3시간으로 줄이고, 국영수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밥 덜 먹고 운동 많이 하면 된다. 그런데 딱 한 시간 만에 하려 했더니 한 시간 반이 걸리고, 교과서에 모르는 단어만 나와서 사전 들여다보느라 바쁘고, 운동하려는데 마땅한 레깅스가 없는 이 상황을 어쩌란 거냐고. 최근에는 이렇게 정직한 방법으로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남의 뒤통수를 후려치든가, 나를 끌어올릴만한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달라붙든가, 이런 방법들은 비교적 많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길길이 날뛰는 이유는 혈중 칭찬 농도가 너무 낮아서이다.

나는 게으르단 말이 무색하게 부단히 노력한다. 단 1분 1초의 오차범위도 허용하지 않는 계획표를 짜고, 무수히 많은 플랜 B로 변수를 막아 전략을 세운다. 브런치에서 인기글이 될만한 소재인가, 길이와 단어 선택과 해시태그는 적절한가, 어떤 업로드 시간이라야 사람들이 많이 볼까, 어떤 구성과 흐름으로 써야 출판사에서 눈여겨볼까, 어떤 글이라야 ‘재밌는데? 돈이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할까.

이 모든 걸 고민하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받기 위해서다.

나는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변질시킨다. 내 안의 완벽주의자는 흐리멍덩한 본래의 나 대신 많은 일을 한다. 그중에서도 내 뇌에서 막 생성한 순수한 생각들이나 심장에서 갓 꺼낸 솔직한 마음들을 있는 그대로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는데 주력한다.

“이것이 사랑받을만한 것인가?”

완벽주의적 성향이 가장 우선시하는 기준은 바로 이것이다. 더불어 그는 생각보다 여리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면 깊은 상처를 입는다. 때문에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어진다.

이 때문에 계획과 전략에 모두 충족하지 않으면 포기해버린다. 그것이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하는 방식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 길고 혼란스러운 과정을 축약시키거나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다. 그게 누가 됐던지 간에 상대방에게 칭찬을 듣는 것이다. 칭찬받고 싶다는 말은 인정을 받고 싶다는 말과도 같다.

내면의 상상으로 나는 이미 엄청 대단한 사람이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같은 엄청 큰 프로그램이나 대형 홀에서 열리는 강연에 초청받은 적도 있고, 사인회를 열었다가 다음 날 손목이 아파 스케줄을 바꿔 정형외과도 가봤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게으름에서 가까스로 탈피해, 눈물 나게 수고스러운 자기 검열을 거쳐 결과물을 내놨는데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허탈함과 쓰라림. 자주 상처 입고 많은 흉터가 남았지만 여전히 무뎌지지 않는다. 차라리 상처 주는 대상이 명확하면 모를까, 아무도 칼을 휘두르지 않았는데 나 혼자 자빠져 다치는 일도 이젠 지겹다.

다치는 건 지겹지만 아픔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나를 괴롭게 한다.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하나다. 완벽주의자에겐 칭찬만이 답이다.

사실 완벽주의자는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어도 자신이 못마땅한 구석이 있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그럴 거면 칭찬이 왜 필요하냐고? 불만족스러운 상태일지라도 누군가 칭찬을 해주는 것과, 아무에게도 칭찬받지 못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왜냐? 상대에게 칭찬을 들을 경우, 완벽주의자는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에 한정해서 앞으로 이 지점을 어떻게 고쳐나갈지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어쨌거나 내가 노력한 부분에 대해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칭찬했을 때 ‘고마워’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도 내가 잘난 거 알아’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제법 재수 없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가뜩이나 하얀 도화지에 튄 검은 점이 거슬려 죽겠는데, 칭찬도 못 받았다?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부정적인 사고 회로가 가동된다. 그럼 그 점은 곧바로 나의 콤플렉스로 진화한다.

여기에 더불어 질책까지 들었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닿는다. 차라리 칭찬을 하지 않을지언정, 그들에게 질책만은 하지 마라. 만약 충고나 조언을 해야겠다면 진심이든 빈말이든 밑밥으로 칭찬을 깔아주어야만 한다.

그들과 큰 마찰 없이 인간관계를 형성하거나 피해 가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대응책이다.


오버하지 말라고? 나도 이게 제발 오버였으면 좋겠다.

이런 연유로 나는 많은 이들과 사사로이 부딪혀 보았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조차 나의 치명적 단점에 지쳐 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완벽주의자들은 남들의 충고나 조언을 고깝게 듣는 자신을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깝게 듣는데.

내가 그래서 말했잖은가,
살면서 완벽주의자를 만나지 않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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