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과 자린고비에 대한 명상
천장에 굴비를 걸어 둔 자린고비처럼 고개를 든다. 따사로운 햇볕에 반짝거리는 나뭇잎과 그 뒤로 펼쳐진 맑은 하늘.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장갑 두 켤레.
한산한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날 처음 장갑을 발견했다. 싹이 돋기 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나부끼는 장갑이 시야에 걸리적거렸다. 파란색과 빨간색이 모호하게 섞인, 곰인지 토끼인지 모를 자수가 박힌, 다섯 살 꼬마의 손에나 들어갈 법한 조그마한 벙어리장갑 두 켤레가.
바람에 장갑을 놓쳤다고 하기에는 너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누가 일부러 끈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아야만 가능한 모양새였다. 한참 동안이나 장갑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대체 누가, 왜 이런 곳에 저런 장갑을? 집으로 돌아와도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혹시 어떤 범죄사건의 증거물이 장갑 속에 들어있으면 어쩌지? 아니면 누군가 저주의 인형을 장갑 속에 넣어서 나무에 걸어둔 건 아닐까? 혹은 평행 우주를 여행하는 연인이 서로의 흔적으로 일부러 남겨둔 걸까? 혼자 온갖 장르의 상상을 하다가도 나무 밑을 지나갈 때면 파블로브의 개처럼 고개를 들어 장갑과 인사를 나누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장갑에 등굣길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여느 때처럼 길을 걷다가 조금 이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이, 내 몸에 붙은 우울을 떼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장갑에 대한 사소한 질문들이 불안감에 시달리는 내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공허함에 시달리던 내가, 마치 자린고비의 굴비처럼 그 장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배불리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자린고비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굴비의 맛을 보지 않았지만, 그 굴비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풍족을 느끼지 않았는가. 꼭 실체를 확인하고 취해야만 행복이 아니다.
그가 눈으로 굴비를 먹고, 뱃속에 굴비가 있다고 믿고, 그래서 배가 부른 것처럼.
행복은 천장에 걸린 굴비 같다. 고개를 들면,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언제나 우리가 바라보기를 기다리지만, 정작 우리가 발견하지 못해서 빛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아직 빛나지 않았을 뿐, 행복이란 이미 존재하고 있다.
묵묵히 하루를 견뎌내다가,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마음 속으로 장갑을 그려본다. 눈을 감고 장갑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불안도, 우울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내가 맛 보지 못한 먼 미래의 가능성이 내 마음 속에 매달려 나풀거린다.
이제 눈을 뜬다. 난 다시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