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조울증이 온다

나를 괴롭히는 나

by 담작가

내가 내 정신으로 살지 않았던 때가 있다.

그럴 때의 나는 매우 우울하고 공격적이었다. 병원을 방문해 직접적인 진단을 해본 적은 없지만, 나도 한 번쯤은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료 사이트에서 퍼온 것 같은 사진들과 이모티콘 스티커로 도배된 게시글에 올라온 자가진단법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알지만, 무시하기에는 증상이 아주 유사했다.

조울 주기는 내 인생이 극도로 내 인생 같지 않을 때 종종 찾아온다. 물론 내 인생이 내 맘대로 된 적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없지만. 어쨌든 단순히 ‘아, X 같다’라고 느끼는 걸 넘어서 ‘아, 한강물 아직 따뜻한가’라고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다.

인생이라는 보스몹에게 이빨 빠진 키보드 하나만 들고 덤비고 있는,
스스로 무모함의 끝을 예상하고 달려가는 기분이랄까.


그럴 때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과대망상을 한다.

내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된다면? 마치 셀로판지로 만든 조잡한 3D 안경을 쓴 것처럼, 내 눈앞에는 황홀한 삶의 양식들이 흘러간다. 사방이 책꽂이로 들어찬 고풍스러운 서재 한가운데, 넓은 책상과 안락한 의자가 놓여있다. 방금 내린 향긋한 과일차 한 잔을 옆에 두고 우아하게 안경을 추켜올리며 모니터에 글자를 타닥거린다. 편집자와 책상에 마주 앉아 다음 원고에 대한 논의를 하며 유머러스하고 지적인 대화를 마구 쏟아내는 것이다.

틱, 한창 기분이 고조되는 와중에 현실로 돌아오는 스위치가 켜진다. 책과 노트북이 흐트러진 책상이 눈에 들어오고 이불에 뒤엉킨 채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보인다. 엉망진창 그 자체의 현실로 돌아오면 두둥실 떠올랐던 기분은 나락에 처박힌다.

한동안 절망과 우울감에 휩싸여 있다가 ‘아, 이러면 안 되지, 일어나야지’하며 희망을 가진다는 핑계로 다시 과대망상이라는 뽕을 맞는다. 그러다가 또 약효가 떨어지면 현실로 돌아와 더 깊은 우울의 늪으로 빠져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나는 이 마약 같은 굴레에서 도통 발을 빼지 못했다.


이런 나 자신이 한심하지 않았느냐고? 당연히 한심스레 여겼다.

하지만 기분 좋은 꿈속의 나는 곧 나 자신이라고 믿었기에, 한심한 느낌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그렇게 ‘아, 신발꿈’의 과정을 끝도 없이 반복하면서 나는 점점 나 자신과 멀어졌다. 일단 처음 상상을 할 땐 내가 이룰 수 있는 가까운 하향선에서 시작할지라도, 걷잡을 수 없이 높은 파도를 타다 보면 나는 이미 올림포스로 가 버린 뒤였다. 이상적인 결말은 한 없이 위로 치솟는데 현실의 나는 더욱 바닥을 치고 가라앉았다.


이 모든 망상은 완벽에 대한 비정상적 집착에서 비롯되었다.

대부분 내가 상상했던 ‘쩔게 멋진 나의 자화상’은 막연하기 그지없었다. 그야말로 뜬구름 잡기 격으로 이리저리 형태 없이 흘러 다니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유명인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고, 주목받는 작가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니까. 그저 내가 살아온 양식에서 벗어난 엄청나고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동경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인생을 전반적으로 완벽하게 꾸려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미래로 한 계단 올라가기 위해 나는 현실의 나를 혹독하게 가꿔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남은 것은 ‘완벽한 나’가 아닌 ‘완벽해지려는 나’ 밖에 없었기에 완벽에 대한 집착은 날로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꿈꿨던 건 명확한 삶의 방향도, 지속적인 진로적 계발도 아니었다. 미련하게도 나는 그저 ‘유명한 작가’라는 단어만을 꿈꿔왔던 것이다. 여태 안개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미지의 존재를 롤모델로 삼으며 그것이 확신이라고 확신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절망을 맛보았다.


조울의 급물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느슨함이라는 튜브를 잡아야 한다.

물 밑에서는 완벽에 대한 강박증이 내 발목을 움켜쥐고 놔주지 않았다. 일단 강박을 살살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게으른 완벽주의자’ 중에 ‘게으른’이라는 납덩어리 같이 무거운 신발부터 벗기로 했다. 신발을 강박증에게 내주고 미친 듯이 헤엄을 치면 뭍에 닿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열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최대한 성실하게, 꾸준히 해내는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설정했다. 적어도 뭔가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조울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 거센 물살이 전혀 느껴지지 않길래 반쯤은 성공했다고 믿었다. 나는 현실을 살기 위해 더욱 발 바쁘게 움직였다.

“이리 와! 빨리 헤엄쳐! 거의 다 왔어!”

날 움직이게 했던 건 어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상상 속에서 이미 신격화된 또 다른 나는 내게 손을 뻗으며 ‘조금만 더’를 외쳤다. 자기 손만 잡으면 끌어올려 주겠다는 미끼에 나는 눈먼 물고기처럼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헤엄쳐 나갔다.


다들 알다시피, 깊은 물속에선 절대 발버둥 쳐서는 안 된다. 이미 급물살에 휩쓸렸다면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몰랐다면 지금 알아두기 바란다. 나는 내가 헤엄을 치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난 더욱 수심이 깊은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몸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기에 물살이 느껴지지 않았을 뿐, 난 여전히 물속에 있었다.

그 증거로 누군가 ‘잘하고 있어?’라 물을 때면 말끝을 흐렸다. 물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심하게 물을 먹어 코가 맵고 눈이 아릴 때면 오히려 헤엄치려는 내 몸짓에 괴리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손발을 축 늘어뜨리고 있자니 죄책감에 몸이 차가워졌다. 육지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손발을 바삐 놀려 발버둥 치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가 식충이 같다거나, 머저리 같다는 생각을 도무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덥석 미끼를 물었다. 낚싯바늘이 날카롭게 내 살을 파고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 판국에 나는 거세게 몸을 흔들어제꼈다. 좌우로 한 번씩 몸을 비틀 때마다 주변은 빨갛게 물들었다.

나는 상상 속의 나에게마저 배신당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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