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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보여주는 땅의 모양

땅이 남긴 흔적들

by 담작가

한동안 가물었던 땅에 비가 내린다. 보통 비가 오는 날은 산책을 피해야 하겠지만, 나는 비가 오는 날의 산책이 햇볕 쨍쨍한 날의 산책보다 더 즐겁다. 신발 앞코가 축축이 젖어들어가는 느낌이 싫지 않다. 어딘가에 부딪히는 빗방울의 소리가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거대한 강줄기의 표면에 닿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 눈을 감고 가만히 서서 비의 소리를 듣는다.


비가 오면 땅은 솔직해진다. 자신이 가진 모양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길에는 평평한 부분만 있지 않다. 볼록 솟은 곳, 움푹 파인 곳, 비스듬하게 경사가 진 곳, 파도처럼 규칙적으로 울룩불룩한 곳... 게다가 모든 곳이 다 매워져 있다는 보장도 없다. 살짝 균열이 생긴 곳, 그 균열을 타고 갈라진 곳, 하나의 타일 조각만 빠진 곳, 누군가 일부러 구덩이를 파놓은 곳, 깨진 것처럼 구멍이 나 버린 곳...

햇빛이 있는 날에는 다들 생각지 않고 지나간 곳들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비춘다. 그렇지만 땅은 자신의 모양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숨기지도 않았다. 다만, 비가 내리고 나서야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땅을 닮았다.

평평하고 고른 곳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다. 무수한 균열과 거대한 크레이터가 가득한 우리의 삶은 비를 맞았을 때 더욱 초라해 보인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미처 못 보고 지나치거나 봤어도 못 본 척할 수 있었던 것들이 비를 맞으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우산을 쓰면 하늘을 볼 수 없어 땅을 봐야만 한다. 휴대폰을 하고 싶어도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화면에서 눈을 떼고 땅을 보며 조심조심 걷는다. 어딘가 물웅덩이가 있지는 않을까. 웅덩이를 밟으면 신발이 젖고 옷에 물이 튀니까. 그러면 평평한 땅인 척할 수 없으니까.

모순적이게도 우린 움푹 파인 곳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런 곳을 찾아 헤맨다.

사람들이 비 오는 날을, 비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음에 비가 오면 나의 못난 내면의 흉터가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니까. 그 흉터를 계속 지켜봐야 하니까.


비가 오는 방향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용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그래서 종종 우산을 치우고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곤 했다. 지나고 보니 그건 필사적으로 땅을 바라보기 싫어서 했던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비를 맞고 쫄딱 젖은 땅을 유심히 내려다보곤 한다.

땅의 흔적을, 비가 흘러가는 방향을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용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원히 하늘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구름 위가 아니라 땅이니까. 내가 서 있는 땅, 내가 걸어온 땅의 모양을 봐야 한다. 비가 스며들어 촉촉이 젖은 땅의 모양을 비추면 그곳에 남은 흔적들을 통해 나를 이해한다. 흠집이 나고 못생긴 땅이라도 여전히 나를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 그 사실을 알아야만 다음 발자국을 내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 봐라, 비가 오는 땅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누가 알았으랴.
좁은 상처의 틈새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새싹이 피어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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