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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속도

우리의 바다는 원래 아름답다

by 담작가

빛보다 빠른 건 없다. 문득 그 당연한 진리에 의문을 품었다. 그건 우리가 재본 것 중에 가장 빠른 것이 빛이라서 그렇게 믿는 건 아닐까?

인간의 재볼 수 없는 것 중에는 빛보다 빠른 것도 있지 않을까?

가령 생각이라든지. 우리는 평생 살며 수많은 생각을 한다. 생각을 멈춘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난 생각의 속도가 빛보다 빠르지 않을지 고민하다가 뇌파 감지기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뇌파를 감지한다면 생각의 속도도 잴 수 있겠구나. 문과적 발상은 항상 이런 식의 결과를 얻고 나서야 끝이 난다.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빛보다 빠르지도 않은 이 생각들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의 작은 뇌가 이 정도의 용량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나는 다른 식의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생각은 속도가 필요 없다.

그냥 생각은 늘 그 자리에,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빨라 보이는 것뿐이다. 마치 바다처럼. 누구도 바다의 속도를 재지는 않는다, 풍랑을 확인하지. 바다에 속도가 생길 때는 오로지 바람이 불 때 만이다. 바람을 타고 파도가 일렁이며 몰아칠 때는 속도가 생긴다. 바람에 의해 생긴 파도에 가속도가 붙어 무서운 기세로 해변을 향해 몰아친다. 때론 그 너울에 휩쓸려가기도 한다.

고요했던 생각의 바다에
감정이라는 바람이 불어 파도가 생기면
내게로 다가온다.


때론 해변가에 밀려온 생각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정신 차려보면 너무 깊숙한 곳까지 헤엄쳐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발끝이 닿지 않는 지점이다. 생각의 물결이 나의 발목을 잡아끌고, 그렇게 생각에 잠식되어 버린다.

굳이 심연에 있는 생각들을 보러 바다 아래로 잠수할 필요는 없다. 물은 멈춰있지 않으니 내면의 깊은 생각도 결국 언젠가는 표면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다만, 아직 제게 맞는 바람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모든 생각들은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


되려 어떤 생각을 하려고 하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손으로 바닷물을 쥐려고 할 때가 그렇다. 생각을 아무리 퍼올려도 손틈새로 흘러나가는 물처럼 내게서 빠져나간다. 생각은 가둘 필요도, 가둘 수도 없다. 계속 변하고 흐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더 넓은 바다에서 더 많은 생각들을 만나도록. 그리고 내게로 언젠가는 다가오도록.

종종 높은 파도가 일면 덜컥 겁이 난다. 하지만 그건 그냥 생각일 뿐이다. 어떤 생각이든 나를 해칠 수 없다. 아니, 해치지 않는다. 나를 해치는 것은 나의 행동뿐이다.

마음속에 거칠게 부는 바람을 잠재우고 잠시 바다를 둘러본다. 햇빛에 부서지는 물결이 아름답다.

나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는
원래 이토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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