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1
사랑니를 뽑은 다음날.
무리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핑계 삼아 운동도 하지 않고 늦잠을 잔다.
사랑니를 보냈기에.
사실 많이 아프지 않았다. 아침 먹기가 귀찮아서 아침 약을 건너뛰었음에도 뽑은 곳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쉬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아픈 상태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함'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므로 나는 쉰다.
허나, 쉬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내가 그다지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그렇다. 매복 사랑니도 아니었고, 잇몸을 찢어야 할 정도도 아니었고, 이를 부술 정도도 아니었다. 빼꼼 머리 내밀고 있던 그 녀석은 쑥, 허무하게 뽑혀버렸다.
그래, 이번 사랑니는 아주 허무했다.
이번에 뺀 사랑니는 오른쪽 위에 난 사랑니다.
그전에 나는 양쪽 아래 사랑니를 하나씩 뺐다. 그것들을 뺄 때는 긴장하고 초조해한 보람이 있었다. 치과 로비 소파에 앉아 양손을 맞잡고 별 것 아니라며 속을 달랬다. 지옥의 매복 사랑니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뽑기만 하면 되는 사랑니라고 했는데도, 고작 사랑니 때문에 벌벌 떠는 내 모습이 한심하긴 했지만.
이윽고 치과 의자에 눕자 의사는 마취되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나의 볼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빠각 빠각 이를 부수는 소리와 함께 부스러기가 내 혓바닥에 떨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의사가 온 힘을 다해 내 이빨을 밀고 당겼고, 나는 온 힘을 다해 입을 벌렸다. 이미 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므로 입을 더 크게 벌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길을 지나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사랑니를 뽑았다는 걸 알 정도로 볼이 퉁퉁 부었다. 퉁퉁 부은 볼 안쪽에서는 약을 꼬박꼬박 먹지 않으면 슬그머니 치통이 몰려왔다. 심각하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내가 멀쩡하게 나 있던 이를 하나 뺐다는 사실을 인지할 정도는 되었으므로, 나는 약을 먹을 때마다 '내가 사랑니를 뺐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번 사랑니를 뽑는 데에는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래쪽을 뺄 때와 다른 병원이긴 했다. 이전 병원 의사가 못 뽑았던 건지, 이번 병원 의사가 잘 뽑는 건지는 모르겠다. '사랑니를 뽑는다'는 말에 담긴 소량의 공포가 다가오기도 전에 사랑니는 쌩하니 자리를 비웠다. 이빨을 후드려패서 조사버리거나 잇몸을 홀딱 째버리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어쨌거나 녀석이 뽑기 수월한 자세로 나 있었다는 뜻이니, 어쩌면 이전 병원에 가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를 일이다. 따지고 보면 기특하게 여겨야 할 상황일지도.
황당한 점은 내가 그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을 위해 1시간이 넘게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가랑비 같은 초조함이 슬며시 젖어있을 때 뽑았어야 했는데. 나는 지루한 표정으로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손님들과 함께 점차 무덤덤해졌다. 책을 읽으며 내가 치과에서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즈음 이름이 불렸다. 그 사이 젖었던 머리는 다 말라버린 채였다.
특별히 떠나보낼 사랑이 없었기 때문일까.
애절하게 그리워한 이도 없는데 사랑니를 뽑아버린 대가일까.
황당함은 금방 가시고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을 사람들은 다 제 자리에 앉아있다. 누구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건만, 누군가 나가버린 것처럼 마음이 허하다. 새로이 들인 적도 없는 사람을 내보내버린 탓이다. 덕분에 마음의 창문만 활짝 열려 찬바람에 덜커덕거린다.
브런치 북을 냈는데 반응이 심심하다.
막상 내놓고 나니 허무함이 배로 밀려온다. 브런치 북을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는 상실감보다는 이젠 뭘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목표가 사라진 건 아니다. 그저 돈이 될만한 일이 내겐 거의 없다는 사실이 우습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쓰고 쓰고 또 쓰는데도 내 손에 돈을 쥐어주며 쓰라고 재촉하는 이가 없다. 사랑니도 없다.
그렇다고 돈이 없어 허무한 건 아니다. 그렇다기보단 내 속에 쌓여있던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서 방전된 탓이리라. 배터리가 방전되면 충전을 해야 하듯,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지껄이고 나니 더 하고 나니 소강상태에 다다랐을 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차분하지만 무언가 하지 않으니 허전하다.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일곱 살 어린애처럼.
내 몸에 몇 년 간 품어온 사랑니, 내 머리와 마음에 몇 개월 품어왔던 글이 동시에 빠져버리고 나니 상대적으로 씁쓸함을 느끼는 걸지도. 보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랑니 뽑기를 기대했던 것처럼, 내 브런치 북 역시 뚜렷한 성과를 주길 바라기 때문인가 보다.
브런치 북이 내게 어떤 열매를 주길 바란다, 아니, 줄 거라 믿는다.
내 동생은 수험생활을 할 때, 포스트잇에 '나는 몇 년도에 대학을 합격한다, 나는 OO학번이다.'이런 메모를 적어서 여기저기 붙여놨었다. 당시에는 속으로 '얘가 드디어 힘들어서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쪽지처럼 동생은 대학에 착 붙었다. 그 이후로 내가 내뱉는 말에 어떤 힘이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난 이번 브런치 북으로 당선이라는, 작가 데뷔라는 열매를 얻을 것이다. 지금은 믿어야만 한다. 비록 결과는 모를 일이고 추측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믿어야만 지금 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할 힘이 생긴다. '이번엔 이런 결실을 얻을 테니 이제 다음에 할 이걸 준비해야지!' 하는 희망찬 에너지.
이게 없으면 내가 예상한 결과가 안 나올 경우 다음 일에 착수하는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과 힘이 들 것은 분명하다. 기대하고 설레발친 것에 비해 보잘것없는 결과를 많이 겪어본 경험자의 감이다. 이번에 쏟아부은 최선을 다음 일에 또 쏟아붓고 있으면, 결과가 어떻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똑같은 속도로 달릴 힘을 유지할 것이다.
사랑니는 순식간에 내 곁을 떠나버렸지만, 글은 내 곁에 영원히 남는다.
그 사실만을 기억하며, 나의 세 번째 사랑니를 장렬히 떠나보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