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작업실

전업작가 생존기

by 담작가

오후 2시, 거실과 방에 짐이 차올랐다. 아침 9시부터 엘리베이터 없이 3층까지 짐을 옮긴 나와 남자 친구는 너덜거리는 팔다리를 주무르며 이온 음료를 홀짝거리다가 밥을 먹으러 나섰다.

"이삿날에는 역시 짜장면이지?"

우리는 마주 앉아 길쭉한 플라스틱 젓가락으로 짜장면과 짬뽕을 흡입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촌스러운 연두색이었다. 평소라면 미끌거려서 줄줄 흘러내렸을 면발이 꽉 쥐어졌다. 팔에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젓가락을 생명줄처럼 부여잡았다. 안 먹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근육의 본능적 움직임이었을지도.

굶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그제야 내가 이삿짐을 직접 옮기고 먹는 짜장면은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의 위장은 이미 꽉 차 있어도 먹으려고 하면 늘어난다고 했던가. 불고 있는 짜장면 면발 위로 설렘이 디저트처럼 쌓였다. 신기하게도 더부룩하지가 않았다.




독립을 했다. 첫 작업실이 생겼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나가야 하는 집을 '내 집'이라고 칭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나만의 작업 공간이 생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집이 생겼다는 말보다 더 설레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첫 자취, 첫 독립.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 말처럼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어떤 말이든 다 설렐 일이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첫 작업실'이라는 단어가 퍽 마음에 들었다.

작업실이 있는 작가는 카페를 가지 않아도 되니까.

난 작업실이 없을 때도 카페를 가지 않는 편이긴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돈 들고, 나가기 위해 시간 들여 준비해야 하고. 글 쓰려고 카페 가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면서도 종종 밖으로 나돌았던 건 가족과 함께 살아서였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게 싫었던 건 아니다. 더운 여름날에도 내 방과 내 침대를 놔두고 굳이 동생 방의 좁은 싱글 침대에서 같이 잘만큼 나는 혼자인 걸 싫어한다. 하지만 그건 잠 잘 때 얘기고. 글을 쓸 때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래토록 집에서 글을 써왔다.


온전한 내 작업실을 가진다는 것은 의미가 남달랐다. 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어엿한 물리적 증거물로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공간을 '내 집'이 아니라 '내 작업실'로 인식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이곳에서 난 무조건 작가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굳건한 맹세.

앞으론 매일 작업실에서 의무적으로 글을 써내야 한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오롯이 갖춰졌으니 변명거리가 없다. 글로 먹고 살겠다는 말은 철부지 어린애의 허세가 아니라 철저하게 사실이 되어야만 한다. 작가가 펜을 뽑았으면 낙서라도 써내야지. 이젠 정말로 전업작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짜장면을 먹고 들어와서 우리는 꼬박 밤 11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고된 노동을 하는 내내 바닥에 남아있던 짜장면 소스까지 긁어먹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거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방에는 옷장에 들어가지 못한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는 그 때까지 열려있는 유일한 식당인 치킨집에 갔다. 평소라면 생맥주를 들이키며 즐겼을 만찬을 주섬주섬 주워 먹었다. 치킨을 살기 위해 먹은 건 처음이지 싶었다. 남은 일은 내일로 미루자고 합의를 보고 쓰러지듯 매트리스에 누웠다.


행복감과 설렘이 공기 속에서 잔잔히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만큼 묵직한 압박감이 날 짓눌렀다.

이젠 정말 살아남지 않으면 도태된다. 여기에서조차 글을 쓰지 못하면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 글을 쓰지 못하는 인생은 하등 의미가 없다. 결국 내게 남은 가능성을 몽땅 쥐어짜서 승부를 봐야 한다. 나 자신에게 핑계를 댈 수 없도록 마지막 기회를 이렇게 공표하노라.

최작가 나이 스물 여덟,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한 처절한 생존기가 막 시작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